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중소기업신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나흘 뒤면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어렵사리 조각(組閣) 인선을 마쳤지만 청문회를 통과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됩니다.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의 지지도가 48%대로 떨어진 것은 유례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잘 할 것이라는 여론이 70%대를 유지하고 있어, 아직 국민들은 '실망 속의 기대'라는 냉정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살아온 세월이 어찌 보면 진흙탕 세월이었습니다. 흙탕물 묻히지 않고 살아 내기가 쉽지 않았던 세월이었습니다. 그렇기로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 아주 없기야 하겠습니까? 김용준 총리후보자가 축재, 자녀 병역의혹으로 낙마한 뒤, 새로 지명된 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 같은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이 매우 미흡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전 대통령들보다 크게 다를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들이 실망하고 불안해 하는 까닭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은 한국 정치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입니다. 예부터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각종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들이 여성 후보를 더 안 찍는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운명적인 굴레도 있었습니다. 그런 역경을 뚫고 당선된 대통령인 만큼 국민들의 기대는 각별합니다.
 
국제정치에서 여성 파워는 제법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동남아 서남아 국가들에서 여성 대통령 총리는 흔합니다. 태국에선 총리가 현직입니다. 남미와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3국도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가 많습니다.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가, 영국에선 마가렛 대처 전 총리가 걸출합니다.   
 
여성의 정치적 파워가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지역이 유교의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동북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입니다. 일본에서 여성 총리는 아직 꿈도 못 꾸는 일입니다. 20여 년 전 야당인 사회당에 도이·다카코 당수가 있었습니다. 중국도 매한가지여서 모택동(毛澤東) 주석 사후 그의 처 강청(江靑)이 권력을 찬탈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 일본 외에 미국 러시아를 포함한 4대 강국이 모두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은 이제 겨우 기지개 단계입니다. 차기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치고 있는데, 심각한 지병이 드러나 출마 자체가 어려울 전망입니다.

미국에서 흑인은 여성보다 50년 앞서 1870년대부터 참정권을 행사했습니다. 그것이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면 여성 대통령은 최소한 50년 뒤 독립 300주년 될 때쯤에나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총리가 자리를 번갈아 차지하는 희한한 교대(交代)정치를 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여성 대통령을 기대하는 것도 요원해 보입니다.
 
이들 4대강국 중에서 한국의 대선에 가장 관심이 큰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선거 전 서울 주재 한 일본신문의 특파원은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가장 큰 쇼크를 먹을 나라가 일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대선 직전인 작년 12월 16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둬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자민당은 극우적인 공약으로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한국에선 여자 대통령까지 탄생했는데 일본 정치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선택을 했으니 내심 한국인의 선택에 놀라워 했을 법도 합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의 작년 12월 21일자 ‘天聲人語(천성인어)’ 칼럼은 박근혜 차기대통령에 대해 “피에 물든 육친의 옷을 씻으면서 ‘일생동안 흘릴 눈물’을 흘린 그 사람이 청와대로 돌아온다.”면서 “부친의 위광(威光)은 있었을지라도 유수한 남성의 사회에서 뽑힌 여성이다. 상대 후보(문재인)보다 친일적이라 해도 만만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일본에서는 이만큼 울면서 커온 정치가가 없다.”고 썼습니다.
 
IT시대를 리드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이 이번 선거에서 여자 대통령까지 만들어 낸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경제적 역동성에 못지않게 정치적 역동성도 높이 평가될 계기가 될 것입니다. 여성 대통령 감을 정치적인 자산으로 키워 온 나라, 그런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 모두 자부심을 가져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 가운데 “살림은 여자가 잘 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칠고 허세적이고 부패한 것으로 인식되는 남성의 리더십에 대한 반감이자, 알뜰하고 깨끗한 여성적 리더십에 대한 갈구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성패(成敗)는 개인적 기질의 문제이기보다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청렴결백해도 주변이 혼탁하면 헛일입니다. 고위공직 인선에서 도덕성의 결함이 능력으로 평가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병역의혹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걸러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때이른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의도를 중시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모성의 포용력’은 우선적으로 야당에 대해서 발휘돼야 합니다. 야당의 반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형식이나 절차에 구애받지 말고 자주 만나서 인내를 갖고 설득해야 합니다. 대통령들의 실패는 모두 교만과 독선에서 시작됐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정치의 패러다임도 바뀌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실패해야 내가 이긴다는 정치는 잘못 쳐진 덫입니다. '상대도 잘 했지만 나는 더 잘 할 수 있다'는 플러스 정치를 하기 바랍니다. 그 네거티브 덫에 갇혀 상대 발목잡기 식의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았던 것이 여야의 모습이었습니다. 싸움을 하더라도 명분이 뚜렷한 큰 싸움만 하고, 국익이나 민생과 관련된 정책에선 초당적인 협력을 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민생을 볼모로 한 정치, 의사당을 뛰쳐나가는 '거리의 정치'가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민주당은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고 애석해 하지만 그런 정치로는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 18대 대선이 말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련 속에서 단련된 강인함과 여성의 섬세함이 조화를 이루는 정치력으로 5년 뒤 대한민국이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통일한국의 기틀을 세우는 데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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