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중소기업신문] 지난 주말 모처럼 문화체험 나들이를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완주군의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2012 전북방문의해’ 피날레를 장식하려고 전북도가 야심차게 기획한 이 전시회에는 10여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하는데요. 하얀 눈으로 덮인 모악산 자락에 포근하게 자리잡은 미술관은 주말 관람객들의 열기로 후끈했습니다.

전시된 미술품 가액이 1,000억 원을 넘는다는 이번 샤갈-피카소 전시회를, 모든 여건이 열악한 지방에서  주최했다는 것에 참 대단하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예향(藝鄕) 특유의 집념과 예술 사랑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전시회장에서는 유모차나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마르크 샤갈(1887~1985), 에두아르 마네(1831~1883),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 호안 미로(1893~1983), 앤디 워홀(1928~1987)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대가들의 작품에 심취했습니다. 필자도 다 보고 나서도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워서 다시 메인 전시실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옛날에 인상파 미술관인 파리의 오르세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미술관을 보았습니다만 그곳을 다시 쉽게 찾긴 어렵죠.

‘세계미술거장전’이라는 타이틀답게 100점이 넘는 거장들의 작품 중에서 피카소의 ‘벌거벗고 앉아 있는 남자(nu et homme assis)’와 샤갈의 ‘에펠탑의 신부’, 마네의 ‘발렌시아의 롤라’, 툴루즈 로트레크의 ‘잔 아브릴’이 제게 특히 감동을 주었습니다. 웬 미술 관람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필자는 미술을 좋아합니다. 1999년에 ‘반 고흐를 위한 홈페이지’(www.vangogh.kr)를 만들어 지금껏 운영하고 있습니다.

샤갈의 그림은 에펠탑이 멀리 보이는 하늘을 날고 있는 신혼부부를 그린 석판화였죠. 후천적인 장애자가 되어 파리의 사교 무도장인 ‘물랭 루즈(빨간 풍차)’ 를 선전하는 포스터와 가수, 무희들을 즐겨 그렸던 툴루즈 로트레크나 대표적인 현대의 섹스 심벌이자 대중 예술의 우상이 된 매릴린 먼로를 연작으로 그린 앤디 워홀의 작품은 아주 쉽게 와 닿았습니다. 거장들의 대작을  빌려준 베네수엘라의 미술을 소개하는 특별전시실에서는 움직임의 예술이라는 ‘키네틱 아트’와 원근법 상의 착시 효과를 이용하는 ‘옵 아트’가 집중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다채로운 컬러라기보다 다소 수묵화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동생아, 돈을 절약하기 위해 유화보다 연필 데생을 더 그려야겠다….” 화가들이 가난과 얼마나 힘든 싸움을 벌였는지는 그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반 고흐는 궁핍의 대명사입니다. 동생 테오가 돈을 보내오면 물감 값과 모델료가 우선이었죠. 작품을 관람하면서 화가들이 혹시 물감 값이 모자라서 채색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작은 많은 준비 그림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반 고흐는 커피만으로 몇날 며칠을 연명하기도 했습니다. ‘내 그림이 물감 값을 하는 날이 올까’라고 늘 고뇌하던 반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유화를 팔았습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Vignoble Rouge  Arles,Montmajour)’을 400프랑에 산 안나 보흐는 지금 현대 미술사에 그 이름이 찬연히 빛나고 있습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처럼 눈이 소복이 쌓인 곳에 정연하게 들어선 단지를 보면서 지방도시도 의지 여하에 따라서는 문화적으로 급성장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대표 격이죠. 요즘은 전국이 1일 생활권이니 콘텐츠만 좋다면 멀다고 마다할 국민들이 아니죠. 실제로 샤갈-­피카소 전시회에서도 타 지역 억양을 적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 하나의 관람이 지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애호가들은 거리를 가리지 않죠. 부유한 마니아들이야 뉴욕으로, 파리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 중산층들은 국내행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죠. 전북도 미술의 요람인 도립미술관은 전국의 미술애호가들에게 큰 기쁨을 준 것이죠.

열차를 타고 전시회에 가려면 전주역에서 내린 후 직진하여 삼성병원 맞은 편에서 119번 버스를 타고 한옥마을 혹은 전동성당에서 내려 970번 도립미술관행 버스로 환승하면 총 40~50분 만에 미술관 밑에 내리게 됩니다.

미술관은 모악산 자락에 있어 등산과 겸할 수도 있습니다. 모악산 정상까지는 3.3킬로미터라고 쓰여있었습니다. 모악산 입구 오른쪽에는 김태곤의 노래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냐.… 그리운 마음 임에게로 어서 달려가보세~’로 유명한 송학사를 볼 수 있습니다. 미술관 뒤 눈길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운치가 있었습니다.

기대수익이 낮은 문화가 밀려나고 더욱 상업화, 세속화하는 인사동보다 더 질서정연하며 전통문화적인 전주 한옥마을에서 흥선대원군의 증손자인 황손 이 석의 승광재나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 전통 한지, 염색, 부채, 전통 술 등 다채로운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들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요즘 문·사·철을 강조합니다. 경영과 공학에 치우친 실리의 풍토에 문학, 사학, 철학으로 휴머니즘의 균형을 취하자는 것이죠. 여기에 음·미·체를 더하자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음악, 미술, 체육이죠. 하루하루가 곤비한 삶에 무슨 미술 타령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은 미술과 디자인 중시의 시대입니다. 미술이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전시회는 오는 2월17일까지입니다. 한번 찾아 보시도록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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