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사람들이 의사·공무원보다 창업 선호하는 사회 됐으면"

동국성신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운 강국창 회장이 17일 중소기업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지하 기자
동국성신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운 강국창 회장이 17일 중소기업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지하 기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중소기업이 소멸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일본의 경우 박사까지 공부한 사람도 가업인 우동 장사를 물려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가업을 승계받는 걸 대부분 꺼려해요."

"일본처럼 가업 승계를 자랑으로 여기도록 우리나라도 사회 분위기가 바껴야 해요. 아직도 넥타이 맨 사람만 대우받고 '블루칼라'(제조업 종사자)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성장시키는 데 제조업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는데도 말이죠."

가전부품 분야에서 40여 년간 자기 길을 걸어오며 동국성신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운 강국창 회장은 "우리나라 중소기업계의 문제점을 꼽아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를 이어 장수하는 중소기업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아쉬워했다.

"요즘 젊은이들 대부분 안정적인 공무원만 되려고 하죠. 머리 좋은 인재들이 중소기업에 가려고 하나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공무원이나 변호사, 의사 등의 직업에만 매달립니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적인 사업가, 혁신적인 기업인이 나오겠습니까."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 자수 성가한 사업가가 되려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가야 한다는게 강 회장의 지론이다.

"대기업에 가면 품질관리 하나만 가지고도 일이 넘칩니다. 중소기업에서는 인사관리에 노무관리, 마케팅, 영업 등 여러 업무를 섭렵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직접 부딪히면서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재산이 되는 거죠. 다양한 일을 하다보면 조직의 수장도 될 수 있고, 성공한 사업가도 될 수 있는 겁니다."

◆ 전자부품 국산화 선도…국내외 공장 10곳 운영

17일 인천 고잔동에 있는 동국성신 본사에서 만난 강 회장(79)은 지금도 작업복을 입고 전국의 공장을 수시로 둘러본다고 한다. 나이를 잊게 하는 그의 반듯한 자세와 강건한 체형, 힘 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동국성신이라는 세계적인 강소기업을 키운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1943년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서 7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난 강 회장은 태백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합격해 상경했다. 대학 졸업 후 동신화학과 동남샤프공업 등 가전회사를 다녔다. 그는 동남샤프에서 30대 중반에 기술부장을 할 정도로 뛰어난 업무실력을 인정받았다. 

"일본에서 제품을 수입하려면 외화가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달러가 부족했죠. 그래서 정부가 기업들에게 국산화 계획을 요구했습니다. 내년부터 어떤 제품을 국산화하겠다는 계획을 상공부에 제출해야만 수입 승인을 해주겠다는 거였죠."

우리나라에서 가전제품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1960년대. 삼성전자와 대우전자, 금성(현재 LG)사 등 대기업은 일본 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맺는 게 흔한 일이었다. 국내에서 만든 가전제품의 99%가 일본 제품을 그대로 카피한 것. 국내 기업들은 케이스만 만들고 부속품은 일본에서 모조리 가져온 것이다.

"당시에는 국산화 계획을 세워도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여건이 안됐습니다. 전국의 중소기업 공장을 찾아다니며 제품을 만들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모두 힘들다고 고개를 저었어요.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한 제가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것이 제가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된거죠."

30대에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퇴직금을 투자해 성신하이텍을 세운 그는 당시 국산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졌던 냉장고 '도어용 가스켓(자석으로 냉장고 문을 닫히게 하는 부품)'을 본인이 직접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국내 대기업도 개발이 어려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제품이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결국 국산화에 성공했다. 

