1846년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의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1818~1865)는 중요한 의문을 품었다. 산모들이 흔히 산욕열로 사망하던 시절이었다. 이 병원의 산부인과 클리닉 둘 중 첫 번째 클리닉에서는 10% 가까운 산모가 아기를 낳은 직후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하지만 두 번째 클리닉의 사망률은 약 4%에 그쳤다. 소문이 퍼지자 첫 번째 클리닉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느니 차라리 길거리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이들까지 나왔다. 하지만 의사들은 엄청난 사망률 차이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제멜바이스는 산모 사망률을 2.5배나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1762~1814)는 이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실러, 프리드리히 헤겔 같은 이들과 같은 반열에 드는 독일 철학자다. 피히테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점령된 베를린에서 1807년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우국 강연을 한다. 강연에서 그는 새로운 국민교육을 부르짖는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그가 이렇게 단언했다고 전한다. “교육은 자유의지를 파괴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학생들이 그렇게 배운 후 남은 평생 교사가 바랐을 것과 달리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이탈리아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맥도날드와 비교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는 언젠가 사람들이 두 회사를 비교하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2008년 1월 10일 이코노미스트). 그럴 때면 “까무러칠 만큼(apoplectic)” 화를 냈다고 한다(2017년 6월 8일 포천). 그런 슐츠가 2007년 컨슈머 리포트의 시음에서 스타벅스 커피가 맥도날드 커피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스타벅스만의 로스팅 철학과 특별한 풍미를 고집하던 그가 패스트 푸드 체인의 “범용화” 전략과 타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폭발적
2007년 2월 어느 날 하워드 슐츠는 식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자신을 대신해 CEO로서 스타벅스를 이끄는 짐 도널드와 경영진에게 보낼 것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1000개도 안 되던 매장을 1만3000개 넘게 늘리는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내려야 했던 결정들은 돌이켜보면 스타벅스의 경험을 희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진한 풍미의 에스프레소를 멀건 아메리카노로 바꾸는 것과 같은 물타기가 계속돼왔다는 지적이었다.그는 창업자의 눈으로 포착한 물타기와 범용화의 문제를 꼼꼼히 지적했다. “우리는 자동 에스프레소 기계를 도입해 서비스 속도와
“탄 치즈에 무슨 마법이 있나?” 하워드 슐츠는 단단히 화가 났다. 스타벅스 CEO 자리에서 물러나 글로벌 전략에 집중하던 슐츠는 2007년 위기의 냄새를 맡았다. 무엇보다 스타벅스 특유의 오라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가 가장 못 참아 한 것은 그릴에 치즈 샌드위치를 데울 때 코를 찌르는 냄새였다. 신선하고 따뜻한 에스프레소 향으로 가득해야 할 매장을 치즈 냄새로 압도해버리는 것은 스타벅스를 질식시키는 짓이었다.스타벅스는 2003년부터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했다. 베이글 샌드위치부터 소시지, 터키 베이컨, 햄 앤드 에그와 잉글리시 머
마틴 에버하드는 2003년 7월 친구 마크 타페닝과 테슬라라는 “기술기업이기도 한 자동차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이듬해 2월 650만 달러를 투자해 테슬라 최대주주가 된 일론 머스크는 2007년 8월 에버하드를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소송전을 벌인 두 사람은 2009년 9월 합의에 따라 에버하드, 타페닝, 머스크와 엔지니어인 이언 라이트, 제프리 B. 스트로벨 다섯 사람을 모두 공동창업자로 부르기로 했다.)에버하드와 타페닝은 테슬라를 먼저 시작했으나 전기차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지는 못했다. 똑같은 예가 하나 더 있다. 이
‘세간의 이목을 끌며 시장에 진입한 기업의 전략이 특별한 유형의 파괴를 이룬다고 가정하는 것은 실수다. 이런 사례는 흔히 잘못된 범주에 들어간다. 요즘 가장 두드러진 예는 테슬라 자동차다.’한 지혜로운 경영학자가 테슬라는 파괴적 혁신의 사례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름 아닌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다. 그가 2015년 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마이클 레이너, 로리 맥도널드와 함께 쓴 글을 보자.‘이 회사가 파괴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테슬라는 자동차 시장의 상단에 발판을 마련했고(차 한
