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남녀 간의 아름다운 키스 장면을 꼽으라면 프랑스의 사진작가인 로베르 두아노(1912~1994)의 1950년 작 ‘파리시청 앞의 키스’를 들 수 있겠습니다. 파리의 자유분방한 생활양식을 닮은 자연스런 애정표현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복사판은 세계에서 50만 장 가까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맨티스트들이 우연한 포착으로 믿고 싶었던 그 사진은 나중에 연출로 드러났죠. 원작 사진을 경매에서 15만5,000유로에 판 사진 속 여주인공 프랑스와즈 보르네 부인은 “사진은 연출이었지만 키스만은 진실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인인 자크 까르토와 함께 하지는 못한 채 각자 다른 길로 걸어갔습니다.

보다 관능적인 키스 그림은 여성편력이 심하여 14명 이상의 자녀를 남겼던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1862~1918)의 ‘키스’를 꼽을 수 있죠. 자신이 그린 모델과는 잠자리를 꼭 같이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보석세공인의 아들답게 현란하기 이를 데 없는 남녀의 의상으로 경탄을 자아냈는데 이들의 키스 삼매경은 몽환적입니다.

이런 키스 장면이 생각나는 것은 점점 담대해지고 있는 지하철 풍경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지하철은 40년이 넘은 대표적인 공공장소가 되었건만 사적 공간으로 착각하는 남녀노소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토해 놓고도 미안한 기색이 하나 없이 그대로 내리는 젊은이들이 있고 더 토하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자도 있었습니다. 또 자기 사무실이라도 되는 양다리를 옆으로 길게 누이고 큰 목소리로 시시콜콜한 사업 이야기를 하는 중년 남자들도 있고 며느리에게 살림을 지시하는 억센 억양의 시어머니 목소리도 들립니다.

지하철 당국의 캠페인과 시민들의 협조로 요즘엔 휴대전화의 벨 소리는 매우 드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청각공해는 안내방송의 절제 속에서 잡상들의 외침이나 찬송가를 카세트로 틀어놓고 구걸하는 시각장애인, 기독교 전도사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각공해나 후각공해는 늘고 있습니다. 하루는 퇴근시간대에 2호선을 삼성역에서 탔는데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구운 오징어 한 마리를 꺼내더니 질겅질겅 씹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오징어 냄새가 승객이 빽빽한 차 안에 진동했습니다. 그는 대림역인가 어디선가 내렸습니다. 지하철을 식당으로 착각하여 햄버거나 빵, 도너츠, 커피 등 식음료의 냄새를 풍기는 것도 후각공해입니다.

얼마 전 각종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노량진 역 승강장에서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두 남녀가 입술을 더듬으면서 부둥켜안고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좋으면 빨리 결혼하지그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 전 평일에는 의정부 행 전철을 탔습니다. 오전 시간이었는데 젊은 남녀 두 명이 금세 키스라도 할 듯이 서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꼭 붙어 있었습니다. 여자는 적극적으로 남자의 팔을 자신의 허리를 좀 더 휘감아 조여 주도록 남자의 팔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얼굴이 벌게져서 머뭇머뭇했습니다. 공과 사는 물론이고 밤과 낮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말 같지 않은 애정표현에 도취한 상태였습니다. 이들은 얼마 뒤 전동차가 사립대들이 있는 정거장에 진입할 때가 돼서야 떨어지더니 부랴부랴 내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위에는 코레일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죠. “지나친 신체접촉은 모두를 불쾌하게 합니다. 전동차에서 지나친 애정표현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의도적인 신체접촉은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전동차 안에서 누가 볼세라 얼른 여자 친구의 볼에다 입을 대었다가 떼는 젊은 남자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지하철의 시각공해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철의 성폭력은 남의 신체를 무단으로 만지고 찍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공연히 보여주는 음란성 행위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적 공간에서나 해야 할 짓거리들이 공공연하게 연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내버스에 CCTV가 설치된 것처럼 지하철 당국은 모든 지하철 차량 내부에도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여 음란한 행동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고 그런 인간들을 적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고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키스는 사랑이 고도로 진화하는 표현입니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허리를 감는 동작에서부터 사회에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져야 키스 장면도 관용될 수 있죠. 아직 우리 사회의 감각으로는 이른 것입니다. 그러니 때와 장소를 잘 가려야 합니다.

몰지각한 일부 젊은이들은 길거리든 어디든 생각나면 아무 데서나 키스하는 저질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지하철 차량 내부가 드라마의 세트장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요? 하기야 지난 3월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심재철 의원처럼 본회의장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스마트폰으로 버젓이 ‘누드검색’을 하는 사람은 또 뭘까요? 어디까지 갈지 모를 세태이니 도덕재무장이 정말 필요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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