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리움미술관 '인간: 일곱 개의 질문' 기획전에서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있다. 사진/손원태기자
19일 리움미술관 '인간: 일곱 개의 질문' 기획전에서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있다. 사진/손원태기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내에 상륙한지 햇수로 2년째다. 3·1운동부터 IMF 외환위기, 2002년 월드컵 등 우리 민족은 국가적인 중대사에 있어 위기 때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닌 인류의 역사는 민중의 힘으로 위기 때마다 힘을 발휘했다. 

인간의 사전적 정의도 그렇다.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는 동물'.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이를 지탱하게 하는 힘은 몸에서 나온다. 몸은 인간 개인의 사적인 비밀을 간직하면서도 위기의 순간 때마다 초인적 힘을 내곤 한다. 극단적 예시로, 자동차에 깔리거나 물에 빠진 아이를 본 어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힘을 모아 아이를 구출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접한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코로나19는 인류 전체의 삶을 파편화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바이러스의 엄습은 인간의 몸을 무력화하더니, 서로 간의 불신마저 싹트게 했다. 군중 속에 한 명의 기침이 집단의 눈총을 사기도 하고, 타인과의 접촉 뒤에는 손을 씻는 것이 일상화됐다. 종국에는 한 명의 튀는 행동이 집단을 갉아먹는 것으로 간주돼 다수가 소수를 위협하는 혐오와 편견을 만연하게 했다.

접촉을 피하다 보니 인터넷 속 가상공간은 인류의 삶을 삽시간에 대체했다.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가상공간에서 채팅으로 업무를 분담한다. 대면 주문보다 키오스크를 통한 주문이 안전하고, 실물화폐보다는 가상화폐로의 결제가 편리하다. 급기야 가상공간에서 집을 짓고, 거래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인간은 열패감에 휩싸여 움츠려들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코로나 블루'로 전이된 것이다. 

◆리움미술관 기획전…인간: 일곱 개의 질문 

리움미술관이 5년 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인간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을 가져오며, 시대적 화두를 던진 것이다. 지난 8일 일반인 상대로 재개관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전시는 코로나로 가속화된 21세기형 인간의 미래에 대해 이정표를 제시한다. 컴퓨터 속 인터넷과 그 인터넷으로 탄생한 기계의 조합에서 인간은 더이상 뗄 수 없는 관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리움과 작가 51명이 전달하는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7개의 섹션에 따라 찾아가본다.

육명심·주명덕 '예술가 시리즈'. 사진/손원태기자
육명심·주명덕 '예술가 시리즈'. 사진/손원태기자

◆거울보기 

인간은 오직 한 개의 몸에서 태어나 하나의 자아를 갖고 살아간다. 몸은 인간의 그런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 중에서도 얼굴은 인간 스스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몸의 부위로 부각된다.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 얼굴은 표정으로 드러나고,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얼굴을 숨기기도 한다. 상대방에 잘 보이고 싶을 때에는 분칠을 하기도 하며,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얼굴에 따라 그 기분을 풀고는 한다.

"얼굴 보고 말하자"는 인간의 가장 일상적인 말이기도 하다.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얼굴은 인간의 솔직함을 보여준다.  

주명덕은 1세대 사진가로서, 당대 사회적 초상을 담아냈다. 대표적으로 그의 '예술가 시리즈'는 1968년부터 2004년까지 당대 예술계 대표 인사들의 얼굴을 포착했다. 

리움은 그의 19점을 전시했는데, 천경자부터 김종학, 황창배, 김정숙, 이불 등의 작가들이 담겼다. 흑백사진으로 감도에 따라 그을린 작가들의 주름이 인간으로서 무엇을 고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또 이들의 자세나 눈빛에서는 당대 시대상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태도가 서려있어 몸이 주는 메시지를 짐작케 한다. 

김아타 '뮤지엄 프로젝트 #149'. 사진/손원태기자
김아타 '뮤지엄 프로젝트 #149'. 사진/손원태기자

◆펼쳐진 몸

인간은 몸을 통해 삶을 체험하고, 타인과의 소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몸은 인간의 성공을 보여주는 장식물로도 사용된다. 화려한 옷을 입거나, 장신구를 착용하거나 등의 행위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계급을 긋는다. 

