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번 정부 들어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기존 산업은행의 소유구조가 최적이 아니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산업은행은 “한국산업은행법”에 의해 설립된 정책금융기관으로 정부가 전액 출자한 국책은행이다. 기존 산업은행의 주요업무는 국내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업무, 정부의 주요 외자조달창구로서 국제 업무, 그리고 투자은행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이러한 산업은행이 주요업무를 담당하는 데 있어 국책은행이라는 지배구조가 효율성 극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 산업은행 민영화의 핵심은 투자은행 분리·민영화

산업은행의 여러 업무 중에서 이윤극대화와 어울리는 부분은 투자은행 업무이다. 국내기업에 대한 정책금융과 국제 업무의 경우 공공성이 강해서 이윤극대화를 목적으로 운영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정책금융공사라는 새로운 공공기관을 만들어 담당하게 됐다. 따라서 산업은행의 민영화의 요체는 투자은행 부분에 대한 분리와 민영화에 있다. 그렇다면 산업은행 민영화의 세부사항 역시 이러한 목표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현재 금융위원회에서는 산업은행 민영화의 정책목표로 ‘시장마찰 해소 및 선진형 정책금융 확립’과 ‘경쟁력 있는 투자은행 육성을 통한 금융발전’ 아 두 가지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목표인 시장마찰 해소 및 선진형 정책금융확립은 국책은행으로서의 산업은행이 국내 금융시장 내 국가가 부여한 손실금보전 조항 등의 특권하에 정책금융을 실시하는 데 대해 민간 금융기업들이 불리한 면이 있으므로 민간금융기업들이 이런 특권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첫째 목표는 사실상 민영화와는 별개의 정책금융업무 조정이다.

둘째 목표인 경쟁력 있는 투자은행 육성을 통한 금융발전은 산업은행이 이미 담당하고 있는 투자은행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소유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으로 민영화의 취지에 맞다고 볼 수 있다.

정책당국의 안에 의하면 산업은행의 투자은행 업무 부분은 지주회사를 만들어 CIB (Corporate Investment Bank) 로 만든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투자은행의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과정에서 대우증권을 인수하게 되었는데 대우증권의 업무가 주식 중개업 등 투자은행의 업무를 포함하고 있었던 데에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투자은행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면 이번 민영화에서는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한 분리 매각이 바른 길이다.

그런데 지주회사를 만들어 상업은행의 성격을 가미한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데는 정책당국이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매각할 경우 그 매각 대금을 키울 수 있고 이 매각 대금을 정책금융공사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목적이 그대로 달성된다면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민영화에서 산업은행이 벌어들일 매각대금은 지주회사를 만드느냐하고 무관할 가능성이 크다. 매수자가 어느 기업을 사들일 때는 그 기업의 가치를 고려해 대금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만일 그 기업이 매각 후 지주회사로 전환, 가치가 오른다면 정부는 매각단계에서 그 기업이 이미 지주회사가 됐을 때 가치까지 받아 낼 수 있다. 따라서 민영화의 밑그림으로 지주회사를 만들어 파느냐 마느냐는 사실상 매각대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복잡한 계획을 만들어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정책의 투명성은 훼손되고 이해 당사자들이 각자의 이해를 위해 애쓰게끔 해 민영화 자체가 어려워 질 가능성도 있다. 민영화의 요체는 산업은행의 투자은행 부분을 떼어내서 매각하는 것이다. 매각 후에 지주회사가 되느냐 마느냐는 인수자가 인수 후 실사를 통해 이윤극대화를 위해 가장 적합한 기업구조를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 정책금융공사 전대방식으로 중소기업에 간접지원

다음으로 민영화 자체와는 다른 문제이지만 첫째 목표인 시장마찰해소를 위한 방안을 살펴보자. 현재 정책당국의 안에 의하면 정책금융수단으로 간접지원 전대 (on-lending) 방식을 사용하도록 돼 있다.

정책금융이라면 우리나라와 같이 어느 정도 고도화 되어 있는 경제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전술하였듯이 산업은행이 금융시장에서 빌려 오는 돈은 정부의 지급보증이 들어가 있어 산업은행은 민간은행에 비해 저렴한 금리를 지불할 수 있다. 사실 산업은행이 가진 가치는 이러한 금리 상의 특혜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조차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정책금융공사가 간접지원 전대 방식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민간은행들이 이러한 금리 상 열세로 인해 중소기업 금융에서 경쟁력이 없으므로 민간은행들에 이로 인한 잉여를 나누어 주고 대신 민간은행이 가진 심사기능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지원 전대방식은 중소기업 금융에 있어 대출해 줄 자금의 주인과 대출해 줄 대상을 고르는 심사기능을 맡고 있는 주체가 분리되어 심각한 책임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 시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업무는 위험의 관리이다. 즉 대출의 경우 잠재적인 채무자가 얼마나 큰 위험이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그 대출로부터 경제적 가치가 창출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대출에 있어 위험관리를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출로부터의 이익 혹은 손해를 그 위험관리를 담당하는 주체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간접지원 전대방식은 대출 과정에서의 책임과 권리를 분리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오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인다. 즉 간접지원 전대 방식은 자금의 주인과 대리인인 심사 담당자를 분리시켜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를 발생시키고 경제적인 비효율성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 산은 민영화, 투자은행 부문 분리 매각으로 국한돼야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국내 금융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올바른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정책이 시장참여자들의 유인체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시행되는 것은 민영화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매우 우려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산은 민영화는 정책의 효과 극대화와 투명성 확보를 위해 소유구조 개선과 관련 있는 투자은행 부문의 분리 매각으로 국한돼야 한다. 아울러 간접지원 전대 방식이라는 정책금융 방식은 책임과 권리가 일관성 있게 부여되는 구조로 대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