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중소기업신문] 박근혜 정부의 조각(組閣)에서 필자가 가장 기대를 가졌던 것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의 신설과 재미동포 출신 IT기업가 김종훈 씨를 장관후보로 지명한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이공대 출신 대통령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미래 성장동력의 발굴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이라고 하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미래부는 박근혜정부 정식출범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일부 기능을 미래부 관할로 할 것이냐를 둘러싼 정부조직법 개정에 관한 여야 간 다툼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 와중에 청문회를 앞둔 김종훈 장관 후보자는 자신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자 자진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야당과 언론들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심하다 싶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해도 ‘선진국 시민’인 자신이 한국의 ‘후진적 정치’로부터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화를 내면서 등을 돌리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인신공격성 의혹 제기는 늘상 있는 것인데 그가 성실한 답변으로 대처할 수 없었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방통위의 비보도 부문(SO PP IPTV 위성방송)을 미래부로 가져가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미래성장동력이 발굴 된다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도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얘기는 보도기능도 아닌 분야가 미래부 관할로 들어가면 방송이 정부에 장악된다는 야당의 주장입니다.

야당이 주장하는 정부의 방송장악의 문제는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만으로도 차고 넘쳐 감당이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야당은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방송장악 사례라고 비난해온 종합편성 정책을 입안·집행한 게 방통위라는 사실을 잊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정부의 방송장악 여부는 방통위 기능의 관할 기관을 어디로 할 것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그것을 용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방송장악을 시도한다면 야당의 반대에 앞서 국민적인 저항에 부닥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장관을 불러다 따지기로 말하면 미래부 관할로 두는 게 국회로선 나을지도 모릅니다.

SO나 PP등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도 이의제기가 없는 이런 문제로 새 정부의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사안의 중요도(重要度) 비례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낭비적입니다. 새 정부에 대한 야당의 흠집내기라는 평가를 면키 어렵게 됐습니다.

김종훈 장관후보자의 자진사퇴가 아쉬운 것은 성공한 벤처 기업가인 그가 장관으로 기용됐다면 정부에 뭔가 유쾌하고 유익한 변화들이 연출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정부의 고위직 인선 및 인사청문회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눈에 띄는 비전의 소유자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의혹들로 인해 청문보고서 채택도 안 된 후보자가 "국가를 위해 충성할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들입니다.

김종훈 후보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참신한 발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가 미국식 합리와 실용, 과학에 바탕한 정책 아이디어로 국무회의에서 펼칠 '원맨쇼'는 국민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장관,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장관, 정책에 책임지는 장관 등 미국사회의 장관들의 품격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했습니다.

미래부의 업무구성 상 우리나라 대표적인 IT기업들과 얽히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 장관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업 무대가 미국이었던 그는 정실과 연고주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미래부 장관으로도 적격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걸었던 많은 기대 가운데 그가 부응한 것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딱 한가지입니다. 그는 대통령의 만류도 뿌리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사퇴에 화가 난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의 비협조를 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탁자를 쳤습니다.

‘평양감사도 하기 싫으면 안 한다’는 그의 기개는 가상합니다만 앉아 보지도 않고 그만둔 것은 가벼워 보입니다. ‘더 큰 비리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그랬다’, ‘원래 그런 인물이다’는 등 음해성 얘기들이 들립니다. 그런 의심을 받는다 해서 그가 너무 억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과학과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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