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
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공주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일반 잡범 수준이 아니고 이북에서 남파한 간첩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았다. 잡범과는 차원이 다른 조사이다. 우선 생년월시, 주민등록이 없었다. 호적은 있는가. 호적도 없었다. 어떻게 한국 사람이 호적이 없을수 있는가? 참으로 아리송 한 인물이었다. 호적이 없으니 더욱 의심받을 수밖에. 그런데 몸이 공중을 붕붕 날라다닌다는 신고는 접수한 상태였다. 차선책으로 이 친구 무술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테스트는 할 필요가 있었다. 상대는 공주경찰서에서 근무하던 무술 고단자 경관이었다. 경찰서 마다 무술 고단자 경관이 있기 마련이다. 조폭이나 강력하게 저항하는 범죄자들을 제압하기 위해서이다. 이 경관은 복싱 선수 출신에다가 태권도가 몇단 되는 인물이었다.

실전 대결에서는 복싱이 아주 효과적이다. 상대 주먹을 피하는 기술이 탁월하고, 내 뻗는 펀치의 정확도와 스피드가 뛰어나기 때문에 싸움이 붙으면 복싱 선수에게 못 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대련을 붙여 보니 무술 경관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두어 방에 나가 떨어졌다. 무술이 너무 쎄다는 것도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어떻게 중학생만한 체구를 가진 자가 덩치 좋은 무술 경관을 간단하게 제압한단 말인가?” 공주 경찰서에서는 이 부분 때문에 더 의심을 했다. 이북의 특수부대 출신이 분명하구나! 이리 저리 조사를 받던 도중에 박대양은 퍼특 생각이 났다. 설악산에서 하산할 때 스승인 원혜상인이 “속세에 내려가서 무슨 일이 생기거든 오대산 월정사에 계시는 탄허 스님에게 연락하거라!”하는 당부가 그것이었다.

박대양은 담당 형사에게 말했다. “내가 연락해 보고 싶은 스님이 있다. 바로 탄허 스님이다” 공주 경찰서에서 월정사에 주석하던 탄허 스님에게 전화를 했고, 탄허 스님은 박대양의 신분을 확인해 주었다. “키 작은 젊은 친구이지? 내가 설악산에서 자주 뵙고 존경하는 도인이었던 원혜상인의 제자가 맞다. 개가 설악산에서 수련할 때 내가 가끔 가서 반나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도 있다. 간첩 아니다” 이렇게 해서 간첩 혐의를 일단은 벗게 되었다. 그러나 탄허 스님의 증언이 있다고 해서 혐의를 완전하게 벗은 것은 아니었다. 현장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공주경찰서 측에서는 ‘이 친구가 설악산에서 수련을 했다고 하니까 그 수련 현장을 현장 답사할 필요가 있다. 진짜 설악산에 십몇년씩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정보과 형사 2명하고 박대양의 양어머니. 용화사에서 암을 고쳐 주면서 이 보살님은 박대양의 양어머니가 되었다. 양어머니도 같이 동행하고 설악산으로 갔다.

설악산으로 출발 하기 전날에 이 양어머니가 꿈을 꿨다. 신기가 있는 무당 양어머니였으므로 당연히 사건사고가 있기 전에는 어떤 징조가 포착되기 마련이다. 그 징조는 꿈으로 왔다. 꿈에 머리가 허연 노인이 나타나서 ‘설악산 어느 계곡으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계시가 내려 왔다. 설악산도 큰 산이다. 동서남북 어디로 갈 것인가. 박대양은 설악산 전체를 돌아다녀 보지 않았다. 수련하던 동굴 근처의 지형만 알 뿐이었다. 막상 설악산 수련 현장으로 가려니까 사실 좀 막연했던 상황이었다. 박대양은 공주경찰서에 남았다. 산으로 가면 도망갈 소지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형사 2명, 그리고 양어머니는 그 넓은 설악산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꿈에 나타난 계시를 받고 설악산 ‘죽음의 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죽음의 계곡은 이 곳에서 여러 번의 등반 사고가 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다. 이 계곡으로 양어머니는 일행과 함께 계곡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때는 한 여름 삼복더위였다. 땀을 닦을려고 계곡 물에서 얼굴을 씻고 있는데,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수염이 허연 노인이 쓱 나타났다고 한다. 소리도 없이 갑자기 노인네가 나타난 셈이다. “여기 까지 오느라고 수고했소. 내가 용이를 가르친 선생이요”. 형사 2명도 이 노인네를 보고 깜짝 놀랬다.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이 노인의 풍모도 특이했다. 옷은 아주 남루하였다. 옷감이 약간 헤어진듯하고 낡은 옷이었다. 특이했던 점은 팔과 가슴에 털이 수북했다는 점이다. 원시인처럼 털이 많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요즘 사람은 특이 체질 아니면 몸에 털이 많지 않다.

