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중소기업신문] ‘부산 태종대에서 날씨가 화창한 날은 길쭉한 두 개의 섬으로 되어 있는 대마도가 완연히 보이며 우리의 가슴을 뭉클케 한다’(장병학).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부산에서 불과 49.5㎞ 떨어져 있지만 일본 본토인 후쿠오카에서는 130 여 ㎞나 돼 우리나라와 훨씬 가까운 섬이죠. 핏줄로도 대마도인은 우리와 동일하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대마도 영토 회복 주장은 배일감정이 드높았던 광복 이후 강하게 주장되다가 희석된 것인데 21세기 들어 시대착오적인 일본의 독도 야욕이 드러나면서 다시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은 1948년 건국 직후부터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승만은 1949년 1월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일 배상요구를 언급하면서 “대마도만은 별개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대마도가 우리의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350년 전 일인들이 그 섬을 침입하였을 때 도민들은 민병을 일으켜 일인들과 싸웠던 것이다. 그 역사적 증거로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의 여러 곳에 건립했던 기념비를 뽑아다가 동경박물관에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포츠담선언은 일본이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도록 했기 때문에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이를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희망에 부풀었던 제헌국회도 대마도를 찾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단기4282년(1949년) 3월 19일 국회 외무국방위원장 지대형은 국회의장 신익희에게 제출한 ‘대마도반환요구에 관한 건의안 심사보고’에서 “이문원 의원 외 30인으로부터 제출된 건의안에 대하여 신중히 심사한 결과 차건은 역사적 지리적 등으로 확실한 우리 영토임은 재언을 불요하오나 현하 국제적 중대한 관계가 유하와 임시 보류하기를 가결하고 본회의에 부의치 않기로 하였기에 보고하나이다”라고 유보를 밝혔습니다.

헌법을 제정하던 1948년의 국회에서는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제4조 조문을 싸고도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대마도와 간도 등 우리 땅 때문이었습니다. 이구수 의원이 ‘대한민주국의 영토는 고유한 판도로서 한다’라고 수정 제의 한 것입니다. 박기운 의원은 ”만주의 북간도라든지 국가적으로는 그 권력을 못 가지고 있지마는 그 권리를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다. 의당히 과거의 역사 사실로 보더라도 우리 국토로 편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의도 하에서 반도와 거기에 부속된 그 도서만을 낸다는 것이 너무 국한된 것으로 여기에 여유를 두기 위해서 고유한 판도로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김경배 의원도 “옛날 고려시대 지도를 볼 때에 지금 대마도가 우리 조선의 영토로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부속도서로 정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장래 찾기 위해서 명백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정세를 의식한 상황논리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고착되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2월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영호 의원은 "학계와 민간단체들은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였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으므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총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는 “대마도를 일본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제 판단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일언지하에 잘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실효지배하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총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죠.

2008년 7월17일에는 김무성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33명이 가칭 ‘대마도 역사연구회’를 만들어 대마도가 대한민국 영토인지 여부를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182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 등에도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 나와 있는 등 지리적, 역사적, 문헌상으로 우리 땅임을 밝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대마도 영유권 주장은 그대로 수그러드나 했는데 올해 8월 울진군을 선거구로 가진 경북도의회 전찬걸 의원이 "국민들에게 잊혀져있던 우리 땅 대마도를 찾는 것이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을 분쇄할 수 있는 첩경이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 문헌 등의 증거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862년 서구열강들이 대마도를 놓고 서로 각축하자 일본은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이므로 서로 다투지 말 것을 제안하면서 (일본인이 만든 최초의) 국제공인지도인 ‘삼국접양지도’를 서구열강들에게 제시했다. 일본 스스로 대마도가 조선영토임을 국제사회에 공인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포츠담선언에 근거하여 ‘대마도 반환요구 성명’을 발표하자 일본이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1950년 1월, 한국정부에 대마도 양국 공동관리 제안까지 갔다가 6개월 후 6·25전쟁 발발로 무산되어 결국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이 대마도를 자국영토로 편입시키게 된 시점은 1868년으로 143년이 되었고, 완전 편입한 것은 6
0여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100년이 지나 영토를 회복한 외국의 사례도 들었습니다.

장병학 충북도의회 교육의원은 “현재 살고 있는 대마도인은 우리와 핏줄이 같아 ‘대마도가 조선땅’이라는 확신을 더 갖는다. 일본 후생성이 1978년 발표한 HB항원 분포도에서 한국인과 대마도인은 ADR형으로 100% 일치한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B형 간염 유전자 물질을 조사한 결과, AYW등 4가지 단백질이 검출되는데, ADR단백질이 일본인들은 70%정도만이 대마도인과 일치한다는 것이죠.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군국주의의 잔재인 일본의 독도 야욕으로 불이 붙은 우리의 애국심 속에서 실지회복 운동이 얼마나 세를 얻어 확산해나갈지는 모르겠습니다. 당파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던 못난 조상들이 놓친 옛 땅을 되찾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는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 같은 영토분쟁이 말해줍니다. 외교는 상대가 있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국제환경이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해서 물러서지 말고 집요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죠. 전무후무한 최고의 외교관이라고 평가할 이승만 박사처럼 끈질긴 집념과 실행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동북아시아에선 신냉전 기류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요즘 “이것도 해주겠다.” “저것도 해주겠다.” 대선 포퓰리즘이 난무합니다. 세금을 제 지갑 속의 돈처럼 쓰려는 어설픈 정치 공세에 국민들이 한 눈 팔 처지가 아니죠. 자주국방과 국가안보, 내일의 균부를 위해서도 우리는 배급보다는 경제성장을 목표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럴수록 경제는 물론이고 국가안보와 외교를 잘 끌고 갈 혜안이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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