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기 교수, 인간개발연구원 조찬세미나 강연서 강조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면서 실력을 기르고 내부 분열을 치유해야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1일 인간개발연구원 주최로 서울 소공동 소재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본다’는 주제 강연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한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해서는 국가 간 협조가 중요하지만 나라마다 국경을 높이고 ‘백신 이기주의’로 번져 세계 리더십이 마비된 지금은 미·중 ‘G2’가 아닌 ‘G 제로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코로나를 벗어나도 미·중 패권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현실 앞에 대한민국이 선택할 길은 먼저 사회경제적으로 존재감을 높이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가 주장한 것은 앞으로 국가 간 쟁점은 옛날과 같은 '침략전쟁'이 아닌 ‘경제전쟁’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는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반도체 하나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즉 앞 뒤가 적이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도체+α’, 즉 반도체 너머의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내부 분열로 인해 강대국의 이이제이(以夷制夷·한 세력을 이용해 다른 세력을 제어함)에 노출되는 리스크를 극복하는 노력이야말로 위기를 가장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중요한 마인드라는 것이 한 교수의 주장이다.

중국이 과거 엄청난 침략에도 강대국으로 남은 이유는 전 세계인 누구나 좋아하는 아이템 세 가지(비단, 생사, 도자기) 있었기 때문으로 한 교수는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 세계인이 중국처럼 좋아하는 제조업은 없으나 세계 2위의 은 생산국가라는 '복'을 받았기 때문에 강대국으로 남았다는 논리를 한 교수는 폈다.

한 교수는 “포루투칼이나 스페인, 일본 상인이 15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요즘의 달러역할을 한 ‘은’을 싸들고 매력적인 아이템을 사려고 몰려들면서 은의 33% 최종 집결지가 중국이었다”며 “중국 경제 비중이 앞으로 세계의 33~35%를 점유할 가능성을 내다본 것도 은을 많이 보유했던 옛날로 컴백할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 교수는 “한국은 불행하게도 17세기 후반까지 인삼이 은을 빨아들이는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했으나 18세기 후반에는 전 세계에 내세울 상품이 없었다”며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반도체가 있어 미국과 중국에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며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교수는 “대만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하지 않았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반도체로 인해 무시당하지 않고 있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미·중패권 싸움에 낀 한국은 ‘조선시대 은이자 인삼인 반도체’만으로는 부족해 ‘반도체+α’의 힘을 키워 유연하면서도 자기원칙을 지키는 대외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도 "지금처럼 정치권이 진영논리에 갇혀서는 과거의 역사가 말해주듯 한반도를 둘러싼 신흥강국의 패권싸움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1000년간 중국과 좋지 않을 때 최소한 일본과는 현상유지 내지 좋도록 하는 것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이라는 것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의지와 관계없이 패권 교체 조짐이 나타날 때 한탄하며 도덕적 접근만 할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예민하게 살피는 한편 서애 류성룡의 ‘징비(懲毖)’정신, 즉 ‘지난 잘못을 경계해 후환을 대비’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미국은 이민국가로서 내부 거버넌스(협치) 문제가 있어 패권 유지의 어려움을 겪고 중국은 시진핑의 세계 재편에 대한 낙관론을 펴는 등 미·중 패권 싸움에 낀 우리나라는 체면을 유지하면서 대일외교의 타이밍을 잡고 실리를 챙겨야 한다"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전략적 사고와 내부통합을 통한 유연성과 원칙을 지키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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