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
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

도사가 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그 터이다. 어떤 장소에서 공부를 하느냐이다. 아무데서나 도 닦는다고 닦어지는게 아니다. 장소가 주는 힘이 크게 작용한다. 불가의 승려들도 암자터나 수행터를 중시한다. 자기에게 맞는 토굴터를 하나 찾는데 20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자기에게 맞는 터를 구한다는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80년대에 대둔산 태고사(太古寺)에 가면 도천 노장 스님이 살았다. 대둔산은 바위가 험하게 솟은 악산이다. 그래서 계백장군이 이끌었던 백제 최후의 결사대가 황산벌 전투에서 밀리자 마지막으로 몰렸던 계곡이 대둔산의 수락계곡이다. 동학군들도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몰려 최후로 숨어들어 항전했던 곳이 대둔산이다. 그만큼 험한 산이다. 험하다가는 것은 도 닦기에는 좋다는 의미가 된다. 기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태고사는 호남의 3대 수행도량으로 꼽혀 왔다. 1.태고사, 2.월명암, 3.백양사 운문암이었다. 태고사는 대둔산의 험준한 바위 가운데 있으면서 닭소리 개소리가 잘 안들리는 심산유곡의 느낌을 주는 터이다. 특히 법당 뒤로 병풍처럼 둘러 있는 바위 절벽이 일품이다. 이 바위절벽이 있어야 에너지가 품어져 나온다. 도천 노장 스님은 이 태고사에 붙박이로 있었다. 보통 10년 정도 그 터에서 살면 조계종의 관례상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터를 비워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천 노장은 4-50년간 계속해서 태고사에 머물렀다. 그 까닭은 자기에게 맞는 일생일대의 수행터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이런 터를 구한단 말인가! 자신의 공부 노선, 자신의 타고난 기질. 그리고 그 에너지와 풍광이 마음에 들면 거기서 뼈를 묻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천이 태고사에 눌러 앉게 된 사연이 있다. 도천의 은사 스님이 “네가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쭉 내려 가다가 이 종이쪽지(은사의 친필?)를 그 절이나 암자의 벽에다가 붙여 봐라, 붙였을 때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 있는 곳이 너의 공부터이다”라는 힌트를 주었다. 왜정시절에 도천은 이북 지역에서부터 이남으로 내려오면서 가는 곳마다 법당 벽에다가 이 종이를 붙여 보았지만 딱 붙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붙이면 떨어지곤 하였다. 그러다가 대둔산 태고사에 와서 종이를 붙이니까 딱 들어붙는게 아닌가! 아, 바로 여기구나. 스승이 말한 나의 종신 수도처가 바로 여기로구나! 그리고 나서 50년을 넘게 머무르다가 태고사에서 열반하였다. 6.25 이후로 불이 타서 거의 움막 수준으로 있던 태고사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하는데 도천 노장스님의 고생이 많았다. 철저하게 노동을 하면서 도를 닦는 가풍이 도천의 수행법이었다. 80년대 초반쯤이었나. 어느날 깡패들 6-7명이 태고사를 접수하려 왔다고 한다. 계속 붙어 있는 도천을 쫒아내기 위해서였다. 체격이 좋고 머리는 깍두기처럼 짧게 깎은 조폭 여러명이 와서 늙은 도천의 멱살을 잡았다. 

“너 안나갈 거야? 앞으로 사나흘 내에 안 나가면 죽는다”. 멱살을 잡고 들었다 놨다를 몇 번 하고 나서 이 조폭들은 봉고차를 타고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가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조폭을 태운 봉고차가 고속도를 달리다가 전복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100km의 속도로 달리다가 봉고차가 전복되면 탑승자는 대개 사망이다. 탑승해 있던 조폭 6-7명이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난 것이다. 이 사고 소식이 인근에 퍼졌다. ‘도 닦고 있는 수행자를 건드리면 절단이 난다’라는 도계(道界)의 오래된 잠언이 현실에서 입증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올 곧게 공부를 하고 있는 수행자에게는 신장(神將)이 호위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장이라는 파워가 있다. 물론 어영부영 하는 나이롱 도사나 수행자에게는 이 신장이 있을리 없다. 깊은 신심을 가지고 계행을 지키는 수행자에게 반드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신장이 붙어서 호위를 한다. 도천을 호위하던 신장들이 조폭들을 쓸어 버린 사건이라고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었다. 

지리산에서 석상용 의병에게 자금과 총을 지원했다고 해서 일본군 토벌대에게 죽을뻔한 탄수. 탄수는 일본군에게 풀려 나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리산 마천의 금대암(金臺庵)에 들어갔다. 금대는 지리산 일대에서 제1명당으로 손 꼽히는 공부 터였다. 마침 이 금대가 탄수의 고향 앞산에 있는 위치였다. 일본군에게 죽을뻔 하지 않았다면 탄수는 금대에 들어가 10년이나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 몰려야 인간은 수행처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탄수에게는 고향 마을의 암자였던 금대암이 최적의 도 닦는 공간이 되었던 셈이다. 우선 자기에게 맞는 이런 터에 들어가면 어떤 징후가 있는가? 첫째는 그 터에서 첫날 이나 둘째날 쯤에 꿈이 꾸어진다. 특별한 꿈을 꾸게 된다. 예를 들면 꿈에 용이 나타나 자기를 휘어 감는다든지, 아니면 어떤 노인이 나타나 지팡이를 하나 선물 한다던지 하는 식이다. 이런 꿈은 특이해서 아침에 깨어났을때에도 기억에 생생하다. 잊어먹지 않는다. 둘째는 그 터에서 잠을 잤을 때 몸 컨디션이 아주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잠이 숙면이 되는 것은 기본이다. 잠을 깊이 자면 피로가 풀린다. 피로가 풀리니까 그 터가 자기에게 맞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숙면 여부를 우선 체크해야 한다. 

또 하나는 참선이나 명상을 해보면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된다. 잡 생각이 들지 않고 정신집중이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오장육부가 다르다. 그래서 고유의 파장이 각기 약간씩 다르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47도에 맞지만 어떤 사람은 82도가 맞을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125도가 맞을수가 있다. 물론 눈에 보이지는 않는 영적인 파장이다. 이 파장이 자기에게 맞는 지자기(地磁氣)를 품어내는 명당에 진입하면 급격하게 충전이 된다. 충전이 되면 정신세계에 진입한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이러한 정신세계의 집중을 삼매(三昧)에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삼매에 들어가야 공부가 된다. 진도가 나가는 셈이다. 예를 들면 mbc를 보다가 kbs로 채널을 돌리는 효과가 난다. 현실세계의 집착과 가치 기준을 잊고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간다고나 할까. 그러면 현실세계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떠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초연한 입장을 유지한다. 여기만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넓어 진다. 보통 사람은 mbc 하나만 보고 살지만 삼매에 들어가면 또 다른 kbs를 본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시야가 넓어지고 세계관이 확장되게 마련이다. 세계관이 확장되어야만 현실세계의 문제에 울고 불고 하지 않게 된다. 다른 세상이 있구나!를 아는게 도 닦는 수행자의 일차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전파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게 명당의 힘이고, 공부터의 힘이다. 그래서 터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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