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의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주관한 해외역사문화탐방단의 일원으로 지난달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를 다녀왔습니다.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과 러시아 간에 영토분쟁 대상지인 북방 4도를 통해서 독도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취지였습니다.
 
지도상에서 북방4도를 볼 적마다 나는 그 섬들, 즉 하보마이(齒舞) 시고탄(色丹) 쿠나시리(國後) 에토로프(拓捉)가 홋카이도와 너무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큰 땅덩이를 갖고 있는 러시아가 홋카이도 턱 밑에 있는 4개 섬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탐욕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홋카이도 동북단 노쯔게(野付)반도에서 쿠나시리 섬은 불과 16km의 거리로 빤히 바라다보였습니다. 네무로(根室)반도에서 하보마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생각하면 일본인들의 북방 4도에 관한 애착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네 개 섬 중 쿠나시리와 에토로프 섬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쿠나시리의 면적은 1,499㎢로 605㎢인 서울의 2.5배, 에도로프는 3,184㎢로 5배 크기였습니다. 4개 섬에 사는 러시아 사람만도 작년 말 현재 1만7,291명이나 됐습니다. 러시아가 쉽게 내주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알고 나서 더욱 의아하게 생각됐던 것은 한일 간의 독도문제나 일중 간의 조어도(釣魚島·일본명 센가쿠제도) 분쟁과는 달리 이곳은 분쟁지역 같지 않게 조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이 내린 홋카이도 신치도세(新千歲) 공항의 안내표시는 한자 영어 한글 다음에 러시아어로 돼 있었습니다.

최동북단 시레토코(知床)에서 네무로 반도에 이르는 도로 변에 ‘북방영토는 일본 땅’이라는 선전간판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지만, 네무로 시내의 도로 표지판은 러시아어로 병기돼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보마이가 바라다 보이는 네무로 반도 끝의 북방영토 기념관 안내판에도 영어와 러시아어가 병기돼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독도 안내판에 일어가 병기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의 대강은 이러했습니다.

 

‘1855년 일러 통호(通好)조약 체결 때 쿠릴 열도 중 에토로프 이남의 4개 섬을 일본영토로, 이북을 러시아 영토로 했다. 1875년에 러시아가 쿠릴열도 전체를 일본에 주고, 일본은 일본인과 러시아 인이 혼주(混住)하던 사할린을 러시아에 양보하는 맞바꾸기가 이뤄졌다. 1905년 일러전쟁 승리 후 포츠머스조약으로 남 사할린을 일본이 차지했다.(이 때 독도도 자국령으로 편입). 1945년 8월9일 소련이 2차세계대전 대일전 참전으로 점령할 때까지 4개 섬은 러시아의 영토가 된 적이 없었다.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는 독일 처리문제를 협의, 양국은 유럽에서 영토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대서양헌장을 발표했고, 소련의 스탈린도 나중에 이 헌장에 서명했다.

1943년 루즈벨트, 처칠, 중국의 장개석 총통 등 3인은 전후 일본처리 문제를 다룬 카이로 선언에서 태평양 제도, 만주, 대만 및 팽호도, 한국, 그밖에 일본이 ‘폭력 및 탐욕으로 약탈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을 축출키로 했다.

1945년 2월 미영소 3거두 사이에 체결된 얄타협정에서 일본 처리 문제와 관련, 사할린 남부와 인접 도서 및 쿠릴 열도를 소련이 차지하기로 했다. 그해 7월 포츠담 선언에서는 일본의 주권은 혼슈(本州), 홋카이도, 큐슈(九州), 시고쿠(四國)와 우리가 결정하는 제 소도(小島)에 국한시키기로 했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이상의 과정에서 일본은 4개 섬이 1855년 이후 2차세계대전 종전 이전까지는 일본 영토였다는 것, 소련이 영토 확장을 꾀하지 않는다는 대서양 헌장의 서명국이라는 점, 카이로 선언이나 포츠담 선언에서 쿠릴열도 처리 문제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 카이로 선언에서 규정된 ‘일본이 폭력 및 탐욕으로 약탈한 지역’에 4개 섬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근거로 러시아의 점령은 ‘법과 정의’에 비추어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4개 섬의 동식물 분포가 홋카이도와 같지, 그 이북의 쿠릴 섬들과 다르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는 것에서 일본의 용의주도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최대 대항 논리는 얄타협정입니다. 북방 4도가 쿠릴 열도의 일부분인 이상 쿠릴 열도를 소련에 반환토록 한 얄타협정에 따라 자국령인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입니다. ‘힘의 논리’인 셈입니다.
 
1955년 일소협상이 시작돼 이듬해 일소공동선언이 채택됐는데, 면적이 작은 하보마이와 시고탄을 먼저 돌려주고 쿠나시리와 에토로프 반환문제는 평화협정 체결 후에 논의하자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1960년 미일안보조약 체결로 일소관계가 경화되자 소련은 주일미군이 철수하기 전에는 하보마이와 시고탄도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협상은 냉전체제의 영향을 받아 우여곡절을 겪었고, 일본 내에서도 작은 섬 두 개라도 먼저 돌려받자는 온건파와, 4개 섬을 일괄 반환 받아야 한다는 강경파의 대립이 있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 협상 부진의 더 큰 원인은 일본 내의 강온파 대립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 아베 정부는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재개하자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본의 4개 섬의 영유권 실체는 그곳에 묻힌 일본인의 무덤들로 인해 명확히 입증됩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일본인 후손들에게 여권이 아니라 신분증만으로 상륙해 성묘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4도의 러시아 주민 중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홋카이도로 후송해서 치료를 받게 합니다. 양국 간에는 학술교류 등 각종 인적교류도 활발합니다. 독도나 센카쿠에 비할 때 평화로운 분쟁지역 같았습니다.

우리가 북방 4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독도나 센가쿠 문제를 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어떤 정부도 북방영토를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선 독도나 센가쿠에서 양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과의 자존심 경쟁으로 인해 센카쿠가 더 부각되고 있지만 3개 영토분쟁 지역 중에서 일본의 자존심과 실리가 크게 걸린 곳은 명백하게 자국령이었던 북방4도입니다. 러시아로선 크게 자존심 상할 것도 없이 일본이 대가를 치른다면 돌려줄 수도 있는 땅입니다. 소련 해체 당시 일본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을 벌였더라면 돌려받을 수도 있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4개 분쟁 당사국 중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나라는 한국이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면적 크기가 세계 1,3위로, 한반도의 50배 정도 되는 큰 나라고, 일본도 한반도의 1.5배가 넘는 나라입니다. 홋카이도 면적만도 거의 남한만 한데 인구는 600만 명밖에 안 됐습니다. 독도를 지켜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이 러시아에 대해 영토확장을 추구하지 않기로 한 대서양헌장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독도에 관한 한 자가당착입니다. 그 말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상태에서 일러전쟁 승리를 기화로 제멋대로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시킨 일본에 대해 우리가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체 못하게 큰 땅을 가진 나라들이 지도에 나오지도 않는 섬을 놓고 싸우는 모습이 알량하게 느껴졌습니다. “있는 것들이 더한다”는 말은 이 경우를 두고 한 말일 듯합니다. 북방 4도나 센카쿠 섬이 누구의 땅이 되든, 독도만큼은 반드시 한국 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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