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지 변호사(법률사무소 장우)
                                    공현지 변호사(법률사무소 장우)

#A기업의 초대회장인 甲은 자녀로 아들 乙과 딸인 丙을 두었으며 주요 재산으로는 A기업의 주식 및 차명으로 매수한 400억원 상당의 무기명채권 등(이하 ‘차명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甲은 乙에게 기업의 경영권을 온전히 승계하기를 희망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甲 명의 주식 뿐만 아니라 차명재산까지도 乙에게 상속하여 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었으나, 경영권에 더해 차명재산까지도 명시적으로 乙에게 유증하는 경우 형제간 분란이 생길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甲은 乙의 외삼촌인 丁과 논의 끝에 사망하기 직전 유언장을 작성하여 丁을 유언집행자로 지정하면서, ① 甲 명의의 주식은 乙에게 유증할 것, ② 당분간 丁이 기업을 경영하되 적절한 시기에 乙에게 경영권을 이양할 것, ③ ‘나머지 재산’은 丁의 뜻에 따라 처리할 것, ④ 丙에게는 별도의 재산을 상속하지 않을 것을 기재하였다.  

이후 甲이 사망하자 乙은 약 15년간 위 차명재산을 관리하다가 잠시 丙에게 채권증서를 맡겨두었는데, 丙은 이를 모두 제3자에게 매각하거나 자신이 직접 원리금을 상환받았다. 이에 乙은 丙을 상대로 채권 액면금액 상당액의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여기서 결론을 내리면 유언자가 상속재산을 유증할 상대방을 직접 특정하지 않는 채 제3자에게 위임하였더라도, 유언서의 전체적인 취지를 비롯하여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유증 상대방의 지정 범위에 관한 유언자의 의사가 확인되고, 이후 제3자가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유증 상대방의 선정 권한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해당 유언이 유언의 일신전속성에 반하여 무효라고 볼 이유가 없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乙이 유언에 따라 차명재산의 소유권을 유효하게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乙의 소유가 된 차명재산을 임의로 처분한 丙은 乙의 소유로 입증된 부분에 한하여 그 채권의 가액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 유언의 일신전속성

유언은 유언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민법에서 정한 사항을 결정하고, 유언자의 사후에 그의 의사가 실현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유언은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로서 유언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유산의 처분이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민법은 유언을 법정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는 경우 효력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유언자 ‘본인’에 의하여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등을 통한 유언이 이루어져야 함을 명시하여 대리에 의한 유언을 명확히 배제하고 있다.

다만 유언 자체를 제3자가 대신하는 ‘대리’의 방식에 의한 유언이 민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유언자 본인이 남긴 유언서에서 ‘유증의 상대방’을 직접 지정하지 않고 제3자에게 그 지정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허용되는지에 관하여는 민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그 해석에 관하여 논란이 있다.

◆ 법원의 태도

법원은 유언서의 전체적인 취지를 비롯하여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유언자가 유언을 통하여 그 유증 상대방을 일정한 범위 또는 자격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해석되는 등 유증 상대방의 지정 범위에 관한 유언자의 의사가 확인되고, 그에 따라 제3자가 선정 권한을 행사할 경우에도 그 선정이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해당 유언의 효력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특히 앞서 제시한 사례에서, 甲이 사망 전부터 乙에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려는 의사가 확고했다는 점이 여러 자료를 통해 증명되었고, 유언서의 문언에서도 乙에게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점과 丙을 유증 상대방에서 제외한다는 의사가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증 상대방의 지정 범위에 관하여 적어도 ‘乙의 경영권 행사에 도움이 되거나 지장이 없는 사람’으로 한정하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나머지 재산’ 부분의 유언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 주된 논거가 되었다.

◆ 검토

앞서 제시한 사례에서 법원은 최종적으로 甲의 유언 중 ‘나머지 재산’ 부분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기는 했으나, 실제 사안에서는 甲의 유언을 둘러싼 남매간 분쟁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A그룹의 안정적인 경영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

특히 위 사례에서 법원은 丙이 차명재산의 정당한 상속인 乙에게 채권 액면금 상당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반환범위는 A그룹이 비자금 수사 및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乙 자신이 차명재산으로 인정하는 등으로 그 존재가 입증된 153억원으로 한정하였다. 결국 乙은 차명재산의 정당한 상속인으로 인정받기는 했으나, 차명재산의 실제 규모인 400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153억원만을 반환받게 된 것이다. 이는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한 경우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甲의 사후 상속을 둘러싼 남매간 분쟁과 고강도의 검찰 수사 및 세무조사로 인하여 경영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 점, 결국 甲이 경영권 승계를 위하여 조성한 차명재산 중 상당 금액이 乙에게 귀속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하면, 최대한 해석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명확한 법률용어에 의하여 유언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으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법의 테두리 내에서 경영권의 안정적인 승계를 위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공현지 변호사(법률사무소 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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