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11일 새벽 5시. 한국에서는 새벽형 인간들만 눈을 떴을 이 시각에 뉴욕 증시는 문을 닫았다. 사흘 내리 폭락하던 시장은 미미한 반등을 기록했다. 유혈이 낭자한 공방전은 일단 멈췄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정규 장 마감 후 거래(애프터 마켓)에서 새삼 곤두박질하는 주식도 있다.

메타버스 시대의 총아로 꼽히던 유니티 소프트웨어를 보자. 실시간 3차원 콘텐츠를 구현하는 솔루션으로 게임엔진 시장을 주름잡는 이 회사는 장 마감 후 올해 1분기 실적을 내놓았다. 주당 순손실은 0.6달러로 작년 1분기 0.39달러보다 늘어났다. 일시적 요인을 고려해 조정한 주당 순손실은 0.08달러로 작년 1분기 0.1달러와 큰 차이가 없었다.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늘어난 3억2000만 달러였다. 월가가 예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회사 측이 제시한 2분기(6~8%)와 연간(22~28%) 성장률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쳤다. 고속 성장의 기대를 저버린 기업에 대한 시장의 처벌은 가혹했다. 유니티 주가는 장 마감 후 20분 남짓한 시간에 38%나 곤두박질했다. (낙폭은 그 후 조금 줄어들었다.)

이 회사의 몸값은 기술주의 전형적인 주가 흐름을 보여준다. 유니티 주가는 2020년 9월 상장 당시 70달러 안팎에서 작년 11월 한때 210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그 후 반년이 채 안 돼 30달러대로 폭락했다. 참으로 아찔한 롤러코스터다.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인 가운데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급격하게 바뀌었을까?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유니티의 몸값은 600억 달러 가까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100억 달러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물론 그 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 회사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중 금리가 오르고 있다. 그럴수록 이 회사가 창출할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는 줄어든다.

현재 월가 애널리스트 18명이 제시한 이 회사 목표주가는 평균 135달러다. 가장 낮은 것이 63달러이고, 가장 높은 것은 194달러에 이른다. 장밋빛 안경을 끼고 이 기업을 지켜봤던 이들은 곧 목표주가를 후려칠 것이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계산에 넣지 않았던 새로운 정보를 반영했다고 변명할 것이다. 과연 최고의 전문가라는 이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어떤 돌발적인 요인이 있었을까?

사실 어떤 셈법도 유니티 몸값이 그토록 폭발적으로 상승하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급전직하한 것을 속 시원히 설명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개별 기업이나 시장 전체의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어떤 전문가라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고사하고 현상을 설명하는 것조차 버거울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의 거품이 한껏 끓어올랐다 갑자기 꺼질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거품이란 무엇일까? 자본시장의 거품은 언제 어떻게 끓어오르며, 거품이 꺼질 때 기업과 투자자, 그리고 나라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영국 벨파스트의 퀸스대학에서 금융시장 거품의 역사를 연구하는 윌리엄 퀸과 존 터너는 아주 느슨한 정의를 내린다. 거품은 한마디로 가파르게 오르던 자산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현상이다. (두 사람의 공저 ‘Boom and Bust’) MIT의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의 정의를 빌려온 것이다. 너무 싱거운 것 같지만 그만큼 장점이 많은 정의다.

어떤 이는 자산 가격이 그 기본가치 혹은 내재가치(펀더멘털)를 벗어날 정도로 오르는 것을 거품으로 본다. 하지만 이 정의에 따라 거품을 판정하자면 먼저 기본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느냐는 두 번째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유니티의 몸값이 600억 달러가 맞느냐, 100억 달러가 맞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옳았는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느슨한 정의에 따르면 그 가격이 1년 남짓한 기간에 3배로 뛰었다 반년 새 6분의 1로 떨어진 것만으로도 일단 주가에 거품이 끼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퀸과 터너는 금융과 자본시장의 거품을 화재에 비유한다. 불이 타오르려면 산소와 연료와 열이 필요하다. 자본시장의 산소는 시장성 높은 자산들이다. 연료는 화폐와 신용이다. 여기에 열기를 더해주는 것은 투기성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진 시장에 정치적인 요인이나 기술 혁신이 불을 댕기면 거대한 화염이 일어날 수 있다.      

불은 추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것이다. 한번 붙은 불은 스스로 번진다. 그것은 매우 파괴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유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산불이 오래된 정글의 고목을 태우고 나면 그 숲의 생태계가 더 건강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바탕 거품이 휩쓸고 지나간 후 더 혁신적인 기업 생태계가 자라날 수도 있다.

자본시장에서 거품이 끓어오를 때 혁신적인 기업은 엄청난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거품에 취한 투자자들이 공격적으로 리스크를 안으면 기업은 그만큼 수월하게 모험 투자를 감행할 수 있다. 거품이 꺼질 때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기업과 무늬만 그러한 기업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다. 투자자들도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거품 붕괴 후의 폐허에서도 살아남을 기업을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거품이 어떻게 촉발되고 확산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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