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출발기금 빚 90% 탕감은 도덕적해이…50%로 낮춰야"
연체 혜택·부실채권 매각기준도 불만…지역 신보들 동참

소상공인 부채 탕감안 은행들 반발. 사진/연합뉴스
소상공인 부채 탕감안 은행들 반발.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다음 달 금융지원 종료를 앞두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채무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은행권에서는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와 금융기관의 손실 부담 등을 들어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2일 주요 시중은행 여신 실무자들은 은행연합회에 모여 정부와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보내온 '소상공인·자영업자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실행 계획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나눴다.

정부는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으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층 대출자의 부실 채권을 사들여 채무를 조정해줄 계획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대상은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 만기 연장·이자 상환 유예 지원을 받고 있거나 손실보상금 또는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수령한 개인사업자·소상공인이다.

채무 조정의 핵심은 기존 대출을 장기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면서 대출금리를 연 3∼5%로 낮춰주고, 특히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 차주'의 원금 가운데 60∼90%를 아예 감면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주요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이 감면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입을 모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무조정 프로그램 안에 따르면 캠코 매각 채권(무담보)에 대한 원금감면 비율이 60∼90%인데, 과도한 원금감면은 부실 차주를 양산하고 도덕적 해이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보유자산, 채무상환 능력 심사를 강화해 원금감면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다음 주 감면율을 '10∼50%' 정도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채무조정 대상자 범위가 너무 넓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부실 우려 차주'에 대해 일차적으로 신복위 프로그램을 활용해 채무조정을 하고, 금융회사가 신복위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새출발기금이 해당 부실 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에 나설 방침이다.

'부실 우려 차주'의 기준으로 '금융회사 채무 중 어느 하나의 연체 일수가 10일 이상 90일 미만인 자'가 제시됐다. 열흘만 대출금 상환이 밀려도 채무조정 대상에 포함돼 연체이자를 감면받고 금리도 연 3∼5%로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외에도 부실 우려 차주 기준으로는 ▲ 금융회사의 만기연장·상환유예 거부 차주 ▲ 6개월 이상 장기 휴업자·폐업자 ▲ 연체 등에 따른 기한이익상실 차주 ▲ 세금체납 등 신용정보관리대상 등재 차주 ▲ 최근 6개월간 5일 이상 연체 횟수 3회 이상인 개인 사업자 ▲ 개인신용점수 하위 20% 이하인 개인사업자 등이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충족하면 채무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채무조정 대상이 너무 많은데다 기준이 느슨한 탓에 고의로 연체하는 채무자까지 늘어나면 금융기관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며 "특히 2금융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조달금리가 높기 때문에 기존 7∼8%였던 금리를 조정안대로 3∼5%까지 내려주면 역마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새출발기금 이용정보 기록을 바탕으로 신규 금융거래가 제한되는 '부실 차주'(연체 90일 이상 대출금 보유 차주)와 달리 '부실 우려 차주'의 경우 은행 간 정보 공유까지 불가능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은행들은 새출발기금 운용기관 캠코에 부실 채권을 매각하는 기준 등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정부는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프로그램 운영 대상 차주의 채권을 캠코 외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채무조정 프로그램 신청 기간이 3년인 것을 고려하면, 향후 3년간 매각이 어렵다는 의미다.

금융기관이 판단했을 때 재산이나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의 채권까지 낮은 가격으로 캠코에 강제 매각하라는 것은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손해를 전가하는 불공정 행위라는 게 은행들의 주장이다.

정부는 채권가격을 산정할 때 은행이 쌓아 놓은 충당금을 차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1억원 대출에 대해 부실 우려로 충당금을 7000만원 쌓아뒀다면, 채권 매각 가격은 3000만원이 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권유 등에 따라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한 금융회사는 매각가격을 산정할 때 오히려 불리하다"며 "가격 산정방식을 합리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같은 맥락에서 새출발기금을 통한 채무 조정 과정에서 손실을 떠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들이 대출을 받을 때 지자체 산하 지역신용보증재단(이하 지역신보)이 보증을 섰는데, 새출발기금이 부실 채권을 헐값에 사들일 경우 결국 지역신보도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도 이와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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