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환 언론인

[중소기업신문] 필자가 경제신문에서 인터넷 사업을 담당하고 있을 때 많은 벤처 기업들이 제휴를 하려고 사업계획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거개가 영세했지만 성장성을 보고 많은 기업과 제휴했습니다. 신문사는 이들 벤처를 엔젤 투자가와 연결해주는 행사를 자주 열었습니다. 일부 기업은 당시 벤처의 꿈이었던 코스닥 시장에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역경을 헤치고 생존한 벤처 기업이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벤처 성공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대선에서 눈물을 참으며 사퇴한 안철수 후보는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늘 “직업은 정말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골라야 한다. 영혼의 승부를 하라”고 멘토답게 말해왔습니다. “실패를 두려워마라. 실리콘 밸리에서도 성공하는 벤처는 드물다. 거기선 실패를 기업가 자신의 무능이 아니라 그렇게 된 환경을 고려해준다. 누구도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며 벤처의 성공 인물다운 벤처 정신을 한껏 강조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죠. 하지만 우리 사회엔 ‘한번 해보자’는 벤처 정신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마치 무기력한 고령화 사회의 자화상처럼…. 하기야 대기업이 독식하는 풍토에서 창업은 아이템이 획기적이지 않은 한 성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벤처의 대가 안철수가 방향을 틀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정치적 벤처도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꽉 잡은 것은 경제나 정치나 마찬가지라는 거죠.

우리 사회에 ‘안철수 현상’이라는 초특급 태풍을 몰고 온 주인공은 젊거나 무당파인 계층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국익을 외면하고 때론 안보도 외면하며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으르렁대다가도 제 밥 챙길 때는 한통속이 되어 세비를 올리고 종신연금을 신설하고 볼 게 뭐가 있다고 관광이나 다름없는 외유에 나서 국고를 탕진하는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국민의 상전으로 군림하는 이런 사악한 풍토에 새정치 바람을 일으킨 안철수는 가장 먼저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줄이는 200명으로의 축소와 공직부패수사처 설치 등 담대한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매스컴과 정치권은 비현실적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죠. 국회의원들이 제 목을 자르는 법을 만들 리가 없고 의원 수가 줄면 정치권에서 입신양명할 기회도 줄어들고 선거 유공자 등을 챙겨줄 자리가 부족하니 정당들이 반발할 것이 당연했습니다. 개혁이란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살신성인의 아픔 없이는 안 되는 것인데 그 아픔은 절대로 싫다는 겁니다.

단일화 TV토론에서 “국회의원 수 조정은 지역구를 줄이고 전국구를 늘린다는 것”이라는 해석에 안철수는 그럼 조정이 확대라는 의미냐고 맞받았습니다. 안철수의 공약은 ‘정치가 국회에서부터 개혁되어야 한다'며 국회의원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정서를 아주 잘 대변하는 것입니다.

‘섹스 검사’ ‘뇌물 검사’…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부패 문제입니다. 기소독점권을 쥐고 견제와 균형이 없는 사정기관 조직원이 썩었으니 제 기능을 할까 하는 우려를 주기에 충분하죠. 공수처 신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걸었지만 열린우리당의 절대 다수의석을 가지고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당내외에서 압력을 가했고 노 대통령은 그 점을 자서전에서 매우 비통해 했습니다. 공수처는 기득권자들의 반발이 고급공무원들의 청렴도를 높이려는 역사의 발전을 얼마나 가로막는지를 증거하는 사례입니다.

안철수는 대통령이란 국회가 결정한 일을 집행하는 자리라고도 정의했습니다. 지지에 참여한 국회의원이라고는 1석밖에 없는 무소속 후보가 개혁을 내걸면서 수십 년을 유지해온 개혁대상의 기존정당과 함께 싸운다는 것은 다이너마이트로 터뜨려도 꿈쩍하지 하지 않을 거대한 암반을 삽으로 혼자 캐내보겠다는 행동이었습니다. 대의명분은 옳았다고 해도 도구화되기 십상이었죠.

리버럴한 온건파인 그는 두 가지를 화두로 던져야 했습니다. ‘역사를 파먹는 민주화와 산업화세력의 이전투구는 이제 끝내라! 세대를 교체하자!’ 정치적 부패나 수도 분할 같은 업보에서도 자유롭고 정보통신 전문가로서 디지털 미래 경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그는 서울시장 출마를 박원순에게 양보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뛰어 시쳇말로 스펙을 쌓으며 미래가치 창출의 최첨단에 서야 했습니다. 강단의 이론이 노회하기 이를 데 없는 약육강식의 정치판을 이길 수가 없죠. 정치는 철인들이 하는 게 아니라 이리떼처럼 탐욕스럽게 권력에 달려들어 세금이라는 고깃덩어리를 입맛대로 던지고 싶은 자들이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텔레비전 후보 단일화 토론을 본 시청자들은 "안철수가 국회의원이라도 해보았으면 좋았겠다”라는 댓글을 썼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원이든 장관직이든 그에게 많이 오퍼를 했을 테지요. 찬스에 강해야 한다는 말은 때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안철수의 찬스는 그렇다면 지나가는 것일까요?

지금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무당파 국민들은 허탈하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대변해줄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죠. A의 대체재는 누구냐는 것이죠. 안철수는 "새정치의 꿈이 잠시 미루어지겠지만"이라고 말했습니다만 누구를 지지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이제 정치인 안철수는 남의 힘에 기댈 것 없이 자신이 중시하는 핵심가치를 타협 없이 지키면서 나라를 발전시킬 청사진을 구체화하여 동조자들을 규합하고 세력화하여 이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그는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정치인으로 남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벤처인 안철수는 더 기다릴 것 없이 411총선의 당선무효가 나오면 그곳이 대한민국의 어디든 출마하여 국회에 진출부터 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듯합니다. 안철수는 이 나라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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