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과 대비되는 개념이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에 대한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자세한 이론적 배경은 차치하고 근면혁명 자체를 부정하거나 강조할 생각은 없다. 근면혁명이라는 용어는 원래 일본의 인구사・경제사학자인 하야미 아키라(速水融)가 일본의 17세기 농촌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말이었다. 그는 경제학에서 근대화는 자본 투입을 늘리며 노동 투입을 줄이는 현상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데 17세기 일본의 경우에는 농업에서 말(馬) 사용을 줄이고 사람을 투입하여 농업생산을 증대시키는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를 근면혁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산업화 초기에는 자본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용 가능한 인력투입을 확대하는 것이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확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빈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시대 유럽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 유럽에는 각종 소비재, 향신료, 커피와 홍차 등 음료가 귀족은 물론 일반 서민층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치재(당시 기준)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근로자들은 더 많은 노동시간을 투입해서 소득을 증대시켜야만 했다. 이에 따라 당연히 근로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뒤돌아보면 오늘날 우리의 월평균 근로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많은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급여체계나 근로환경 등의 차이에서 오는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근로시간은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해서 월등히 긴 편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근로시간은 연간 1,915시간으로 OECD 평균 1,716시간에 비해 200시간 정도 긴 것으로 나타났다.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긴 국가는 중남미 국가들 뿐이다.

한편, 독일의 근로시간은 1,349시간으로 한국보다 40% 정도 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2011년 2,136시간을 기록해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2021년 한국의 근로시간 수는 2011년에 비해 221시간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지난 10년간 10% 가까이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장시간 근로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근면의 대명사인 일본의 근로시간이 1,600시간인 것을 감안한다면 장시간 근로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회사에 오래 남아 있어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오류에 빠져 있다. 필자도 그런 환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피로가 누적되어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한 다음부터는 가급적 야근을 멀리하고 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시간 안에 업무를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과거에 통용되었던 야근, 주말근무, 업무시간 이후 잦은 회식문화와는 이제 결별해야만 한다.

어느 유력 정치인은 국민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우리 근로자들이 처한 현실은 냉엄한 편이다. 그동안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여러 차례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시간 근로에 노출되어 있지만, 기업 현장의 상황을 보면 무리하게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라 할 수 있는 휴가 및 연차, 육아휴직 등을 사용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근로여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으로의 인력 유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력이 줄어들고 있어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커지게 될 것이다.

장시간 근로를 유지할 방편으로 근면혁명을 생각했다면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서구 유럽보다 늦게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경제는 근면혁명보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제 우리는 법정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 요구된다. 우선 일하는 방식을 개편하여 집중근로시간 도입, 직무분석에 의한 효율적인 업무 분담을 추진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체계, 합리적인 성과보상체계 도입으로 업무 만족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더 많이 일하는 근면혁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일하는 방식을 바꿔 워라벨을 실천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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