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어렸을 때의 일이다. 나는 지방 출신인데 그 당시만 해도 서울에 가본 적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 간에 ‘남대문에 문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논쟁이 붙곤 했다. 서울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촌놈 취급받기 싫어서 무턱대고 ‘문턱이 있다, 없다’하고 우겼던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 실소(失笑)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와 비슷한 잘못을 행하고 있다. 쉬운 예로 여름철이 되면 대구 날씨가 덥다는 의미로 종종 언론에 ‘대프리카’라는 조어가 등장한다. 대구와 아프리카의 합성어인데, 우리는 아프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사실일까? 아니다. 내가 알기로 가장 더운 지역은 사우디 북부와 이라크 남부의 사막지역이다. 거기선 7~8월 한 낮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는다. 이에 비해 아프리카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32도 정도로 높긴 하지만, 한 여름의 최고기온은 40도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런 편견과 오해가 사소한 일상생활에만 적용되면 별 문제 없겠지만 비즈니스로 연결되면 큰 손해가 따른다. 더구나 수출이나 해외투자 등의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는 시장을 잘 못 알거나 아예 시장기회 자체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화장품은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와는 관계없는 품목입니다.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겁먹고 비즈니스가 위축되면 안 됩니다.” 필자가 코트라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초 기업들을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미국에 화장품을 수출하는 기업이 ‘서방의 경제제재 조치에 위반될까 두려워 러시아에는 수출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자 해당지역 본부장이 대답한 이 말처럼....

그런데도 주변 기업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특정 국가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많이 갖고 있다. 특히 미개척 신흥시장 국가일수록 더 그렇다. 아프리카 하면 내전과 에볼라 등을 연상하면서 ‘덥다, 멀다, 위험하다, 미개하다’고 인식한다. 중동 지역은 테러 이슬람 사막 등을 떠올리면서 ‘위험하다, 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어떤가. 1년 내내 춥고 비밀경찰이 아직도 행인들을 감시한다고 여긴다. 인도는 독특한 장례문화, 카스트제도,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소 등을 떠올리면서 지저분하고 게으른 곳으로 알고 있다. 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저 축구와 쌈바춤 만을 떠올리면서 경제적으로는 못살고 미개한 지역으로 치부한다. 심지어 우리의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모든 지방의 특징이 같고 또 제3자한테 들은 말을 믿고 사업할 때에 ‘꽌시’(인적 네트웤)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이런 편견과는 사뭇 다르다. 아프리카 대륙은 미국과 중국 인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면적이 넓고, 55개 나라에 12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아프리카 전체가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는 미개한 지역도 아니다. 남아공과 케냐를 중심으로 ‘블랙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중산층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일부 지역에 부족사회 전통이 남아 있긴 하지만 여기에도 도시화와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간다는 4500만 인구 중 휴대폰과 인터넷 사용자가 3000만 명을 넘고, 모바일 금융과 온라인 유통도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르완다는 세계 최초로 드론을 활용해 오지의 의료진에 혈액과 의료용 소모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중동은 30세 미만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는 젊은 대륙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2016년부터 대대적인 경제사회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성들이 머리엔 히잡을 쓰고 몸에는 아바야로 불리는 긴 가운을 입어도 한편으론 고급 화장품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과거 몇 해 동안에는 재정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에는 유가가 회복되어 최대 건설프로젝트 시장으로서의 명성도 되찾아가고 있다. 테러는 일부 극단주의자들만의 소행으로 대다수 무슬림들은 친절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치안상황도 매우 양호하다.

러시아 인도 중남미의 시장 잠재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러시아의 치안 불안은 10여 년 전의 일로 지금은 여성들이 혼자 밤길을 걸어 다닐 만큼 좋아졌고, 여기에 발달된 기초기술과 풍부한 노동력 등 강점도 많다. 중남미는 평균적인 1인당 소득수준이 낮긴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비즈니스 상대 가운데는 자가용 비행기와 요트를 갖고 있는 부자들이 많다. 지리적으로는 물론 언어와 문화적으로도 국가 간의 동질성이 커서 통합마케팅의 장점도 있는 지역이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각 지방마다 특성이 매우 달라서 언어와 생김새를 제외하고는 마치 다른 나라인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꽌시’ 문화는 과거의 일로 이제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법치국가로 이행하고 있다.        

사실이 이런데도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과 오해 탓에 신흥시장에 대한 우리의 수출과 투자 진출은 미약한 수준이다. 우리의 해외 비즈니스가 중국 미국 동남아 등 일부 지역에 편중된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는 좋은 기회를 잃고 있지 않은지 잘 살펴봐야 한다. 편견은 색안경이나 깨진 안경과 같다. 이런 안경을 쓰고는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 만무하다.

필자는 사우디 대사 시절 대사관에 부임해오는 동료들에게 ‘사우디에 근무하는 동안 가급적 단점은 보지 말고 장점만 보려고 노력하라’고 부탁했다. 또 코트라 사장으로 재직했을 때엔 1년에 두 번 해외무역관 파견 인사발령을 내는데, 살기 힘들다고 인식되는 곳에 부임하는 직원들에게도 똑 같은 부탁을 하곤 했다. 그 이유는 단점만 보면 일할 맛도 나지 않고 하루빨리 귀임하고 싶어져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취지에서 우리 기업인들에게 이 한마디를 꼭 강조하고 싶다. ‘편견을 버려야 해외시장이 제대로 보인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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