강 회장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냉장고 도어용 가스켓을 삼성, 대우 등 대기업에 공급하며 가전부품의 국산화에 물꼬를 텄다. 이후에도 그는 40여 년간 가전산업에 종사하면서 냉장고 성애방지용 히터, 세탁기 공기방울펌프, 전기밥솥 온도조절기, 비데용 보온시트 등 가전제품 핵심부품들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동국성신은 2014년 동국전자와 성신하이텍을 합병한 회사다. 인천과 광주, 창원, 제주 등 국내에 5개의 공장이 있고, 해외의 경우 중국, 멕시코, 베트남, 폴란드 등에 5개를 운영 중이다. 직원은 국내 600명, 해외 1200명 수준이다. 강 회장은 동국성신 외에도 가나안전자정밀, 제주도의 스프링데일 골프&리조트가 속해 있는 동국개발을 경영하고 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그는 2010년 가나안전자정밀을 통해 1000만불 수출탑을 받았고, 2014년에는 동국전자와 성신하이텍을 합병해 동국성신으로 새롭게 출발하며 조직을 정비한 후 또다시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2015년엔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2016년에는 HDI인간경영대상 사회공헌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중소기업중앙회가 뽑은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에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 "흙수저가 금수저될 수 있는 나라 만들어야"

강 회장은 노동시간 단축 정책으로 근로자들이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식 정책"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지금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현재 단계적으로 시행 중인 주 52시간을 위반할 경우 사업주가 처벌을 받게 되니까요. 본인의 자유 의지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겁니다. 노사합의가 있다는 전제하에 근로자가 원하면 일할 기회를  주고 돈을 더 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천에서 용(龍)이 나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나라 말이죠. 부모의 지원 없이도 본인이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해요. 남 놀 때 안 놀고, 남 잘 때 안 자고 일하면 수년 뒤에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맘만 먹으면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야 합니다." 

정부의 중소기업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강 회장은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자꾸 분리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중소기업은 정보력과 마케팅 능력이 취약한 반면 대기업은 조립능력과 제품을 전 세계에 팔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이 탁월합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각자의 역할 분담에 충실해야 서로 이익이 나고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거에요."

수출을 하려면 해외 마케팅 능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인재는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 중소기업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개발 정보력도 부족해 어떤 물건을 언제 얼마에 개발할지, 거래가 성립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렇게 부족한 부분을 대기업이 감당하고 중소기업은 그 정보에 따라 물건을 만들고 대기업이 사주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만든 부품을 조립만 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 대기업은 나사를 조이는 드라이버만 있으면 중소기업이 만든 수백, 수천개의 부품을 조립해 TV나 냉장고,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동국성신 본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이지하 기자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동국성신 본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이지하 기자

경제계를 중심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강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은 국익이라는 저울을 놓고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데 있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정의와 진리도 국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국가에 유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에요."

"치열해지는 반도체 패권경쟁과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기업인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경총 회장 취임 "中企-지역경제 동반성장 견인"

강 회장은 지난 3월 제17대 인천경영자총협회(인천경총) 수장자리에 올랐다. 수십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경영기술과 노하우를 발휘해 인천소재 중소기업과 지역경제와의 동반성장을 견인하고,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앞장서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경총을 포함해 총 11개의 공장을 관리·운영한다는 마음가짐이에요. 경총 회장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 중입니다. 조직내 규정을 현실화하고 업무 방식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드는 게 첫번째 목표입니다."    

강 회장은 중소기업의 성장과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각종 공동 주최 행사나 교류회를 열 계획이다.

"현재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인천지역 경영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어요. 이분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지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과 경영자들이 머리를 맞대 국가 장래를 고민하고 경제와 기업을 살릴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자리를 만들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강 회장은 본인의 좌우명으로 히딩크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강조했던 "멀티플레이어가 되라"를 꼽았다. 

"공격수는 공격만 하는게 아니라 때로는 수비도 하고, 미드필드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강팀이 되는 것이죠. 회사 직원들에게도 자신의 전문분야 외에 다른 업무에 대한 지식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항상 강조해요."

"일에 욕심이 있는 사람, 조직에 애착심이 있는 사람, 한 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중소기업에 필요합니다. 이런 인재가 많아야 기업이 강해지고, 해외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클 수 있어요. 성공을 꿈꾼다면 본인이 멀티플레이어가 돼 강소기업을 만들어보세요.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지혜를 얻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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