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중소기업신문] 일본인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南雲吉則)가 쓴 ‘1일1식’ 제목의 건강서를 지인이 보내 와 읽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작년 가을 출간된 이후 15만부 이상이 팔려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 있는 책입니다. 영양과잉 비만 질병은 풍요의 시대가 만든 그늘입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처방이 하루 한 끼 식사입니다.
 
성인병 예방이나 치료에 섭생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시대에서 배를 곯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저자의 처방은 원시적이고, 다소 과격해 보입니다. 그것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인지 모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체의 컨디션은 뱃속에서 ‘꼬르륵’소리가 날 때가 최상이라고 합니다. ‘회춘 호르몬’ ‘장수 호르몬’으로 불리는 시르투인(Sirtuin)호르몬은 체내의 모든 유전자들을 검색해서 손상된 곳을 회복시켜 주는 기능을 하는데 반드시 공복상태일 때만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공복상태가 되면 생존을 위해 체내의 모든 장기들이 제각기 엔진을 풀가동시킨다는 얘깁니다.

그런 상태를 가급적 길게 유지할수록 몸에 좋을 텐데, 필요 이상으로 포식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인 인간은 배가 고플 새도 없이 먹고 또 먹습니다. 배부른 사자가 눈앞의 토끼도 사냥하지 않는 것에 비기면 인간은 동물만도 못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인류의 17만년에 걸친 역사 가운데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포식환경을 맞은 것은 불과 100년 전부터의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전에는 하루 한두 끼가 정상이었다는 겁니다. 지금은 5월을 ‘계절의 여왕’, ‘초록의 계절’로 부르지만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도 ‘보릿고개’나 ‘초근목피’로 불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겐 수긍이 가는 얘기입니다.
 
인체가 오랜 굶주림의 환경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포식환경에 적응하려면 앞으로 수만 년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질병들은 환경부적응의 결과인데 그 중에서 응급처치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 각종 성인병, 특히 당뇨병이라고 말합니다.

당뇨병은 과잉 영양의 밀어내기 현상이고, 사냥할 필요가 없어진 인간에게서 사냥에 가장 필수적인 눈과 발의 기능이 퇴화하고 있는데, 그것이 당뇨병에 수반되는 눈의 실명과 발의 괴저라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포식지역의 인간은 멸종하고 배고픈 인간만 살아남을지도 모른다는 음울한 전망도 합니다만, 현대인 모두가 포식하는 것은 아니고, 포식을 하더라도 섭생과 운동으로 건강을 지켜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풍요의 사회라지만 우리의 주위에는 아직도 영양결핍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부분적인 현상이 과도하게 일반화됐다는 느낌도 주고, 선정적 제목으로 독자의 눈길을 끌려는 만들어진 베스트셀러의 가벼움도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던진 배고픔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우리가 잊어버린 시절, 허기진 눈으로 찾아 헤맸던 절실한 갈구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고인이 된 조각가 문신 씨(1923~1995)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1970년대 중반 귀국전을 열어 큰 환대를 받았습니다. 몇 달을 국내서 머물다가 파리로 돌아가기 직전 그를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가 한 말은 “호의호식했더니 몸만 불고 머리는 빈 것 같다”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위대한 예술가들은 지독한 허기 속에서 불후의 작품들을 남겼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이중섭이나 박수근도 그렇지만, 반 고흐의 작품들은 얼마나 남루한 환경에서 탄생된 것이었나요?

시르투인 호르몬의 작용인지는 몰라도 배고픔이 생각을 명징하게 해주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런 명징함이 없이 위대한 예술이나 위대한 과학적 발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다만 ‘포식자 멸종설’은 극단적인 예측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이 굶주림에 대한 허황된 예찬, 빈곤문제에 대한 방관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배고픔의 문제는 과도한 포식에 대한 경각심을 주자는 것이나, 배부름이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굶주림의 해결이 여전히 인류가 풀어야 할 과제인 것도 분명합니다. 북녘의 굶주린 동포, 2,700만 명은 숙명의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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