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금융자본 앞세운 대기업 알뜰폰시장 잠식 가속
중간에 낀 통신사는 침묵…中企 "차라리 인수되길"

사진/비바리퍼블리카
사진/비바리퍼블리카

KB국민은행에 이어 비바리퍼블리카까지 알뜰폰 사업에 진출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이동통신3사 자회사에 이어 금융권까지 시장에 진입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져, 일부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인수되는 게 낫겠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25일 ICT(정보통신기술)업계에 따르면 비바리퍼블리카는 알뜰폰 사업자 '머천드코리아'의 지분을 인수하고 알뜰폰 시장에 뛰어든다. 1998년 설립된 머천드코리아는 약 20년간 통신사업을 영위해 온 알뜰폰업계의 ‘맏형’으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가입자 수는 10만명 수준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자사 앱 ‘토스’를 통해 알뜰폰 가입 서비스를 제공하고 편리한 가입절차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토스의 전체 가입자 수가 2000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플랫폼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다. 다른 알뜰폰 업체들과도 유사한 제휴를 추진할 방침이다.

토스는 중소 업체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KB국민은행의 ‘리브엠’처럼 염가 정책을 펴지 않겠다니 일단은 두고 보겠지만, 결국 대기업이 뛰어들면 기존 사업자들은 경쟁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볼멘소리다. 최근 알뜰폰 성장의 한 축인 MZ세대들의 수요가 금융플랫폼으로 몰리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알뜰폰 사업 관계자는 본지에 “젊은 알뜰폰 고객들을 끌어오려고 중소기업들이 노력해도 마케팅이나 인지도, 자금에서 차이가 나는데, 토스에게 밀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다른 알뜰폰업계 관계자는 “기업 규모 면에서 차이가 나다보니 중소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경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 사업자들은 머천드코리아처럼 매각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내심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통신 자회사만 경계했더니…금융권 시장 진입에 난색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당초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대기업들의 잔치가 되고 있다며 호소한다. 이통3사는 SK텔링크, KT엠모바일, KT스카이라이프, LG헬로비전, 미디어로그 등 자회사를 내세워 진출한 바 있는데, 이들이 약 50%(IoT 회선 포함)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4년 알뜰폰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이통3사 자회사들의 합산 점유율이 50%를 넘길 경우 영업을 제한하는 등록조건을 부과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IoT 회선을 제외하고 점유율을 계산해야 한다며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리브엠’의 경우 점유율이 아직 5%지만, 파격적인 요금제로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경쟁력 있는 요금제를 내놓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겠다고 선언한 리브엠은 망 이용대가 3만3000원인 무제한 요금제를 2년간 최저 2만2000원에 제공했다.

통신 자회사들은 도매대가 이하 요금제를 팔지 못하게 돼 있지만 당초 KB국민은행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통신 분야에 진출했기에 예외다. 중소 사업자들은 KB리브엠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을 교란하고 출혈 경쟁을 유도했다며 반발했다.

리브엠‧토스 참여에 통신사가 ‘침묵’하는 이유

통신사들의 입장에서도 KB국민은행과 비바리퍼블리카 같은 금융권의 시장 참여는 복잡한 문제다. 

알뜰폰 사업은 사업자를 대상으로 망 임대 사업을 하기 때문에 이동통신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 그럼에도 통신사들은 고착화된 이동통신 시장 대신 알뜰폰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망 도매대가를 통한 매출을 늘리기 위해 알뜰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는 기업 차원에서 알뜰폰 중소 사업자에 대한 상생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펴고 있다. 특히 일찍이 적극적으로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지원 정책을 펼쳐 온 LG유플러스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도매대가 매출이 700억 원 이상 순증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과 토스 등이 참가해 알뜰폰 시장의 외연이 확대되면 통신사가 받을 수 있는 망 도매대가는 더욱 늘어난다.

동시에 ‘상생’하기로 한 중소 사업자들이나 통신사 대리점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휴대폰 판매 종사자들이 속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아예 통신3사가 리브엠에 대한 망 제공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KB리브엠에게 망을 제공중인 LG유플러스는 망 제공을 중단하고, SK텔레콤과 KT는 망 제공 계획을 백지화하라는 요구다. 이들은 KB리브엠에게 망을 추가 제공하면 영업 중단까지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날 리브엠 제휴통신망을 LG유플러스에 이어 KT까지 확대했다.

KT 관계자는 본지에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망을 도매 제공할 것”이라며 “과다한 요금 할인, 상품 제공 등 통신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 모니터링하고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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