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올해 현금 배당액을 지난해보다 3배 넘게 늘림에 따라 대주주 론스타의 투자금 회수율이 세전 기준 100%에 육박하게 됐다. 미국계 폐쇄형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 자리를 유지하면서 본전을 대부분 되찾은 셈이다.

외환은행은 지난 2일 이사회를 열고 2009년 8천91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 오는 3월 정기 주총에서 주당 510원씩 3천289억 원을 현금배당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배당 결정으로 외환은행의 지분 51.02%를 보유한 론스타에 1천678억 원이 돌아간다. 이렇게 되면 외환은행은 2009년까지 론스타에 총 8천560억 원을 배당한 것이 된다. 여기에 2007년 6월 지분 13.6%를 매각해 회수한 1조1천927억 원을 포함하면 론스타의 누적 회수금은 2조487억 원에 이른다. 2003년 10월 2조1천548억 원을 투자해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전체 투자금의 거의 대부분을 회수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연내에 성공적으로 매각할 경우 추가로 5조원 정도의 수익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영업을 하는 은행들은 대부분 공적자금 성격이 강한 정부의 지급보증과 유동성 공급 등 국민 부담 덕택에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은행들의 문턱은 서민과 중소기업들에겐 여전히 높고 고압적이며 독단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 정규직 행원의 2008년 현재 평균 급여 수준 가운데 외환은행이 9천892만 원으로 가장 높고 기업은행이 7천900만 원, 하나은행이 7천만 원, 신한은행이 6천930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200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미국의 40%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국내 은행원들은 국민소득 대비 미국 은행원들의 거의 세배에 가까운 임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동아일보5일A5면). 이에 비해 이들 국내 은행의 생산성은 미국의 금융기관 생산성의 3분의 2에 머무른다는 게 한국생산성본부의 분석이다.

외환은행이 영업을 잘 해서 주주들에게 두둑한 배당금 보따리를 안기고 은행원들이 평균 무려 1억에 가까운 연봉을 챙기는 등 돈 잔치를 질펀하게 벌이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은 박수를 보내기보다 씁쓸한 느낌이 앞선다. 은행이‘영업을 잘 해서 엄청난 이윤을 올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 지나치게 은행의 이윤만을 추구한 나머지 그렇지 않아도 만만찮은 금리에 더하여 갖가지 규제 장치를 동원해 고객인 국민과 기업을 옥죄고 쥐어짜고, 악덕 사채업자와 다를 바 없는 영업행태로 많은 서민과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무리는 없었는지, 그렇게 해서 얻은 영업이윤을 산업발전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들의 뱃속부터 채우기에 바쁜 것은 혹 아닌지, 엄중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은행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단순 대금업이 아니다. 공공성을 지니는 기관이다.

최근까지 잘 나가던 한 중소 소각로 플랜트 제조설비업체가 자회사의 금융채무를 보전하기 위한 외환은행의 지나친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극히 사소한 한 예에 불과할 수 있다. 이 기업은 지난 10여 년간 국내 민간 소각로분야 1위 업체로, 총매출 합계 약 1천억 원을 상회하는 신생 에너지업체다. 이 기업의 자회사가 베트남에 설립한 현지법인은 채무상환을 위해 부동산 매각을 서두르고 있으나 이마저도 채권단의 상호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도 외환은행이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회사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채권은행의 채권회수 방법이 채무기업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규정과 법의 절차에 따라 너무 냉정하게 진행된다고 해서 이를 비난만 할 수도 없다. 외환은행으로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외환은행을 제외한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다른 채권단 은행들은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원금유예와 이자 대폭 감면 등을 해주었으나 유독 외환은행만 담보확보 등 채권보전에만 골몰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엄밀히 말해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사회 통념상 모든 일에는 법이나 규정 이전에 보다 폭넓은 이른바 ‘통섭(通涉)’이라는 윤리가 있다. 물론 법과 윤리는 늘 충돌한다. 하지만 통섭은 법이나 규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보다 더 놀라운 상생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흔하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고 하는 것이 통섭의 가치요 윤리다. 자금난과 채무에 시달리고 궁지에 몰린 이 땅의 많은 영세 중소기업들은 그런‘상거래에 있어서의 통섭’, 곧 윤리를 보다 더 신뢰하고 갈망한다.

정부가 내건 이른바‘금융 선진화 비전’은 규제 완화에 그 초점이 모아진다. 국책은행이자 당시 국내 자본규모 3위였던 외환은행은 89년 민영화 이후 98년 무렵에는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부실채권으로 망하기 일보직전에까지 이르렀었다. 결국 헐값 매각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론스타에 넘어가 도산을 면하고 버텨오고 있으나 신종자본증권 2천500억 원을 조기 상환한 데다 현금배당이 늘어나면서 외환은행의 자산 건전성은 현저히 악화됐다.

외환은행은 큰 이윤을 남겼다고 우쭐해서 흥청망청할 일이 아니다.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지난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아가, 금융이 고객인 국민과 기업의 신뢰를 잃으면 자칫 부실화로 치달을 수 있고 심지어는 도산에 이를 수도 있다는 평범한 이치를 유념해야 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