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80 대 20’, ‘99% 대 1%’, ‘갑과 을’처럼 정치인들은 구호를 내거는 정치를 합니다. 사안을 단순화하면 충격은 강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1987년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처음 도입 되었는데 그간 뭘 하고 다녔는지 허송세월하다가 희생양이 필요해진 모양입니다. 대기업의 하도급 관행, 일감 몰아주기 등 진작 해결했어야 할 문제들을 들고 나섭니다. 이미 현대차 그룹의 경우, 정의선 씨가 2001년 불과 수십억 원으로 차린 글로비스에 그룹의 물류 일감을 몰아주어 막대한 부를 축적시켰고 이 회사를 상장하여 천문학적인 이득을 챙겨 후계구도 완성에 기여했습니다. 작년 매출액이 11조7,000억 원입니다. 과거에도 사회통합위원회나 동반성장위원회가 있었고 국회가 생긴 지는 60년이 넘었으니 요즘 새삼스런 갑을 논쟁은 서글프게만 보입니다.

이런 뒤늦은 논쟁은 모든 전ㆍ현직 국회의원들이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공정한 분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게으른 우리 국회는 자신들을 갑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니 국민이 갑이고 자신들은 을이라고 생각해야 하건만 이들은 국회의원이 존재해야 국민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선거 때나 돼야 표를 얻으려고 갖은 감언이설을 펼치죠.
 
그래서 나는 정치개혁의 출발점이 국회가 되어야 한다면서 국회의원 숫자를 300명에서 200명으로 줄이자고 한 안철수 의원이 큰 지지를 받은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제도언론들이 그의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외면하며 평가절하했지만 방향은 올바른 것입니다.

왜냐고요? 여론조사에서 국회는 항상 국민들의 불만 대상 1위이기 때문이죠. 지난 6월 10~13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국회가 잘하고 있다가 15%, 잘못한다가 65%였습니다. 일하는 국회상, 늘 굴러가는 국회와는 너무나 다른 별세계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승무원, 버스 운전기사, 택시 운전기사, 재래시장에서 일하는 국민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일을 시작합니다. 국회도 새벽부터 일해서 산적한 안건들을 심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싸움질로 지새다가도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는 똘똘 뭉쳐서 단 하루 의원을 해도 65세부터 매월 120만원을 수령하는 연금을 만들었으니 가족과 일가친지 말고는 어느 국민들이 좋아하겠습니까? 믿기 어렵지만 95%의 국민이 국회를 불신한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2012년 사회통합위원회의 조사보고에서 국회를 신뢰한다는 응답률이 5.6%에 그쳤습니다. 최악의 불신국회입니다.

전에는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던 민주당이 최근엔 ‘을의 정당’이라고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을 살리기 만민공동회’라는 역사책에서 꺼낸 19세기적 슬로건을 내건 집회도 열었습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야당이므로 가상은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에 가장 시급한 것은 있는 자산을 이리저리 쪼갤 논의 보다 이를 빨리 키우는 데 집중해야 청년실업도 해결하고 고용률 70% 달성도 가능해져서 복지예산도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국회는 공정한 분배를 위해 투명해져야 할 경제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전력이 있습니다. 국회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5만원 고액권 발행에 찬성했습니다. 그 결과 저금리 시대답게 5만원 권종이 발행되자마자 퇴장되고 있죠. 싼 금리에 신분을 노출하고 저금하느니 돈을 집에 쌓아두자는 것이죠. 신용카드 사용건수가 1인당 세계 최고수준이고 각종 방식의 온라인 송금이 정착한 신용경제 시대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이유로 현찰 거래가 필요하다고 고액권을 발행하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성형외과에서 현금을 요구하여 수십억 원을 벽장에 쌓아놓고, 마늘밭에 110억 원을 파묻으며 백화점 물류 창고에서 10억 원이 적발될 환경을 조성한 것이죠. 부패할 수밖에 없는 지하경제의 온상을 만들면서 어느 입으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고액권 발행은 절대로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국회가 결코 을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의식주 중 아직도 해결 못한 주택문제에서도 국회는 을의 편이 아닙니다. 유례없는 부동산의 침체 속에서 전세, 전세와 월세가 결합해 집주인이 꿩 먹고 알 먹는 반(半)전세, 그리고 치명적인 월세가 치솟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죠. 최소한 월세의 일반화를 막지 못하겠으면 세수라도 확보해야죠. 월세계약서로 전입신고를 하면 국세청에 자동통보가 되어 과세하는 제도를 도입해 가난한 을의 돈이 부자인 갑의 탈세로 통하는 길을 막아야 합니다.
 
아마도 갑이라는 국회의 가장 큰 횡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일 것입니다. 국민들의 뜻도 물어보지 않고 밀어붙인 행정도시는 비효율과 낭비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2,000여만 평의 옥토를 파헤쳐 딴살림을 차린 대가가 연간 4조7,000억 원이라고 안전행정부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의뢰해 추산한 결과 드러났답니다. 제 돈으로 지으라면 이렇게 낭비하겠습니까? 국회가 갑이고, 국민은 주체가 아닌 을이라는 확고부동한 역사적 물증입니다.

최근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남한과 북한의 국력 차이가 30~80배에 달하니 남한이 갑이고 북한이 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비유는 일견 흥미롭지만 최고의 가치인 국방 분야에서 북한은 핵을 가졌고 남한은 핵이 없으니 북한이 일방적인 을이 결코 아닙니다.

지난달 라오스에서 붙잡혀 강제 송환된 탈북 청소년 9명의 문제는 결국 라오스 대사의 경질을 불러왔고 북한인권법의 필요성을 다시 환기시켰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참상을 고려하고 탈북자나 지원 단체들에게 예산을 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북한인권법은 한통속이 된 여야의 외면 속에 표류 중입니다. ‘이번 회기에는 꼭’ 이라고 내건 게 벌써 여러 번이죠.

그런 북한인권법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북한이 을이라서 통과시키지 않고 있는 건가요? 경제력의 차이로 ‘갑을’을 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 내부는 3대 세습 철권독재 지배계급인 갑과 대다수 민중인 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당이 을의 정당이라고 주장한다면 북쪽의 을인 민중들에게도 이중 잣대를 적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 국회는 여러 가지로 갑의 몰골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게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러니 을의 나라가 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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