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3월은 12월 결산법인들이 주주총회를 여는 달입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꽃인 주식회사들이 한 해의 실적을 확정, 발표하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주주들의 승인을 얻는 절차이지요. 올해 상장사들이 주주들에게 줄 배당금 규모는 무려 9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주식은커녕 당장 도시가스가 끊길까 봐 생계비를 걱정하는 서민들에게 주식 보유는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부가 1970년대에 기업공개촉진법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우량기업에 대한 주주참여의 길을 열고 우리사주조합이나 공모주 청약으로 주식대중화의 물꼬를 튼 이후 이제 주주 수는 500만 명을 넘게 되었습니다. 대중 자본주의의 만개입니다. 상장기업은 1,786개로 투자가 1명이 평균 3개 회사의 주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장법인들의 주총은 올해도 어김없이 한날한시에 수백 개가 열렸습니다. ‘슈퍼 금요일’이라던가요?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줄이고 대주주가 의도하는 일사천리 식 의안 통과를 위해 담합한 듯한 모양새죠.
 
물론 주총은 보유 주식의 비율대로 의결권을 갖는 것이니 일제히 연다고 뭐라 할 순 없지만 이는 기업공시 제도가 지닌 의의를 정면으로 짓밟는 처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액주주들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주주총회에 동시에 참가하여 행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런 기업들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대하고 있습니다. 왜 국민의 돈을 산 주식으로 경영에 개입해 의결권을 행사하느냐는 볼멘 표정이죠. 그러나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보험 등 금융 업종을 이용해 계열기업을 지배하는 재벌들이 할 말은 아니죠.

소나기주총으로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를 원천봉쇄하는 악습도 문제지만 요즘 일부 기업이 신문에 내는 “XX기 결산공고‘를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결산이라면 마땅히 지난해의 실적인 순이익이나 순손실을 공시해야 할 텐데 이를 무시하고 이익잉여금 총액만을 밝힌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양심적인 기업들이 이익잉여금 항목 밑에 괄호를 열고 당기순이익이나 순손실을 표시합니다.

기업의 경영실적은 한 해의 이익의 규모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런 결산공고 행태로는 한 해의 경영 실적을 알 수 없죠. 굳이 당기순익을 알려면 전년도에 비해 이익잉여금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따져봐야 하죠. 소위 단위 기간 내의 이익 증가라는 유량(flow)개념은 없고 누적 이익의 저량(stock)개념만 있는 결산공고라는 것이죠.

지금 시대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입니다. 옛날에 잘 하던 일도 이제는 하지 않는 악화현상을 경제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분배의 규칙과 함께 부의 집적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합니다. 수억 원의 개런티를 지불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광고 스폰서가 되는 회사들이 결산공고에서 이익규모를 밝히지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기업은 경영실적으로 증시에서 평가받습니다. 경영실적은 기업의 공시 의무이자 투자자와 소비자들의 알 권리이고 기업에겐 최대의 광고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기야 상장법인은 아니지만 ‘국민의 방송’이라는 공기업인 한국방송공사에서도 기업공시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겨우 국회 속기록 등으로 2012년 총수입 1조5,680억 원, 비용 1조5,742억 원, 당기순손실 62억 원, 2011년 총수입 1조5,252억 원, 총비용 1조5,204억 원, 당기순이익 48억 원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 NHK는 결산실적과 인사정보, 급여정보 등 많은 것을 홈페이지에 띄워놓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죠. 그나마 3월20일과 21일 한국방송공사 홈페이지는 해커의 습격으로 마비되어 있더군요.

뭐든 숨기려는 이상한 정신상태가 우리나라를 풍미하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기업공시를 감독하는 금융기구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들에겐 시대정신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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