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언론인

[중소기업신문] 재벌의 자본이 지배하는 케이블 텔레비전 사업자(SO)가 자주 프로그램 개편을 하면서 즐기던 무료 채널들이 '프리미엄 채널'이란 이름으로 ‘승격’하여 계속 보려면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신문으로 치자면 보급소가 A지를 끊고 B지만 보라고 명령하는 듯한 상혼이죠. 담당자는 프로그램 개편이 방송통신위의 지시라고 둘러댑니다. 어떤 때는 프리미엄 채널의 전파 신호가 잘 못 나갔다고 변명합니다. 방통위는 사업자의 이런 불공정거래가 한두 곳이 아닐 듯한데 실정을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눈감는 것인지 궁급합니다. 문제는 사업자들이 소비자의 주권을 무시하고 방송영업의 윤리를 지키지 않는 데 있을 것입니다. 사업자가 채널을 지금처럼 묶음으로 팔 게 아니죠. 하나하나 채널의 가격을 매겨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해주는 것이 방통위의 임무가 아닐까 합니다.

두 달 정도 남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가 없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능력이 모자라는 방통위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IT의 융합이라는 기업적 마인드로 단행한 MB의 정통부 폐지는 IT 경쟁력 지수의 국가별 순위를 10위권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통부의 산업적 기능을 차지한 지식경제부(상공부, 산자부를 거친 조직), 방송 통신 정책을 차지한 방통위, 국가 정보관리를 가져간 행정안전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맡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통부를 사분오열시킨 것이죠. 자신들이 정통부 기능을 갖고 있으니 정통부 부활은 필요 없다고 전 지경부 장관은 주장합니다. 아버지가 있으면 엄마가 필요 없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어느 정부 부처가 지금의 스마트폰 도래를 예언했는지, 아니면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예언했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현재의 문제에 매달려 갖고는 미래의 장기 비전을 세울 수가 없지요.

정통부가 실패했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지만 질척대는 우리나라의 정부조직은 많습니다. 사교육 시장을 부풀릴 대로 부풀려놓은 교육부, 각종 금융부정이 끊일 새 없던 금감위 금감원 등이 대표적이죠. 지금 우리나라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을 놓고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것은 과거 과기부와 정통부가 앞장서서 부르짖어온 ‘FTTH(FIBER TO THE HOME; 집집마다 광케이블을 깔자)’라는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전화선을 이용해 겨우 1초에 300바이트를 주고받던 1980년대 PC통신 시절의 정보전달 속도는 지금 그 5만 배 이상인 평균 17메가바이트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전(前) 세대가 자동차가 다니는 고속도로 건설로 물류혁명을 일으켜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지금 세대는 초고속 정보고속도로의 완성으로 디지털 경제와 민주주의를 주도하는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이런 정책 실현의 노고를 저평가하면 안 됩니다.

지금 무선 정보통신에선 국민들의 휴대폰 번호가 010으로 통합되어가고 있습니다. ‘01X’로 끝까지 가고 싶은 가입자들도 있겠지만 대세는 통합이지요. 그런데 유선전화는 아직도 ‘쌍팔년도’식 지역번호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선전화 가입자가 2,000만 회선 이하로 줄고 있는데 왜 지역번호는 없애지 못하나요. 이런 통합의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방통위도, 지경부도, 행정안전부도, 문화관광체육부도 어렵습니다. 다시 헤쳐모일 정보통신부의 몫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 8월 이상민 국회의원이 과학기술계 27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 1,4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현 정권의 과학기술 정책 가운데 잘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과학기술부 및 정보통신부 등 과학기술 전담부처의 폐지’를 지적한 의견이 89.2%(복수응답)나 되었습니다. IT BT CT를 읊조린 게 어제 같은데 이를 망각하고 그 밑바탕을 다질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죠. 기초를 외면하고 있으니 거의 정권 내내 야당이나 시민단체들로부터 ‘삽질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한껏 받는 것이지요.

노벨상에서 일본에 19대 1. 평화상을 빼면 18대 0, 과학기술 분야 16대 0의 절대 열세를 타개할 정책 의지가 부족한 참담한 현실을 볼 때에 올림픽에서 금메달 수로 일본을 눌렀다고 자랑할 게 아닙니다. 물론 과학기술부나 정보통신부가 정부조직으로 존재한다고 하여 노벨상을 타는 것은 아니지만 돈벌이 기업마인드만 풍미하는 부박한 풍토에서 성숙한 체세포에 유전자를 넣은 역분화줄기세포를 만들어 인류에 이바지한다는 기초연구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과학기술’ ‘정보통신’. 부처의 존재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공과가 많지만 새벽에 조용히 황우석 박사의 돼지 복제 연구실을 찾아가 '미래의 노벨상' 꿈을 격려했습니다. 기초과학 연구의 역량 강화가 무사안일한 교육 관료들이 득실대고 이상하고 부패한 교육감들이 설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틈바구니에서 잘 될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가장 두려운 성장 정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향한 레이스는 들어온 세금을 배급하는 '공짜 오염'의 경쟁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거대하고 근본적인 담론의 경쟁이 필요합니다. 배급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런 것은 정책 축에 낄 사안도 아닙니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선진국으로 진입시킬 비전과 그 실천방안으로 담론을 리드하고 심판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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