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중동지역에 여행을 가면 맨 먼저 현지인들이 입고 있는 독특한 전통의상을 보고 중동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남성들은 전신을 감싸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머리에 자주색 격자무늬 두건을 두르고 있다. 또 여성들은 머리와 몸에 검정색 스카프와 가운을 두르고 있다. 어떤 여성들은 눈만 내놓고 얼굴까지 가리고 있기도 한다. 요즘에는 검지 않고 베이지색 등 컬러풀한 스카프와 가운을 두른 여성들도 자주 눈에 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중동 여성들의 전통의상에 대한 명칭이 각양각색인데, 수년 전 중동국가에서 대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현지 여성들의 전통의상 명칭을 요약하면 이렇다. 얼굴은 내놓은 채 머리에서 가슴 부위까지 가리는 스카프를 ‘히잡’이라고 하고, 눈만 내놓고 얼굴을 안보이게 감싸는 천을 ‘니깝’이라고 한다. 또 손과 발을 제외한 전신을 검정색 가운으로 감싸는 의상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아바야’, 이란에서는 ‘차도르’라고 부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는 눈도 망사로 가리는 아프가니스탄의 검정색 전통의상을 ‘부르까’라고 한다. 그런데 누구는 머리만 가리는 히잡을 하고, 또 누구는 눈만 내놓고 얼굴까지 가리는 니깝을 하는지는 원칙이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필자가 대사 시절 궁금해서 현지 기업인에게 왜 여성에 따라 다르게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기업인이 웃으면서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다고 하면서, ’니깝‘은 남이 자기 아내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도록 하려고....’라고 답했던 것이 기억난다.  

서양식 복장(洋裝)이 보편화된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이런 중동 전통의상이 신비하기도 한데, 이를 두고 중동 외의 지역에서는 이런 저런 논쟁이 많은 것 같다. 여성의 인권을 속박한다느니, 의복에까지 과도하게 종교적 영향이 크다느니 하는 비판이 많다. 이에 대해 중동국가들은 서양인들이 양복을 입는 것처럼 중동사람들이 전통의상을 입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하면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을 오히려 나무라기도 한다. 양측 주장의 시시비비를 떠나 히잡의 유래와 의미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히잡은 ‘가리다’, ‘숨기다’의 뜻을 가진 아랍어 동사 ‘하자바’에서 파생된 명사라고 한다. 중동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 일반화된 것은 현지의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측면과 이슬람의 종교적 측면이 혼재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즉 사막의 뜨거운 햇살과 환절기에 불어오는 모래바람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전통의상의 하나가 히잡이다. 한편으로는 중동에서는 과거부터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를 가려서 여성의 정숙함을 지키도록 이슬람교의 코란에서 규정되어 있기도 한다.

필자가 주 사우디 대사를 하다 2018년 4월 코트라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최근 우리나라 화장품이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좋아 수출이 잘되는데, 히잡 등으로 여성들의 신체노출을 최소화하는 중동지역의 화장품시장은 어떤가, 다른 나라처럼 우리 화장품 수출을 늘릴 여지가 있을까? 언뜻 생각에 화장품 수요는 신체적 노출 정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중동 여성들은 화장할 부분이 적어 당연히 화장품을 적게 쓸 거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중동지역 여성들도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물론이고 히잡과 니깝으로 신체를 가리고 외출할 때에도 피부보호와 미용 차원에서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화장을 많이 한다.

2020년 기준 중동지역의 화장품시장 규모는 360억 달러(약 41조원)로 우리나라의 4배 수준에 달하고, 계속해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향수류, 스킨케어, 헤어케어, 색조화장품 등 4개 품목이 전체의 80% 정도를 차지한 가운데, 고가 브랜드는 프랑스 미국 등 선진국이, 그리고 저가 제품은 중동 및 아시아산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불행히도 한국산은 국가별 수입 순위에서 12~14위에 불과해 인지도가 낮다. 그나마 최근에는 연평균 40% 이상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다. 식약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 75.7억 달러의 화장품을 수출하여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출국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중동 시장에서의 존재가 이처럼 미미한 것이 어쩌면 우리가 ‘중동 여성들이 히잡 착용 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안 하기 때문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지 화장품 취급상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코트라 현지무역관의 정보를 토대로 효과적인 중동 화장품시장 접근방식을 요약하면, 먼저 수요가 많은 기초화장품과 색조화장품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좋다. 중동지역은 더운 날씨와 건조한 기후를 반영한 스킨케어 제품과 얼굴 등 노출된 부분에 화장을 집중한데 따른 색조화장품 수요가 크다. 프랑스 미국 등 선진기업들의 아성이 높은 고가품시장을 피해 우선은 중간 시장을 포지셔닝 하고 그 성과를 봐서 점차 고가품 시장으로 옮겨 가는 것이 좋다. 또한 국제적인 트렌드이면서 동시에 현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친환경 천연재료 제품임을 강조하고, 판매채널은 국가별 특성에 맞춰 차별화하는 것이 좋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매장 판매, UAE와 카타르는 온라인 판매 등으로 말이다.  

우리 속담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이 있다. 과거 중동에서는 외국문화에 배타적인 이슬람 전통 때문에 한류(韓流)가 약했으나 최근에는 K-팝, 드라마, 영화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2020 엑스포’에서 한국관(Korea pavilion)의 인기가 좋은데, 이를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선입견을 버리고 적극적 마케팅을 펼쳐 ‘히잡’ 속에 감춰진 중동 화장품시장에서도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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