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중소기업신문] 작년 말 세종로 광화문 앞 구 문화관광부 건물을 개조해 문을 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지난 주말 둘러봤습니다. 이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대부분이 혹평에 기운 언론보도를 접했던 터라 그 실상을 확인해 보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태동기인 1860년부터 현재와 미래에 걸친 대한민국의 모습이 사료와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간의 역사는 아직 정리가 진행 중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는 정반대로 될 수도 있습니다.

건국의 기점이 상해 임시정부냐, 해방 후의 정부수립이냐로부터 시작해, 6·25, 5·16, 한일협정, 10월 유신, 5·18 등 매듭지어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으니 당사자들 간에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로 요약될 수 있겠는데, 그 양면 중에서 산업화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김왕식 박물관장은 ‘고난과 역경의 극복, 도전과 성취에 초점을 두었으며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조명코자 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50여 년 동안의 성취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의 고취가 박물관 설립의 주요 목표인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특히 못마땅할 것입니다.

김 관장은 이어 ‘이제 시작하는 걸음이라 부족함이 많습니다. 부족함을 여러분이 채워 주십시오.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 모두가 엮어가는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사박물관을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참여하여 가꿔가는 진화론적 개념의 박물관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전시자료는 정부 소장품 외에 개인 단체 소장자들이 기증한 것도 많았습니다. 전시물이나 전시 방식에 첨단 영상기술이 접목돼 시청각교육 효과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념을 이유로 이 박물관을 헐겠다는 정부만 나오지 않는다면 국내외적으로 우리나라 근세사에 대한 바른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박물관에서 나의 발길을 한참 동안 머물게 한 것은 제 1 전시실 입구에 걸려 있는 데니의 태극기였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태극기로 인정되는 데니의 태극기가 이곳에 걸리도록 하는 데 작은 기여를 했던 30여년 전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습니다.

한국일보 문화부에서 학술담당 기자로 근무하던 1980년 연말께였습니다. 학술담당 기자는 교수들의 학술동정 등을 챙겨서 기사로 만드는 게 일이었는데 어느 날 대학신문을 뒤적이다 단국대 학보에 실린 김원모 교수(한미교섭사·79세·현 단국대 명예교수)의 논문 속에서 데니 태극기에 관한 내용을 읽게 됐습니다.

김 교수의 논문은 1886년에서 1890년까지 4년간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일했던 미국인 오웬 N 데니(1838~1900)의 행적에 관한 것으로, 그가 저서 ‘청한론’을 통해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한 내용을 소개한 것이었습니다.

데니가 남긴 많은 유품 중에 상당수가 오리건 주 오리건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는 것과 1890년 그가 한국을 떠날 때 고종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태극기는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데 아마도 가장 오래된 태극기일 것으로 믿어진다는 내용이 짧게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당시 문화부 정달영 부장(작고)에게 이 내용을 보고했고, 정 부장은 한국일보 시애틀 지국의 조병우 지국장에게 소장자의 집이 있는 포틀랜드로 현지취재토록 했고, 1981년 1월5일자 사회면 톱 기사로 ‘最古의 太極旗를 찾았다’ ‘辛酉 元旦에 태평양 건너온 朗報’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기사는 데니의 태극기가 가로 260cm, 세로 180cm, 태극원 지름 120cm로 질긴 광목천에 홍청의 음양무늬와 청색의 괘를 재봉질로 붙였으며 보관상태가 매우 양호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장자인 데니의 외손자 윌리엄 롤스턴 1세(당시 80세) 씨는 태극기를 한국정부에 기증할 의사도 밝혔습니다.

 

보도가 나간 후 정부도 환수에 적극 나서 그해 6월23일 롤스턴 1세를 대신해 아들인 롤스턴 2세 부부가 정부 초청으로 태극기를 안고 서울에 왔습니다. 나는 김포공항으로 그들을 마중하러 나갔고, 태극기 실물도 처음 봤으며, 정부의 환수과정에 대해 기사도 썼습니다. 내가 쓴 기사 중에는 “할아버지가 우정의 표시로 받았으므로 우정의 표시로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부친 (롤스턴 1세)의 뜻입니다”는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원모 교수는 그 뒤 현행 태극기 괘의 색깔이 검정색인 것은 데니 태극기를 참조하지 않은 상태로 결정된 것인 만큼 푸른색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폈습니다. 나도 그것이 논리적으로 옳고, 국기에 검은 색을 쓰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한번 정해지면 고치기 어려운 게 정부의 일이라 아직 수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데니 태극기가 고국의 품에 안기는 절차가 모두 끝난 뒤 회사는 조병우 지국장과 나에게 공동으로 특종상(동)을 수여했습니다. 훗날 역사박물관의 마스코트처럼 될 줄 알았다면 ‘금상’이었어도 아깝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합니다. 이 상은 한국을 사랑했던 데니와 데니의 후손, 김원모 교수와 김 교수의 친구이자 데니 연구가였던 로버트 스워타우트 박사 그리고 정달영 선배가 주신 상이라고 말입니다. 특히 정달영 선배는 기자의 작은 아이디어를 살리고 의미를 키워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내는 데 천부적인 안목을 지녔던 언론인이었습니다.

역사박물관이 진화하는 박물관이 되려면 전시자료들에 들어 있는 이같은 인간적인 요소들을 발굴 정리하는 것도 포함돼야 하리라고 봅니다. 전시물 가운데 광부의 고단한 하루를 꼼꼼한 스케치와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놓은 파독광부의 일기장을 보면서 그분은 과연 누구였을까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저자소개>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