수천년간 지구상 모든 문화권에서는 몸에 치장되는 옷이나 장식품에 따라 권위를 표현했고, 이는 제도권 속으로 인간을 가두기도 했다. 나보다 화려한 사람들을 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열패감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몸의 자유를 추구하는 길은 타인과의 비교 없이 진정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첫 번째 수행의 시작일 수도 있다. 

김아타는 신체를 매체로 강렬한 작업들을 선보이는 작가다. 이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한다. 그의 대표 사진 연작인 '뮤지엄 프로젝트' 중 '니르바나' 연작에 속하는 한 작품이 시선을 당겼다. 삭발을 한 나체의 인물이 투명상자에 갇혀 마치 태아처럼 거꾸로 웅크려 있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이 모습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을 표현한 것과 동시에 이와 같은 신체적 고통을 통해 몸의 해방을 부르짖는 작가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동욱 '손잡이'. 사진/손원태기자
이동욱 '손잡이'. 사진/손원태기자

◆일그러진 몸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참을성'으로 인정받으며,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라고 주입받았다. 

부모는 아이에게 떼쓰는 것을 혼내고, 어렸을 때부터 본성을 억제하는 방법을 강제한다. 이후 교육기관을 통해 다른 무리들과 어울리며, 상황에 따라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배운다.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행동들이 적절하게 나오지 않을 때,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며 당연스레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폭력과 야만, 비정상이 총 결합했을 때 나오는 것이 전쟁으로, 이 전쟁을 통해 인류는 문명사회를 가져오기도 했다.  

우리는 무수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전쟁에 노출돼 있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갈등을 키운다. 그와 같은 순간, 몸은 절제했던 악의 본성을 깨워 다른 생명을 다치게 한다. 

이동욱은 2000년대 초반부터 미니어처 조각상들을 선보였다. 이날 리움에서 본 그의 '손잡이'와 '갑옷'은 얼핏 살색의 찰흙으로 보였던 것이 피부 파편임을 알게 해 기묘함을 전달했다. '갑옷'은 선홍빛 속살들이 고기 썰 듯 잘라져 있었고, '손잡이'는 시체 무더기를 연상케 하는 살덩이들이 소시지처럼 복잡하게 연결됐다. 이는 갑옷과 칼이 상징하는 전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와 같은 전쟁이 가져온 문명사회 속 인류의 트라우마를 느끼게 한다.

로버트 롱고의 '이 좀비들아: 신 앞의 진실'도 그렇다. 청동으로 제작된 동상은 해골과 사슬, 총탄, 갑옷 등 전쟁을 보여주는 상징물들이 부착됐다. 특히 깃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들루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오마주한 느낌이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인간인지 좀비인지, 폐물인지 좀비인지를 잊게 하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1986년 냉전시대의 어두운 모습을 작가는 표현했다고 한다.  

로버트 롱고 '이 좀비들아: 신 앞의 진실'. 사진/손원태기자
로버트 롱고 '이 좀비들아: 신 앞의 진실'. 사진/손원태기자
요안나 라이코프스카 '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만진 적이 없다'. 사진/손원태기자
요안나 라이코프스카 '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만진 적이 없다'. 사진/손원태기자

◆다치기 쉬운 우리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인간은 지구 반대편의 친구가 무엇을 하는지에 쉽게 알지만, 정작 내 주변 친구나 가족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탄생은 이 같은 일상을 더욱 빨리 부추겼고, 지하철이나 식당에서나 직장에서나 핸드폰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요안나 라이코프스카의 '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만진 적이 없다'는 여성이자 딸, 어머니로써의 작가가 70대인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짧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탈출한 아버지와 그 딸의 교감이 담겨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을 등한시한 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곁을 있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나 낯선 모습에 불편함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눈을 감은 채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는 두 부녀의 모습에 애틋함도 느끼게 한다. 

김인숙의 '토요일 밤'은 제작 기간만 2년이 걸렸다. 작가는 독일 뒤셀도르프 래디슨 호텔에서 63개의 연출된 장면으로 합성하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마치 아파트 맞은편을 본듯한 이 작품은 집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사적인 순간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홀로 식사를 하는 남성이나 사랑을 나누는 커플, 화장을 지우는 여성부터 살인현장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있다. 화려한 도시 속 감추고 싶은 인간의 모습을 들춰내 오늘날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김인숙 '토요일 밤'. 사진/손원태기자
김인숙 '토요일 밤'. 사진/손원태기자
엘름그린&드라그셋 '그' 사진/손원태기자
엘름그린&드라그셋 '그' 사진/손원태기자

◆모두의 방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을까. 역사의 승리자는 패배자를 지우는 데 급급했고, 이는 성과 젠더, 인종, 계급, 문화로의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서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동성애운동, 반인종주의 등 기득권에 맞서는 여러 운동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지만 누구나 평등한 세상은 요원하기만 하다.

