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세종대왕과 우리 대중가요는 어떤 상관이 있을까. 1397년 음력 4월 10일(양력 5월 15일)이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 충령대군 이 도(李 祹, 행복할 도)의 생일이다. 그가 22세이던 1418년 조선 4대 임금으로 즉위한 세종대왕이다. 이후 세종은 백성들이 당시의 문자(한자)를 쉽게 배우지 못하며,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않아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28개의 글자를 창제하여, 1946년에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반포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음(말)이다. 이 훈민정음의 기본인 가나다라마바사가 우리 유행가로 환생한 것은 1960~1990년대이다. 그중 1980년 송창식이 제일교포3세들이 우리말을 쉽게 배울 수 있게 만든 노래 <가나다라>가 대중들의 인기를 받으면서, 1982년 제1회 가톨릭가요대상에서 작사 부문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은 김수환 추기경(1922~2009. 군위 출생)이었다. 훈민정음 반포 534년 만에 탄생한 유행가가, 2년 뒤에 우리말을 모티브로 한 노랫말 상을 받은 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헤이 헤이~.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헤이헤이/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 내 노래는 너무너무 짧고/ 일이삼사오륙칠/ 팔구하고 십이요 헤이헤이/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두 팔이 너무 모자라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 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노를 저어 나아가라/ 가자 가자 가자/ 가슴 한 번 다시 펴고/ 하늘천따지 검을 현 누루황 헤이헤이/ 알고 싶은 진리는/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머리가 너무너무 작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 번 웃자/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헤이헤이/ 쫓고 싶은 인물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다리가 너무너무 짧고/ 갑자을축 병인정묘/ 무진기사 경오신미 헤이헤이/ 잡고 싶은 순간은/ 너무너무 많은데/ 가는 세월은 너무 빠르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 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뱅글 뱅글 뱅글/ 다시 보면 다시 그 자리/ 중건천 중곤지/ 수뢰둔 산수몽 헤이 헤이/ 하늘보고 땅 보고/ 여기저기 보아도/ 세상만사는 너무너무 깊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 번 웃자/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 번 크게 웃자고.(가사 전문)

우리 말 자음과 모음을 합친 가나다라~. 교포를 위하여 만든 노래인데, 이 노래는 송창식의 작가주의 정신이 담긴 곡이다. 음반 재킷에는 송창식의 다양한 얼굴표정을 캐리커처로 담았고, 너풀거리는 춤을 연상시키는 그림은 음반 뒷면에 장식했다. 이 노래 발표 후 송창식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은 없다. 접목은 근본이 비슷한 것끼리 가능한 것이다. 가끔은 서양 노래도 부르지만, 내 음악의 기본은 국악이다.’라고 피력한 바 있다. <가나다라>는 태평소와 꽹과리 등 국악기의 연주를 전주·반주·간주에 멜로딩하여 우리 가락 흥취를 드높였다. 이 노래는 2012년 KBS 불후의 명곡2의 ‘영원한 청춘의 노래 송창식’ 편에 출연한 재미교포 가수 팀이 열창했었다. 발음도 또록또록했었다.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에 가나다라를 모티브로 한 노래는 몇 곡 더 있다. 1966년 최초의 댄스가수로 불리는 이금희가 부른 영화주제가 <가나다라 차차차>가 이의 사립문 같은 노래다. ‘가나다라 비결은 모두 셋이죠/ 가나다라 다 같이 불러 봐요/ 가나다라 다시 한번 외워 봐요/ 아빠도 엄마도 가나다라/ 다시 한번 외워 봐요/ 가나다라 잊으며는 안되요.’본명이 이대금인 그녀는 1959년 20세에 미8군무대에서 가수로 데뷔 후 1960년대에 본격 가수로서 활동하면서 <키다리 미스터김> 등을 열창하다가 2007년 타계했다. 그녀는 최초의 팬클럽(키 180㎝ 이상 남성 팬클럽)을 가지고 있었다. 1972년 김정미가 부른 <가나다라마바>도 있다.‘가나다라마바/ 가나다라마바/ 가나다라마바/ 날마다 너를/ 나 수없이 부르고/ 부르는 그 이름이여/ 어렸을 때 너를 알고 사랑했지/ 그 이름이여/ 가나다라마바 날마다 너를/ 나 수없이 부르고 부르는/ 그 이름이여.’이 김정미의 노래를 송창식이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 김정미의 노래는 우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교육 모멘텀 유행가다. 1992년 베트남 출생 재미교포 가수 양준일이 부른 <가나다라마바사>도 있다. 이 곡은 사랑하는 남녀 친구끼리 사랑한다는 말 대신 가나다라마바사를 암호로 사용한 노래다. ‘가나다라마바사 너와 나의 암호 말/ 너만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걸랑/ 아침에 전화를 하면 듣고 싶은 암호 말/ 가나다라마바사 보고 싶단 뜻이야.’

<가나다라>를 부를 당시 송창식은 34세였다. 1947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서울예술고(국악고)를 금난새(1947~, 서울예술고 교장)와 동창으로 다니다가 중퇴하고, 1967년 조영남·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를 결성하여 데뷔 후 1970년에 솔로로 전향하여 세시봉 카페에서 활동했다. 1974년에 <피리 부는 사나이>, 다음 해 <왜불러>로 대박을 터뜨린다. 1978년 한일문화교류협회 초청으로 일본 현지 공연을 했으며, 대표곡은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한번쯤>, <왜불러>, <사랑이야> 등. 그는 송창식스타일 싱어송라이터다. 송창식이 노래를 시작한 세시봉은 충무로에 있던 음악카페다.

세시봉은 1953년에 무교동에 생겼으며, 명동의 은하수·종로2가의 디쉐네·시대백화점 옆 라스칼라·화신백화점3층 메트로·충무로 카네기 등도 유사한 카페였고,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프랑스어 세시봉(C'est si bon)은 영어(Its a good)과 같은 의미다. 당시 세시봉은 입장료만 내고도 하루종일을 소일할 수 있던 음악감상실이며, 연예인들의 해방구(解放區) 같은 곳. 즉석 콘서트·시 낭송·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던 청년문화의 산실이다. 1969년 서린동으로 이사를 하였다가 문을 내린다. 조영남·송창식·윤형주의 트윈폴리오, 서유석·신중현의 애드포, 이장희·김세환·이수영·임창제의 어니언스, 김민기, 양희은 등이 세시봉과 인연이 깊다. 당시 연예인들이 한 번이라도 세시봉을 다녀가지 않은 이는 없다고 봐야 한다. 최희준·박형준·위키리·유주용·패티김·이미자 등 가수들, 길옥윤·이봉조·박춘석·김강섭·정민섭·정풍송 등 작곡가는 물론이고, 최무룡·신성일·엄앵란 등 영화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세시봉(C’est Si Bon)은 이태리계 프랑스 국적 가수 이브 몽땅이 부른 샹송이다. 이브 몽땅은 저녁나절에‘이브, 어서 들어오라’고 하던 그의 어머니 호출부호 같은 말이었다.

유행가 <가나다라>를 송 토킹(song talking)하면서, 620여 년 전에 탄생하여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세종대왕(1397~1450)의 일생 54년을 되새김해 본다.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그분의 생일 5월 15일이 우리나라 사향만리(師香萬里), 스승의 날이다. 민족의 스승이신 대왕이시여, 하늘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굽어살피소서. 가나다라마바사~.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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