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가상인간 인플루언서 187명…로지·루시 광고모델로 각광
라이브커머스에 걸그룹까지…"여성 아닌 다양한 인물도 나와야"

가상인간 로지. 사진/로지 인스타그램
가상인간 로지. 사진/로지 인스타그램

'가상인간계의 전지현' 로지가 MZ세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광고계를 접수했다. 로지는 본격적으로 광고 모델로 데뷔한지 두 달 만에 전속 계약 8건과 100건 이상의 협찬을 받으며 드라마 속 연기자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비대면) 시대는 가상현실이라는 메타버스로 대체됐고, 이후 실제 사람보다도 더 사람같은 가상인간 열풍을 불러왔다. 가상인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넘어 브라운관의 광고계는 물론 라이브커머스, 걸그룹으로까지 진출하고 있다. 가상인간이 가져온 시대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사진/버츄얼휴먼스
사진/버츄얼휴먼스

◆가상인간 인플루언서 187명…10조원 시장 열린다

6일 가상인간 정보사이트 버츄얼휴먼스에 따르면 등록된 국내외 가상인간 수는 187명이다. 이는 10월 122명 대비 65명 급증한 수치로, 최근 3개월 내 가상인간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태국과 일본의 유명 미디어 업체는 1년간의 개발 끝에 이달 1일 여성형 가상인간 케이티를 선보였다. 일본의 가상인간 제작업체인 Aww.inc가 케이티 제작을 맡았는데, 이곳은 지난 2018년 7월 이마(Imma)를 공개해 시대적으로 한 발 앞섰다. 이마는 현재 35만5000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보유하며, 일본 현지에서 아디다스와 이케아 등의 홍보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케이티는 향후 태국 내 엔터계와 광고 등에 출연하며 보폭을 넓힐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6년 탄생한 릴 미켈라가 있다. 미켈라는 브라질계 19세 가수로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 포스팅과 음원발매, 정치적 의견까지 개진하고 있다. 미켈라는 샤넬, 삼성전자 등의 광고모델로도 활약하면서 지난해 수익만 1170만달러(약 13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타임지 선정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렇듯 가상인간 시장 규모는 매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각자의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가상인간은 기업에 부합하는 이미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 또 배우나 인플루언서와 달리 사적인 리스크도 없어 안정적으로 활동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의 통신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인간 시장 규모는 2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진짜 인간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7조6000억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그러나 오는 2025년 가상인간 시장 규모가 14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예측되며 진짜 인간 인플루언서(13조원)를 앞지르게 된다. 전 세계가 가상인간에 주목하는 이유다.

가상인간 루시. 사진/롯데홈쇼핑
가상인간 루시. 사진/롯데홈쇼핑

◆'떴다 하면 완판' 로지·루시…엔터업계 대체

현재 국내 가상인간으로는 로지와 루시, 김래아, 한유아, 루이, 걸그룹 이터니티 등이 있다. 이들 모두 가상인간으로 통칭되고 있지만, 제작 기술과 세계관은 각기 다르다. 

로지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만들었다.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영상을 촬영해 CG작업을 입혀 얼굴만 다시 3D 모델링 했다. 로지는 22세의 여성으로 개성있는 얼굴과 171cm의 큰 키를 갖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환경 캠페인인 '용기내 챌린지'에도 앞장서며, 환경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신한라이프는 이에 업계 최초로 로지를 자사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이를 통해 신한라이프는 2021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이노베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로지는 또 패션 매거진 '더블유 코리아'의 커버 모델로도 장식했으며, 패션 브랜드 LF에서는 광고모델로 활동해 제품을 완판시키기도 했다. 

로지는 올해에만 약 8건의 광고계약을 체결해 1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팔로워 수만 10만8000여 명에 달한다. 

LF 패션 관계자는 "올해 9월부터 로지를 전속모델로 활용했다"며 "MZ세대도 로지가 착용한 가방이나 옷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등 최근에는 '로지 가방'이 입소문을 타 세 차례나 준비된 물량이 완판됐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홈쇼핑에서는 아예 가상인간을 통한 라이브커머스까지 준비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9월 가상인간 루시를 선보여 올해 2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또 실시간 렌더링으로 라이브커머스에서 구매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기술에도 집중하고 있다. 실시간 렌더링은 콘텐츠 관련 데이터 값의 변화를 매우 빠른 속도로 결과물에 반영해 마치 실제 사람처럼 가상인간이 구매자와의 소통이 가능하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라이브커머스를 목표로 카이스트 등 여러 연구기관, 기업과 함께 기술개발하는 상황"이라며 "TV홈쇼핑이 침체되는 속 가상인간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하면서 최근에는 다른 기업과의 콜라보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로지와 루시 외에도 LG전자의 김래아, 스마일게이트 한유아, 삼성전자 샘 등도 있다. 또 최근에는 AI 그래픽 기업이 11명으로 구성된 가상인간 걸그룹 이터니티를 론칭, 올해 3월 '아임리얼(I'm real)'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출시하기도 했다.

걸그룹 이터니티. 사진/펄스나인
걸그룹 이터니티. 사진/펄스나인

◆MZ세대와의 공감대 형성…성 상품화 지적도 

이처럼 기업들이 가상인간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를 병행하는 이유에는 MZ세대(밀레니엄+Z세대, 1980~2000년대 출생)가 있다. 일부 연예인처럼 구설수 우려도 없어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킬 걱정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가상인간이 대부분 여성으로 특정된다는 점은 '성 상품화' 우려도 지속적으로 낳고 있다. 이는 여성을 선호하는 사용자들의 선호도와 무관치 않는 데, 많은 사용자들은 남성보다 여성의 목소리에, 남성의 외모보다는 여성의 외모에 친밀감을 더 느껴서다. 

국내에서 활동중인 가상인간 로지와 루시, 김래아, 한유아, 샘, 이터니티 모두 여성에다가 날씬하면서도 갸름한 얼굴형을 갖고 있다. 화장품, 패션 등 주 소비층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논란이 증폭된 것이다. 

실제 버츄얼휴먼스에 등록된 여성임을 특정하는 캐릭터와 가상인간은 전체 187명 중 무려 127명(67.9%)에 달한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현재 가상인간 속 여성의 모습들은 전반적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마르고 예쁜 젊은 여성들"이라며 "이 같은 현상은 여전히 메타버스 속 가상인간이 인간의 가장 닮고 싶은 유형들만 모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상인간 마케팅이 엔터업계에서의 주축으로 자리잡게 되면 자칫 챗봇 이루다와 같은 성 왜곡으로도 변질될 우려가 크다"며 "가상인간도 다양한 유형의 인간을 모티브로 해 상업적 요소로만 쓰이는 것이 아닌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계기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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