코로나가 가져온 언택트 문화 역시도 디지털 기술을 얼마나 갖췄느냐에 따라 정보 격차를 부르고, 또 다른 불평등의 고리를 양산한다. 

북유럽 작가 엘름그린&드라그셋 듀오는 설치 디자인 작가다. 리움에 전시된 '그'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나라인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를 남성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다리를 가지런히 뻗어내린 남성의 동상은 인어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신화적인 요소를 없앤다. 또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포즈의 자세를 남성에 적용함으로써 남성성이 갖는 사회적 편견들을 녹아낸 듯한 느낌이다.

이형구 '헬멧'. 사진/손원태기자
이형구 '헬멧'. 사진/손원태기자

◆초월 열망

인간은 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은 금기시됐던 신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인간 스스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힘을 보여주었다. 

컴퓨터로 인간은 더이상 메모할 필요가 없어졌고, 화학기술로는 플라스틱을 만들어 음식도 간편하게 담을 수 있게 됐다. 핵융합기술로는 지구 전체를 날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인간은 이후에도 컴퓨터, 스마트폰, 인공장기 등 로봇과 함께 하는 시대를 그려가고 있다. 몸은 이와 같은 과학적 산물을 장착함으로써 사이보그로서의 기능도 갖추기 시작한다. 

백남준의 '로봇 k-456'은 과학기술이 인간 삶과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비디오아트로 보여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맞춰 20개의 채널로 원격조정되는 이 작품은 1964년 당시 뉴욕 거리를 활보하며 존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재생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형구의 '헬멧' 시리즈는 신체 부위를 확대/축소하면서 몸에서 감추고 싶은 부분들의 콤플렉스를 지워준다. 남성 성기를 확대하거나 눈을 확장하거나 등의 모습들이 꽤나 우스꽝스럽다. 이는 성형학, 유전학으로의 과학 발전이 생물학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기구들이 페트병이나 돋보기와 같은 것들로 만들어진 것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사이비 과학기술을 단적으로 그려낸다. 

데이비드 알트메즈 '크리스털 시스템'. 사진/손원태기자
데이비드 알트메즈 '크리스털 시스템'. 사진/손원태기자

◆낯선 공생 

21세기형 인간은 기계와의 융합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우리 삶에 복잡하게 끼어든 기술을 떼어놓고는 인간은 고유의 자아를 드러내기가 불가능하다. 1인 미디어 시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인간을 파악하는 데 있어 몸보다는 핸드폰이 빠를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온전히 자신인 것처럼 다른 생명체를 빼앗았다.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구원하는 것이라 착각하며, 지구 환경에도 큰 오염을 초래했다. 

각종 콘크리트와 미세먼지, 전염병 등으로 인간은 고스란히 죗값을 치르기도 한다. 

데이비드 알트메즈의 '크리스탈 시스템'은 이 같은 모습들을 조각들로 기이하면서도 낯설게 보여준다. 조각상 속 두상은 조각난 크리스탈로 만들어 여덟 개의 눈이 번득거린다. 또 부패한 듯 변질한 코와 가슴 주변으로는 크리스털이 자라나고 있다. 

이 밖에 '어셔'와 '스핑크스', '스페이싱 아웃' 등의 작품들로 작가는 과학기술 속에서 분열된 사람들의 자아를 그려내는 듯한 모습이다. 

리움미술관 상설전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리움미술관 상설전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리움은 기획전 외에도 상설전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1층에는 불교미술(고대유품), 2층에는 서화, 3층에는 조선백자, 4층에는 고려청자 등 160점이 전시됐다. 

특히 '디지털 가이드' 기기로 이동 방향에 따라 해당 전시를 설명해주는 큐레이션 봇이 있어 리움미술관 전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상설전과 기획전 모두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하루 600명(시간당 75명)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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