아이스하키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웨인 그레츠키(캐나다, 1961~)가 말했다. “나는 퍽이 있던 곳이 아니라 퍽이 갈 곳으로 달려간다.”기업이라면 지금까지 돈이 된 사업이 아니라 앞으로 돈이 될 사업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이렇게 말했다. “기존 기업 경영자들이 실패하는 까닭은 잘못된 결정을 해서가 아니라 ‘곧 역사가 될 환경에 맞는’ 올바른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파괴적 혁신 이론이 199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처음 소개되고 20년이 지났을 때 크리스텐슨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마이클 포터의 책은 두껍다. 글은 건조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비유 같은 건 없다. 손자병법의 인용도 없다. 가치사슬과 경쟁전략에 관한 이론이 하나의 큰 체계를 이루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업 사례는 맛깔 나는 스토리 텔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다. 갈증을 풀어줄 통찰과 지혜를 발견하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경쟁우위’에서 도전자와 맞닥뜨린 기업의 방어전략을 설명하는 장을 보자. 얼핏 보면 트루이즘에 가깝다. 공격의 가능성을 줄여라. 도전자가 볼 때 공격해봤자 효과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그의 의사결정
다윗은 돌팔매를 맞고 쓰러진 골리앗의 칼을 뺏어 그의 목을 벴다. 정글 경제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은유는 한 가지 난점을 지닌다. 적은 어떻게든 거꾸러뜨려야 할 상대라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은 반드시 ‘너 죽고 나 살자’고 덤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포터는 ‘유익한 경쟁기업’도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쟁기업이 유익하고, 그런 기업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1977년 6월 2일 뉴욕타임스는 제록스와 코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레이저 프린터였다. 이듬해 3
다윗은 골리앗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지 않았다. 그 논리를 이해한다면 이미 기업 경쟁의 핵심적인 부분인 차별화 전략의 논리도 꿰뚫어 본 것이다. 차별화는 상대와 다르게 하는 것이다.마이클 포터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의 경쟁우위가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원가 우위다.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더 낮은 가격에 파는 쪽이 이긴다. 다른 하나는 차별화다. 차별화한 제품과 서비스는 유혈이 낭자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본원적인 전략을 따른다. 첫째, 원가 우위(cost leadership) 전략, 둘째,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들을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판의 짐승들에게 주리라.” 2m를 넘는 거구의 전사는 양치기 소년의 도전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청동 투구를 쓰고 온몸에 빈틈없이 갑옷을 두른 그는 던지는 창과 찌르는 창, 그리고 검을 들었다. 도전자의 무기는 물매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였다. 소년의 돌팔매는 전설이 됐다. 소년의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청동 갑옷을 입고 있던 전사는 이마에 돌을 맞고 쓰러졌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설이
“경영자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할 때 흔히 또 다른 잘못이 드러난다. 바라던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온갖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만 원인은 보통 우리가 부적절한 통제 방식을 택했다는 데 있다. 기술자는 물이 솟아오르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린다고 탓하거나 기체를 가열했을 때 수축하지 않고 팽창한다고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영자는 자신의 결정을 사람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보통 그 사람들을 비난한다. 그들이 어리석거나 비협조적이거나 게을러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며 자신이 적절한 통제 방식을 택하지 않아서 그렇다고는 생각
