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일본에는 유후인(由布院)이라는 괸광명소가 있다. 한적한 농촌의 온천마을이었는데 이제는 온천을 넘어 예술문화관광지로 더 유명하다. 필자도 일본에서 주재원 등으로 일 하면서 유후인을 수십 차례 다녀왔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온천하기 좋은 곳이라는 이유로 자주 찾았다. 지금은 공부하기 위해 유후인을 찾는다.

필자는 유후인을 관광하던 어느날 유후인 인근에 위치한 오야마농협의 조합장 야하다를 만났다. 또 유후인의 명소인 가메노이 호텔의 주인 나카야겐타로씨와 인사를 나누게 됐다. 이들과 교류가 시작되면서 필자에게 유후인은 힐링 장소이자 공부하는 공간이 되었다. 유후인은 겉모습만 봐서는 안된다. 유후인이 관광명소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보면 유후인의 매력은 배가 된다.

오늘의 유후인은 나카야 등 몇몇 지도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1960년대 초반 독일 등 유럽의 온천지역을 3개월 동안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유후인의 미래발전방안을 만들기 위해서다. 예술문화와 농촌경관을 핵심테마로 설정했다. 그리고는 지역주민을 설득했고 행정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유후인은 산 넘어 있는 벳부(別府)와는 차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락지 같은 온천의 이미지가 아니고 `건강과 힐링의 온천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관광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와 사회경제적인 동향을 미리 예측하고 사회변화에 맞는 방향으로 농촌경관과 예술문화관광공간으로 발전시켰다.

유후인은 온천자원과 자연경관이 훌륭하지만 더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지역 내에 산재해 있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예술문화관광시설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온천관광지로 멈추지 않고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예술의 마을`로 널리 알려진 이유다.

유후인 알리기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1975년 `유후인 음악제`와 `소고기 먹고 고함지르기` `유후인 영화제`가 열렸다. 유후인 음악제는 실내악을 중심으로 한 토속적인 음악제로서 착실하게 발전해 왔다.  유후인에는 음악 홀 등의 현대적인 시설은 없다. 공민관, 골프장의 클럽하우스, 호반의 레스토랑, 호텔의 로비, 미술관 등을 순회하면서 개최하는 것이 오히려 음악제의 매력이 되었다.

유후인 영화제는 `영화관이 없는 마을, 그러나 여기에 영화가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했다. 지금은 이 영화제가 일본영화제의 대표 격 이라는 평가도 듣고 있다. 여기에 `어린이 영화제` `유후인 영화애호회` 등 지역밀착형 활동을 하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유후인민예촌` `공상의 숲 미술관` 등 미술작품의 전시를 주체로 한 본격적인 예술문화관광시설이 문을 연다. 예술과 농촌경관과 함께 어우러지는 명실상부한 `예술의 마을`이 탄생하게 된다.

1984년에는 유후인 긴린코(金鱗湖) 근처에 현재의 유후인미술관의 전신인 사토게이(佐藤溪)미술관이 개관했다. 히로시마 출신의 사토씨는 `예술종교의 교주` 같은 화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의 유작을 지역주민인 다카하시(高稿鴿子)가 모두 매입하여 미술관에 기증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시설의 내에서 실시해온 미술전이 지역전체로 확장됐고 주민의 일상생활 내에 예술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1989년에는 `열차미술관`이라는 `유후인 숲길`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 열차에는 `유후인숲 예술갤러리`라는 특설코너가 있어서 유명한 건축가의 전람회를 비롯해서 유후인 마을과 관계가 있는 다양한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다. 열차가 새로운 형태의 문화거점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유후인 역은 역 전체가 `박물관`의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술관, 음악회, 영화, 연극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술갤러리 역할을 한다. 이 시설의 운영은 마을 내에 있는 미술애호그룹에 의해 관리되고 `예술의 유후인`라는 이미지가 정착하게 되었다.

관광객들은 유후인의 관광시설, 역사적 건축물, 역사적 전통거리모습 등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관점으로 보게 됐고 주민들은 공유하는 귀중한 재산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유후인 마을에서의 음악제, 영화제, 미술전시회 등으로 출발한 문화 활동은 마을에 활기를 가져오고 새로운 형태의 지역사회와 지역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술이라는 요소를 `미술관 , 화랑` 등의 시설에서 `마을 .지역. 환경`이라는 틀 전체로 전개해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현대 예술과 유후인의 마을 지역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일본 특유의 관광공간이 탄생했다. 즉 단순한 온천만이 아니고 `치유 .힐링`의 효용 등 일본인의 관광지향성이나 욕구에 적합한 관광공간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유후인이 관광지로 명성을 올리자 유후인산 남쪽에는 대형 골프장이 들어섰고, 별장주택지 건설, 사파리공원 건설 ,대형맨션건설, 광고탑건설 등이 줄을 이었다. 이를 보고 나카야겐타로 등 지도자들은  `미래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목초지와 농경지를 난개발에서 지키고 다시 농업생산현장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 `소한마리목장주운동`을 시작했다. 소한마리목장주운동은 송아지 한마리를 도시인이 기증하고 이를 유후인 목초지에 방목해서 얻은 수익을 기증자에 배당하는 제도다.

지방행정도 유후인읍 자연환경보호조례를 제정하고 읍 전역을 자연환경구역으로 지정했다. 또 법규제를 넘어선 보다 세밀한 규제를 위해 읍장의 자문기관으로 지역주민 중심으로 `유후인읍환경디자인회의`를 발족시켜서 개발요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행정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했다.

동경에서 영화감독으로 승승장구 하던 나카야겐타로 씨는 부친의 사망으로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모친의 부름을 받고 귀향해서 3대째 여관업을 이어받고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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