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땅을 쉽게 팔지 못합니다. 나이도 먹었으니 한 뙈기 팔아 아내 좋은 옷도 사주고 함께 여행도 하고 싶지만 정작 작자가 나와 팔라고 하면 그게 팔겠다는 건지 아닌지 비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해 불발로 끝납니다. 포한(抱恨)으로 갖은 고생 끝에 마련했으니 땅이란 농민들에게 최근 85세로 작고한 ‘워낭소리’의 최원균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한 소만큼이나 재물을 넘어서는 인격체일지도 모릅니다.
 
땅은 인간을 인물과 추억으로 엮는 장소이자 인생의 무대입니다. 밀양 송전선 공사를 놓고 한국전력과 대립하는 늙은 주민들이 외세의 입김을 좀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곳에 뼈를 묻겠다”며 천막 안에 관 구덩이처럼 땅을 파놓은 심리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님비 현상으로 설명할 것도 없이 국가적으로는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농사지으면서 머리 위를 지나가는 특고압선을 보며 지가 하락과 각종 암을 걱정해야 하는 혐오시설임에 틀림없습니다.
 
신고리 원전 3, 4호기의 완공에 맞춰 북경남까지 90.5킬로미터에 필요한 161기의 송전탑 중 109기는 이미 완공되었으나 밀양시 관내 4개면 52기가 세워지지 못한 실정입니다. 송전탑 건설 계획은 2007년 노무현 정권 말기에 확정되었죠. 한전은 이 송전탑들을 세워야 내년 여름에 정전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주민들은 76만5,000볼트라는 초고압선에 높이 120미터의 초대형 송전탑을 지중화 하거나 우회하라고 맞섭니다. 반핵·환경 활동가들은 비리 원전의 부품은 제대로 바꾸어 놓았느냐고 힐책합니다. 최근 국회와 주민 등에서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한 9인 전문가회의는 우회나 지중화가 불가능하다고 다수결로 결론 내렸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개천절 경축사에서 “우리나라 사회갈등 수준이 OECD 국가 가운데 2위에 이르고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다. 정부는 소통 행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해소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지만 밀양도 직접 방문했던 그가 초대형 이슈로 부상한 송전선 갈등에 어떤 성공적인 해법을 다시 제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지난 8월 한 심포지엄에서 삼성경제연구소의 박 준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지수가 OECD 27개국 중 인종분쟁이 있는 터키를 빼면 최악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소득 불평등 척도인 지니 계수, 민주주의 발전 수준,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 측정에 근거하여 연구한 결과, 수입격차가 낮고, 고도로 발전된 민주적 제도가 있으며, 갈등 해결능력이 있는 정부를 가진 나라가 갈등지수가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소득 격차와 민주주의 정도가 OECD 국가 중 중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갈등 해결 능력이 모자라서 사회갈등지수가 높다는 것입니다. 박 연구원은 갈등 해결능력의 주체를 정부라고 보았지만 사실 정부란 국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 국가를 관리하는 것이고 보면 사회 통합은커녕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국회와 정치권에게 갈등의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정치학 교수 출신인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정치인은 선거로 말한다”고 했습니다만 그건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죠. 정치인은 똑똑하고 착한 정치로 말해야 합니다.
 
지금 밀양 송전탑을 향해 달려드는 외부 세력에 대해 밀양의 원로들은 개입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곧 정당해산 심사에 들어갈지도 모를 좌익 통진당, 반핵 세력들이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며 지방자치를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에서건 잘난 척하는 정치권과 국회는 주민들의 불만을 재울 조치를 시급히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쟁점은 거의 정치화하여 여야, 좌우익의 극한투쟁으로 치닫고 있죠. ‘대화록을 삭제했다- 안 했다’, ‘혼외자가 있다- 없다’, ‘사생활이다- 찍어내기다’로 눈에 불을 켜고 싸웁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더 극렬하게 치고받으니 국민들도 오염되는 게 아닌가요. 정치권을 보면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는지 알 만합니다. 지혜를 잃은 천박한 분열 정치의 DNA가 흐르고 있는 것이죠.
 
밀양 송전탑은 땅과 터전을 소중히 지키려는 주민들의 정서적인 문제를 풀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보상금이 한 세대에 400만 원이라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합니다. 신고리 원전 3, 4호기의 발전용량이 대략 280만 킬로와트이니 이를 완전 가동한다고 치면 하루에 6,720만 킬로와트時(kwh)가 생산됩니다. 1킬로와트시를 가령 100 원에 판다고 하면 하루 67억 원, 100일이면 6,700억 원입니다. 부안 방사능폐기장이 극렬한 주민 시위로 좌절되자 정부는 파격적인 지원을 내걸어 경주시 선정에 성공했습니다. 선제적인 화끈한 해결책은 손해 보는 지역의 경제적 보상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오르는 전기요금은 국민 전체가 분담해야겠지요. ‘7년 동안 뭐 했냐’고 질책할 것이 아니라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 심의에 나서는 늑장 국회의원들이 여직껏 비싼 세비 받으며 뭘 하다가 꿈지럭대는지 자문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먹을거리를 앞에 둔 들짐승들처럼 매일 뉴스시간마다 갈등을 중계방송하다시피 하는 소모전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은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회 갈등의 비용은 1년에 82조 ~246조 원으로 이런 갈등을 OECD 중간 수준으로만 완화해도 1인당 GDP가 7~21퍼센트 늘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정치권은 창조경제라는 나팔을 불고 기업들이 이에 화답하는 모양새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선진화와 경제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일거에 잡는 것은 창조경제보다 먼저 갈등을 최소화하여 부분과 전체, 지방과 전국, 모두가 윈윈하는 창조적 사회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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