그런데 이 노인은 한 눈에 보기에도 가슴팍과 팔에 털이 원숭이처럼 아주 많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눈도 컸다. 눈이 부리부리하게 큰 눈을 한 노인이었다. 마치 그림에 나오는 달마대사 같은 풍모였다고나 할까. 헤어진듯한 옷에 털이 많고, 눈이 큰 흰머리의 산신령 같은 노인이 뒤에 서서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우리 용이 어머님이시죠. 돌봐줘서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양어머니게 건넸다. 원혜상인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양어머니의 존재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꿈을 통해서, 텔레파시를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질수 있다는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텔레파시는 시공의 제약을 뚫고 전달된다는 이치도 아울러 보여준다.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발 씻다가 순간적으로 포착된 이 장면을 정보과 형사 2명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 공주경찰서 형사 2명은 ‘간첩은 아닌 모양이구나’하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원혜상인은 당시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기천문의 2대문주 박사규 선생에게 물어보니까 “아마도 150세는 넘었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박대양 진인이 설악산에 있을 때 보광사 노스님에게 가끔 갔었다. 그 노스님이 원혜상인을 만나면 호칭이 할아버님이었다. 노스님도 나이 드셨는데, 왜 우리 선생님을 만나면 할아버지라고 하지? 한번은 박대양이 그 노스님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어렸을 때 처음 뵐때부터 저 분은 할아버지 였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이지!”

이렇게 해서 간첩 혐의를 벗은 박대양은 공주 경찰서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인생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수시로 물어보거나 자문자답 해봐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양어머니를 따라 가기로 했다. 서울 성동구  신당동에 양어머니의 신당(神堂)이 차려져 있었다. 조그만 연립주택이었다. 이 연립주택에 차려진 신당에서 박대양은 양어머니, 즉 무당보살님과 같이 사는 기간이 있었다. 이때 공주경찰서에서는 성동 경찰서에 요시찰을 부탁하였다. ‘요시찰 인물이 하나 그쪽으로 가니까 관찰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동경찰서에서는 수시로 박대양을 감시하는 형사가 한 명 따라 붙었다. 성동경찰서 형사도 문제가 생겼다. 박대양을 감시하다가 박대양에게 무술을 배우는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가까이서 수시로 접해보니 박대양의 무술은 자기가 생천 처음 보는 초식(招拭)을 구사하는 고단자였다.

무술은 눈에 보이는 세계이다. 토론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세계가 아니다. 주먹과 발차기로 승부가 나니까 위계질서도 확실하다. 무술계, 칼싸움, 그리고 바둑의 세계는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달라들면 바로 밟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 승부를 내는, 즉 토론으로 승부를 내는 세계는 위계질서가 분명하지 않다. 자꾸 달라들어도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 말이 많고 시끄럽다. 사무라이가 주도권을 잡았던 일본사회가 위계질서가 확실한 이유는 칼부림으로 승부를 봤던 경험이 사회 전체에 녹아 있는 탓이다. 조선은 상소문으로 당파싸움을 했다. 상소문은 자구(字句) 해석이 중요하다. 이렇게도 해석할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수 있다. 쇼부가 쉽게 나지 않는다. 그러니 말이 많고 승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시찰 인물을 감시하는 갑의 위치에 있던 정보과 형사가 감시 대상이던 을의 입장 박대양의 제자가 된 것도 매우 재미있는 사실이지만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이다. 제자도 나이롱 제자가 아니라 아주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가장 가까이서 박대양의 실력을 확인할수 있었던 탓이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맞아 봤으니까 말이다. 박대양이란 이름도 이 신당동 시절에 생긴 이름이다. 그동안 호적이 없어서 간첩 사건도 생겼다. 호적을 새로 만들자. 이렇게 해서 양어머니가 호적을 만들었다. 박대양으로 하자.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6-7세를 낮추어서 호적을 만들었다고 한다. 설악산에서 수련하던 시절에 스승이 부르던 이름은 ‘용’이었다. 그러다가 신당동에 와서 박대양이란 이름으로 새로 탄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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