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오일뱅크·CJ올리브영 등 IPO 취소
증시 위축에 제값 못받아…"내년 이후에 주가 반등"

기업공개(IPO). 사진/연합뉴스
기업공개(IPO). 사진/연합뉴스

기업공개(IPO) '대어들'의 상장 작업에 힘이 빠지고 있다. 최근 증시 부진에도 미래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자신하며 IPO 일정을 강행한 쏘카가 기관 수요예측에서 기대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자, 그동안 최적의 상장시기를 저울질하던 대형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가파른 금리 인상 속에 IPO시장 위축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높은 가격으로 증시 입성을 기대하는 기업들의 IPO는 내년 이후에나 가능한 분위기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장을 연기하거나 계획을 철회한 대기업그룹 계열 비상장사는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현대오일뱅크, CJ올리브영, SSG닷컴 등이 있다.

현대차그룹 비상장 건설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두고 공모가 산정을 위해 지난 1월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결과가 나오자 일정을 연기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추후 적절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IPO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오일뱅크도 지난달 20일 이사회에서 기업공개 철회를 결정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해 올해 6월 상장 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정춘섭 현대오일뱅크 상무는 지난달 말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IPO를 처음 추진했을 당시보다 회사 수익성 개선 대비 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너무 낮아 성공하기 어려웠다"며 "IPO 추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 (재추진 시기가) 언제가 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CJ그룹도 최근 CJ올리브영의 연내 상장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CJ그룹은 현재의 시장 상황에선 올리브영이 벨류에이션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고 판단, 내년 이후에 상장 추진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계열 SK스퀘어 자회사인 보안업체 SK쉴더스와 앱마켓 원스토어 역시 연이은 수요 예측 흥행 실패로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구체적인 IPO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내년 이후에나 상장 추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일뱅크, CJ올리브영 등은 증시 입성이 재벌가 지분 승계,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IPO가 흥행해 구주매출 가격이 높아지면 승계나 지배력 강화에 필요한 '실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구주매출은 대주주나 일반주주 등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으로 말한다.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하면 IPO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도 줄어드는 만큼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올해 첫 코스피 신규 상장 대어로 주목을 받았던 쏘카는 최근 실시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성적을 낼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4~5일 진행된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 결과는 오는 9일 공시되는데, 경쟁률이 100대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쏘카의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 대부분이 희망 공모가 범위 하단 이하를 써낸 것으로 전해졌다. 쏘카가 상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희망 범위 하단 이하에서 공모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쏘카마저 흥행에 실패하면 컬리와 케이뱅크 등 대어급으로 평가받는 후속 주자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쏘카의 저조한 흥행성적 배경으로 공모가의 '고평가 논란'이 꼽히는 만큼 상장 작업을 진행 중인 기업들이 연내 상장을 마무리하려면 당초 계획했던 공모가를 더 낮춰야 할 수도 있다.  

움츠려든 IPO시장이 살아나려면 높은 성장성을 바탕으로 투자매력이 큰 '알짜' 기업들이 합리적인 공모가로 등장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가를 짓누르는 금리인상 등 악재들이 해소돼 증시 전반의 투자심리가 살아나야 한다. 

최근 2400선을 회복한 코스피의 '바닥'을 놓고 증권가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코스피가 이미 바닥을 통과해 매물 소화 과정을 거친 후 상승 추세로 돌아서 하반기 중 3000선을 다시 넘볼 수 있다는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지만, 현재의 증시 상황이 단기 기술적 반등인 만큼 진짜 바닥은 내년 상반기께 올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오는 9월 이후 완화하고, 내년 상반기 중 인상 사이클이 종료되면 전 세계 증시가 생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승창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기업 경기가 살아나기 쉽지 않고, 추세 전환을 이루려면 연준을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의 긴축 강도가 약해져야 한다"며 "내년 상반기 금리 인상 속도가 둔화하면 주가도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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