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익진 교수 ijseo@dreamwiz.com  <경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서익진 교수
비우량주택담보(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화로 비롯된 미국의 금융위기가 미국을 사실상의 국가부도 상태에 빠뜨리고, 그 파괴적인 영향은 금융의 세계화가 만든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에 통합된 모든 나라가 예외 없이 타격을 받고 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투자기관들의 직접적인 손실도 막대하지만, 주가·환율·금리 등 금융 지표들의 요동으로 경제적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더구나 실물경제 역시 금융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대외의존도가 유달리 높은 우리 경제는 당장 수출에 타격을 받고 이에 따라 성장과 고용도 불리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연착륙(안정적 성장)을 위한 조정기에 들어선 중국경제마저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착륙(경기침체)하게 된다면 우리 경제가 받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불안정과 불확실성 더욱 높아져

이러한 전망은 더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로 진행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계경기의 침체 전망으로 석유와 원자재 등의 국제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폭등 이전의 수준까지 되돌아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그로 말미암은 생산비 인하 효과 역시 수요 위축에 따른 판로상의 애로를 상쇄할 정도로 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에서 투기의 역사는 거의 인류의 역사에 버금간다. 어느 시장에서건 과도한 투기거품의 형성은 언젠가는 반드시 폭발한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불변의 교훈이다. 이른바 '막차'를 탄 경제주체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고, 이번에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위기의 근원은 저금리 상황에서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 가계들이 담보대출을 받아 자가주택을 마련했고 중산층 이상은 주택 가격의 상승을 이용하여 대출받은 자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데 있다. 그런데 사정이 반전되어 주택의 공급초과로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가 상승하자 주택을 되팔지 못했거나 상환 부담의 급증으로 채무 원리금의 지불불능에 빠진 가계들이 무수히 늘어났다.

그런데 이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 은행들만 곤란에 빠진 것이 아니다. 은행들은 이러한 고위험 고수익 대출의 상환불능 위험(즉 신용위험)을 피하고자 증권사들에 이 채권을 되팔았고, 이들은 사들인 대출채권들을 바탕으로 자산 유동화 기법 등을 활용하여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의 투자은행과 펀드들에 다시 되팔았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주택담보대출에 따른 채권·채무 관계가 전 세계의 유수 금융기관 간의 상호 채권·채무 관계로 확장되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용파생금융상품들은 원리적으로는 위험의 분산과 이를 통한 거래의 활성화를 위해 개발된 것인데 이것이 오히려 자승자박이 되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파생상품들이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은 확실하지만, 결코 위험 그 자체는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은 오히려 채권·채무의 총액 즉, 위험의 전체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부풀려놓았다. 더구나 수많은 대출을 쪼개거나 합쳐서 파생상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채권·채무의 인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게 되어 손을 쓰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이다. 미국정부가 물경 7000억 달러의 긴급구조자금 - 1997년 한국의 국가부도사태 때 IMF 긴급구조자금이 약 550억 달러였음을 상기하면 이 금액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 있다 - 을 투입코자 하지만 이로써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파생상품과 투기자본 규제·감독장치 필요

이처럼 모든 투기 거품의 종말이 그러했듯이 결국은 시스템의 붕괴를 피하고자 국민의 세금에 다름 아닌 공적자금으로 허황한 욕심에 눈먼 투기꾼들의 손실을 메워주게 된다. 경제에서 이처럼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번에는 공적자금 투입의 대가로 최소한 파생상품의 창조와 거래 그리고 투기자본의 국제이동에 대한 확고한 규제 및 감독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투기 자체는 근절되기 어렵겠지만, 투기꾼들의 도덕적 해이(대마불사의 기대, 개인 손실의 사회화 등)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부문 또는 일국의 위기가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너무 많은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은 반드시 제대로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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