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기획 / 중소기업 울리는 '주52시간제'③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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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는 소규모 건설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거에요. 입주민들에게 회사에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는데, 입주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하면 순순히 받아들여 줄까요? 약속한 준공일을 지키는 것은 건설사 입장에선 '생명'과 다름이 없습니다. 건설바닥에서 신뢰를 잃으면 추후에 건설계약을 따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져요. 최악의 경우 문을 닫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형건설사에 근무하는 A씨는 서울 마포구 일대 한 건설현장에서 이같이 하소연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회사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10월 말까지 아파트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지만, 공정기간(공기)을 제때 맞추기가 어려울 게 뻔하기 때문이다.

◆ 주 52시간 근무제, 득보다 실 많아

공기는 공사 착공부터 완공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건설사들에게 '공기 준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공기가 지연되기라도 하면 입주 일정까지 줄줄이 연기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지할 수 없는 연속작업이 많아 실제작업 종료시점을 확정할 수 없어 근로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돌발변수가 많다. 지형, 지질, 기후, 자재공급, 품질, 설계변경, 민원, 발주자 지시, 협력업체 부도 등 관리업무의 경우 시공관리 외 현장 상황에 따른 추가 근로(내근 업무)를 할 수밖에 없어 근로시간 변경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같은 문제가 현실화할 경우 건설사는 입주 일정 지연에 따른 입주 지체 보상금, 인력 증가에 따른 사업비용이 증가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나아가 주 52시간 근무제의 더 큰 부작용은 부실공사와 품질저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A씨는 "건설현장 관리자들이 몇일 간 여유를 갖고 공사진행 과정을 꼼꼼히 확인해야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빠듯한 근로시간과 인력부족 등으로 급하게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공사 일정이 빠듯한 단기 공사를 수주하는 중소 건설사와 하청업체의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시 사업 유형별 77개 토목사업 중 34개(44.1%), 건축사업 32개 중 14개(43.7%) 사업이 공기 부족에 직면할 것으로 조사됐다.

발주자 유형별로는 63개 공공사업 중 26개(41.2%), 13개 민자사업 중 8개(61.5%), 32개 민간사업 중 13개(40.6%)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공기가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 한 대형건설사 현장소장 B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공기 내 준공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 근로자들의 수입 감소, 공사비 증액 분쟁, 고용불안 등이 야기될 수 있다"며 "산업 특성을 고려해 보다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이나 입주지체보상금 등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52시간제는 사무직 직원들에게 어울리는 것"이라며 건설현장 근로자들에게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 건설업계 읍소에도 고개 젓는 정부

이처럼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자의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이른바 '워라벨(Work & Life Balance)' 확산을 위해 추진됐다. 그러나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게는 보완대책 없이 근로시간이 단축되며, 이들은 혼란과 경영난을 우려한다.

이러한 목소리에 공감하며 경제 5단체(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14일 호소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경제단체는 입장문에서 "코로나19 여파로 현장에서 느끼는 경제 상황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특단의 보완책 없이 50인 미만 기업에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 큰 충격을 주게 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마련해줄 것과 함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 기간을 확대, 월·연 단위 추가연장근로 시간 연장 등을 요구했다. 또 특별연장근로제 인가 기간은 현행 90일→80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도를 현행 30인 미만 사업장 대상에서 50인 미만으로, 현행 주당 12시간 연장근로 허용을 노사 합의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주 52시간제 도입을 위한 준비기간은 충분했다며 이를 외면하고 있다. 다만, 처벌보다는 제도의 조기정착 유도에 역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동안 어느 정도 준비기간이 있었던 점, 그리고 대상기업의 95%를 차지하는 5∼29인 사업장(74만개)은 근로자대표와 합의해 내년 말까지 52시간에 8시간까지 더해 최대 60시간이 가능한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일부 열악한 뿌리산업 기업이나 52시간제가 당장 적용되는 30~49인 규모 대상 기업들이 52시간제 적용상의 현장 어려움을 제기하기도 하는 점을 고려해 제도 안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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