자본주의는 혁신을 요구한다. 또 그것을 상품화할 혁신적인 기업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더 크고 복잡해진 자본주의는 다른 한편으로 관료적 합리화를 갈망했다. 관료제는 한때 거대한 조직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혁신이었다. 하지만 관료제는 이제 혁신의 발목을 잡게 됐다. 앞서 본 ATLAS 프로젝트가 전통적인 관료조직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프라하 태생의 미국 정치학자 카를 도이치(1912~1992)는 권력은 “배우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최고경영자들은 한때 열심히 배우려 했기
아틀라스(ATLAS) 프로젝트. 스위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거대 하드론 충돌기를 만들기 위한 네 가지 연구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을 밝히기 위한 이 프로젝트는 1992년에 시작됐다. 180개 기관의 과학자 3000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은 스위스의 시골에서 높이 45m 길이 25m짜리 입자 충돌기를 만들어야 했다. 부품은 1000만 개를 넘었다. 조직 설계에 나선 아틀라스 컨소시엄은 딜레마에 부딪혔다. 이제껏 보지 못한 것을 만드는 수백 개의 하위 팀이 가장 효과적으로 돌아가야 했다.자율성이 높은
마흔 살의 세일즈맨은 어느 날 아침 면도를 하다가 생각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던 생각이 아니라 짧은 꿈처럼 스친 생각이었다. 면도기와 면도날을 따로 만들고 면도날은 쓰다가 버릴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킹 캠프 질레트(1855~1932)는 더 안전하고 경제적인 면도기를 생각했다. 집에서 쓰는 면도칼은 그의 구레나룻을 깎기에 너무 무디었다. 가죽으로 날을 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발소나 칼갈이 집에 맡겨야 했다. 자칫 손이나 얼굴에서 피를 볼 수도 있었다.그는 주류업체 같은 곳에 병마개를 팔러 다니는 일급 영업전문가였다
한국이 국가 부도의 공포에 떨고 있던 1997년 12월.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판부는 한 기업의 글로벌 리더십을 향한 여정을 다룬 책을 냈다. 저자는 40년 경력의 경제 저널리스트 고든 맥키번. 책 제목(Cutting Edge: Gillette’s Journey to Global leadership)에는 칼날과 최첨단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썼다.대기업들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지던 당시 국내의 어떤 CEO도 지구 반대편에서 면도날로 성공한 기업의 스토리에 주목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한 세기에 이르는 질레트의 역사를
두 회사가 합치는 것을 두고 어떤 언론은 ‘천국의 결혼’이라고 했다. 2005년 1월 28일 한 해 500억 달러대 매출을 올리는 프록터앤드갬블(P&G)과 연 매출 100억 달러대의 질레트가 합병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였다. 합병회사는 매출이 60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유니레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소비재 제조업체가 될 터였다. P&G는 질레트의 몸값을 시가에 18%의 프리미엄을 얹어 570억 달러로 쳐주었다. 세계 면도기 시장의 72%를 차지하던 질레트는 엄청난 결혼 축하금을 받은 셈이었다.‘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신부 쪽 아버지
재러드 A 램, 저스틴 램, 마티 앨런 램, 랜디 A 램, 스티븐 P 램······. 지난 4월에 나온 뉴코의 2022년 연차보고서는 표지 첫머리부터 사람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같은 성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어느 가족 기업의 경영진 이름 같기도 하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다. 깨알 같은 글씨가 앞표지 두 쪽을 빽빽하게 채웠다. 보고서 말미에는 같은 식으로 22쪽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이름이 적혀 있다.보고서 맨 앞에 그 실마리가 있다. ‘뉴코의 가치 창조자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뉴코의 팀 동료들은 언제나 우리의 진정
‘이사회는 2023년 9월 말 기준 보통주 1주당 0.51달러의 현금배당을 지급하기로 결의했다. 이는 당사의 202분기 연속 배당이다.’ 이 회사는 지난 50년 동안 해마다 배당을 늘려왔다. 경기 변동의 바람을 많이 타는 철강업계에서는 놀라운 기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의 거대한 철강업체들이 부상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경쟁자가 거꾸러졌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놀랍다.배당 왕 중 하나로 꼽히는 이 회사는 미국 최대 철강업체 뉴코다. 3년 전까지만 해도 40달러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지금 150달러대를 오르내린다.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