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날씨다(We Are the Weather)

미국의 재기 넘치는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44)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저 멀리서 벌어지는 전쟁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 실존을 뒤흔드는 위기,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이지만 그 심각성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사태 해결에 온전히 몰두하기 어렵다는 뜻에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실제로 그렇지 않나.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회의론자는 일단 제쳐 두자. 자명한 사실로 믿는 기후변화론자라 하더라도 실제 행동에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 포어에 따르면 이는 인식과 느낌의 간극, 또 우리의 상상력이 피로에 전 탓이다. 지나치게 자주 기후변화 경고론에 노출돼 모두들 어느 정도 무감각해져서 그렇다는 얘기다.

포어는 미국 문학계에서 '문학 신동'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던 작가다. 9·11 테러를 소재로 한 2005년 장편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어느덧 마흔을 넘겼으니 신동이라는 표현이 어색해진 중년의 포어가, 앞서 얘기한 집단적인 기후변화 불감증에 균열을 내고자 외부 연구 보조까지 고용해 가며 야심 차게 집필한 책이 바로 '우리가 날씨다'이다.

포어의 접근법은 역시 고리타분하지 않다. 오히려 신박하다고 해야겠다. 세상에 만연한 기후변화 불감증과의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기후변화 불감증과 싸운다. '당신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실감 나게 전하기는 진짜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심각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그러나 별 감흥은 불러일으키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경고론을 되풀이하기보다는, 읽는 이의 불감증을 건드려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방식으로다.

포어의 그런 의도가 다음 문장들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더불어 좋은 이야기들이 역사가 된다." (27쪽)

이 문장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되는 1955년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의 버스 좌석 양보 거부 사건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서서 가던 백인 승객이 앉아 있던 파크스에게 좌석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해 체포됐던 사건 말이다. 포어에 따르면 버스 좌석 양도 거부는 파크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아홉 달 전 클로데트 콜빈이라는 흑인 여성이 같은 행동으로 체포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콜빈은 무학에 미혼모였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친 재봉사라는, 보다 극적인 인물이 필요했고 그 결과 부각된 게 로자 파크스였다는 것이다.

결국 포어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기후변화는 심각하다. 사람들의 폭발력 있는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적인' 서사가 있어야 한다. 당신은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 독자인 당신이나 쓰는 저자인 나나 그런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 

그렇다고 포어가 이런 수사 전략에만 골몰하는 건 아니다. 기후변화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부터 확인하고 싶다면 책의 78~80쪽, 그리고 2부 '어떻게 하면 대멸종을 막을 수 있을까'를 먼저 읽으면 된다. 그야말로 간명한 수치들이지만 현실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이 대목들에 따르면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 멸종’을 경험하는 중이다. 물론 인간이 자초한 기후변화 때문.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자는 파리협약도 소용없다. 성공확률이 5%에 불과한 데다 성공한다 해도, 이미 저질러 놓은 일만으로 ‘부분 멸종’을 피할 수 없다. 가령 파리협약 목표치를 달성한다 해도 1억4300만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4억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며 모든 동물 종의 절반, 모든 식물 종의 60%가 절멸 위협에 직면한다.

덴마크 '채식주의당(Vegan Party)'의 활동가들이 지난해 초 인어상을 돼지로 분장한 다음 '덴마크는 돼지 공장'이라는 플래카드를 돼지 목에 내거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있다. 덴마크 공장식 축산시설의 축사 환경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AFP=연합뉴스]
덴마크 '채식주의당(Vegan Party)'의 활동가들이 지난해 초 인어상을 돼지로 분장한 다음 '덴마크는 돼지 공장'이라는 플래카드를 돼지 목에 내거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있다. 덴마크 공장식 축산시설의 축사 환경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AFP=연합뉴스]

이런 파멸에서 벗어나거나 늦추는 길은 없는 걸까. 포어는 육식을 줄이자고 제안한다. 축산업이 기후변화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얘기는 아니다. 최소한 아침·점심만이라도 고기 섭취를 자제하자고 한다. 이런 논리에 허점은 없어 보인다. 책을 읽고 판단해보시라. 당신이 기후변화론자라면 남은 길은 하나다.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것으로부터 당신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일 말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