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행산 논설위원>

21세기 하고도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는 경인년(庚寅年), 백(白)호랑이의 해라는 2010년은 과연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달리는 ‘기호지세(騎虎之勢)’의 한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인생도 기업의 성쇠도 바뀌게 마련이다. 불황기에는 중소기업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지만, 그런 막막한 처지가 마냥 이어지지만은 않는 것이 또 세상사의 이치이기도 하다. 가혹한 고난과 시련은 때로 오히려 용솟음치는 굴기(屈起)의 바탕이 되고 축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10년은 21세기의 주역이 바뀌고 있음을 예감하게 한 격동의 시기였다. 21세기가 미국의 세기가 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지금 갈수록 미래가 불투명해져 가고 있다. ‘크리스천의 이상 국가 건설’이라는 청교도의 가치관이 흐트러지면서 사회가 타락하고 경제는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한동안 열강의 먹잇감이 되어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비웃음을 받던 중국은 세계 2대 강국으로 뛰어 올랐고, 국민소득 80달러를 밑도는 최빈국이던 한국은 G20의 핵심 국가로 세계무대 전면에 나섰다.

국제 금융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2050년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실로 가슴 뛰지만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사에는 수많은 부국과 강국들의 부침(浮沈)이 있었다. 국가든 기업이든 꿈이 있어야 번영하고,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가치관이 있어야 그 번영이 지속된다. 우리를 끌어준 꿈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였다. 그 꿈을 이룬 원동력은 억척이었고 헝그리 정신이었으며 투쟁정신이었다. 그러나 헝그리 정신과 투쟁정신은 극도의 이기주의와 매사를 투쟁적으로만 설정하고 일단 저항부터 하고 보는 부정적 사고를 팽배시켰다.

이래가지고는 우리의 번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의 예측은 이 점을 간과했다. 이제부터 새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다만 잘 살아보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내달리기 보다는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으로 개인의 존엄을 실현해야 한다. 배타적이고 부정적이며 투쟁적으로만 나아갈 것이 아니라 배려하는 동반자 정신을 지녀야 한다. 국가든 개인이든 기업이든 이런 성숙한 가치관이 없으면 번영과 발전은 한계에 부딪치고 이내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다.

새해 벽두부터 100년만의 눈 폭탄과 지루하고 매서운 한파가 휩쓸었다. 이 땅의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이 같은 폭설과 한파가 아닐지라도 사시사철 자금난에 허덕이고 대기업의 횡포 앞에 힘들어하는, 그야말로 눈비를 뒤집어쓰고 한파에 떨면서 얼어붙은 빙판길을 걷는 형국이 되어 하루하루를 넘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은 우리 서민들의 생활을 받쳐주는 기반이자 국가경제의 바탕으로 일익을 담당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보다 깊게 뿌리를 내리고 낙목한천의 겨울에도 무성한 잎을 피우며 상청(常靑)을 잃지 않는 송백(松柏)이 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성숙한 가치관이 자리 잡아야 한다. 기업에 웬 가치관? 코웃음 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업의 가치관은 가령 엄정한 상도의(商道義)일 수도 있다. 꿈(비전)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가치관은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거기에 충실하기도 쉽지 않다. 잠시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기업과 대를 이어 성장하는 기업의 갈림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는 필자의 얘기가 아니라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아나모리 가즈오가 말하는 기업경영 철학이다.

세한도(歲寒圖)의 사의(寫意)와 기업의 가치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대표작인 세한도(歲寒圖)는 엉성한 작은 집 옆에 벼락 맞아 허리 꺾인 낙락장송이 가지를 비틀어 잔명을 보존한 형상을 초묵(焦墨)의 갈필로 그리고 있지만, 이 그림은 보이는 모습만을 옮긴 것이 아니라 사의(寫意), 곧 뜻을 그린 것이라 해서 추사예술의 극치로 꼽힌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당하자 가깝던 친구들은 모두 등을 돌려 외면했다. 단물을 다 빨고 나면 사귐도 멀어진다. 절해고도로 쫓겨나 만신창이가 된 채 언제 사약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죄인 추사는 단물 빠진 허깨비였다. 그러나 작은 이끗을 두고도 염치없이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는 염량(炎凉)의 세태 속에서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배려는 변함이 없었다.

중인 출신의 역관(譯官)인 이상적은 스승 추사를 위해 심지어 청나라에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이라는 무려 120권 79책에 이르는 귀한 서적을 어렵게 구해와 귀양살이 하고 있는 추사에게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런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준 것이 세한도다. 이상적의 인품을 엄동이 된 뒤에도 푸르름이 변하지 않는 송백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림으로 그려준 것이다. 이 그림 한 장이 전하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추사는 이 그림에 긴 발문(跋文)을 썼다. 발문의 말미에 언급된 적공(翟公)의 고사(古事)는 이러하다.

한(漢)나라 때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그가 실각하자 그 많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다. 그 뒤 그가 다시 벼슬에 복귀하자 그의 집에는 또다시 날마다 친한 벗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거렸다. 이에 그는 대문에다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봐야 교정(交情⋅마음을 나누어 정이 쌓이는 것)을 알게 되고, 사업에서 망하고 흥해봐야 교태(交態⋅교제하는 태도, 즉 사람을 대하는 기본)를 알게 되며, 벼슬길에서 귀천을 겪어봐야 교정(交情)이 나타난다’고 써 붙여 사람들의 염량세태를 한탄했다.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세한도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끝에 일본인 추사 연구가 후지스카 지카시오(藤塜隣)에게 넘어갔다. 1944년 서예가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이 거금을 싸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병석에 누워 있는 후지스카를 3개월 동안 아침저녁으로 문안한 끝에 세한도를 되돌려 받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 이 그림은 미술품 수집가 손세기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한도는 우리의 귀한 가치인 선비정신이 집약된 19세기 조선문화의 한 정화(精華)다. 기업도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가치관이 있어야 성장한다. 엄동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켜오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그 송백의 절조와도 같은 가치관 위에서 번창하기를 기대한다. 2010년 올 한해에는 많은 중소기업들의 기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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