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규슈지역 유후인(由布院)은 작은 산촌이지만 연간 방문객이 400만 명이 넘고, 100만 명은 숙박까지 하는 일본 제일의 온천 마을이다. 여기에 있는 가메노이 별장호텔의 주인 나카야 겐타로(中谷健太良, 84세)씨는 도쿄에서 일본대학을 졸업하고 영화감독으로 활약했다. 호텔 주인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의 요청으로 고향에 돌아와 가업인 호텔업을 계승했다. 그는 유후인 지역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지도자로 유명하다. 낙후된 고향 마을 유후인을 예술과 문화관광, 온천지역으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필자와 오랫동안 교류해온 그는 한국문화에 대해서 관심도 많다. 그래서 `비탈진 밭을 경작`하는 한국미술작품을 선물한 적도 있다. 선물에 감동한 그는 잠깐 회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한국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그가 동경으로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에 호텔에 불이 나서 건물 한 동이 소실 되었다. 이로 인해 가업이 기우러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할 지경이 되었다. 이때 이를 들은 조선인 직원이 3년 동안 임금을 안 받고 봉사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 조선인의 희생으로 자기가 동경유학을 하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동경에서 영화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그가 아버지가 사망한 뒤 가업을 잇기 위해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영화감독을 포기하고 유후인에 내려 온다는 것은 뚜렷한 신념없이는 할 수 없는 결단이다. 그는 고향에 내려오자 마자 긴 안목으로 고향발전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웃 벳부 온천과는 차별화하는 전략이다. 단순한 온천이 아닌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는 온천관광지다. 영화감독이 온천이 있는 유후인에 문화와 예술이라는 스토리를 입혀 유명 관광지로 연출한 것이다.

가메노이 별장호텔의 가업 승계는 대를 이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의 아들이 고향에 내려와 가업 승계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일본농협에서 근무하며 오래 교류한 이노우에스미다다(井上純忠)에게 물었다. 그는 아버지가 미야사키(宮崎)현 영주의 주치의인데 아버지의 권유로 자주 보신탕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에 오면 김포공항 부근에서 보신탕을 꼭 먹고 가면서도 일본인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

“당신도 정년퇴직 하면 고향에 내려가 가업을 계승할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통을 물려받을 수 있는 가업이 있다면 당연히 귀향하겠습니다. 안정적이고 자부심도 있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자기 형이 가업인 의사를 하고 있어서 자기가 갈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동경사무소 근무시절 일본농협중앙회장을 지낸 분이 고향 시고쿠(四國)에서 운명을 달리해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 당시 그의 아들은 동경에 있는 농림중앙금고에 근무했다. 농림중앙금고는 세계 금융 기관 중 경쟁력 2위의 은행이다. 그는 자기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에 농림중금의 고위직인 부장직을 퇴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가업인 농업을 이어가기로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농협중앙회에서 전무이사를 지냈던 야마다도시오(山田俊男)와 가깝게 지냈다. 그는 정년퇴직 할 즈음에 농협조직이 밀어서 참의원의원으로 당선시켜서 25년째 하고 있다. 참의원 농수산위원장을 맡고 있다. 3년 전 동경에서 만난 그가 자기 집에서 하루 밤 자라고 해서 방문 한 적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1시간 걸리는 곳에 대지 20평에 1.2층 30평 건물이다. 1층에 있는 방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그는 농협직원과 국가의 최고의 자리에 가는 명예를 얻었으니 돈은 좀 부족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일본인의 천직의식과 직업관에는 일본의 사무라이 중심의 지배구조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명예는 천황의 가계가 갖고 지방의 사무라이는 권력을 갖는다. 사무라이는 강력한 힘은 갖고 있지만 재물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의 역사와는 달리 지방토호인 사무라이들이 서로 전쟁을 할 때도 농민이나 상인은 언덕에서 도시락 싸들고 구경 한다. 농민 상인 공인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해서 가업을 유지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구조다. 조선시대의 농민이나 상공인은 권력자의 착취 대상이었다면 일본에서는 오히려 권력자의 보호를 받으면서 강력한 경제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천직(天職)이란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천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내가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천직의식을 갖는다면 직업에 대한 귀천(貴賤)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평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성공한 인생이다.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보수를 받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 그리고 내 생애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면 일은 즐거워질 것이며 능률도 향상될 것이다. 일의 소중함과 신념에 찬 직업관을 가진 사람은 이미 그의 인생에서 절반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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