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퍼 최경주(43) 선수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입니다만 나는 그의 출생지가 전남 완도라는 사실로 인해 한국에서도 골프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던 그런 외진 섬 동네에서 어떻게 세계적 선수가 나올 수 있었을까를 늘 궁금하게 여기던 터였습니다.

그가 지난 17일 관훈클럽의 관훈초대석 손님으로 초청돼 자신의 골프인생을 얘기했습니다. 그동안 정치인 또는 관료 위주였던 관훈초대석 연사가 최근 들어 다양해지고는 있지만 스포츠스타 연사로는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연설은 어느 정치인의 연설보다 흥미있고, 진솔했고, 교훈적이기도 했습니다.

얘기를 듣고 나니 그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우연과 필연의 오묘한 교호작용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김과 미역밖에 모르던 동네에서 선장이 되라는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완도 수산고등학교에 진학한 그였습니다. 중학교 때 역도를 했던 그는 고교 입학 후 체육교사가 역도할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교사가 학생들을 두 줄로 세우더랍니다. 한 줄은 역도 줄이었는데 자기 줄은 골프 줄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줄이 중요한가 봅니다”라고 말해 그는 청중을 웃겼습니다.
 
그 무렵 완도에서 처음 골프연습장이 세워졌는데 그와 친구는 "닭장일 거야" “꿩 사육장일 거야”라고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연습장에서 그가 난생 처음 휘두른 7번 아이언에 공이 맞아 나갈 때 팔 끝으로 전달되던 감촉은 ‘몸에서 번개탄이 타는 듯한’ 전율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골프에 인생을 걸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아마 그의 골프 인생에서 두 번째 우연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이 아니고선 첫 타에 그런 느낌을 맛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의 매너는 우연과 필연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것 같기도 했습니다. PGA진출 초기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던 그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을 못하고 “댕큐”를 연발한 데서 ‘매너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된 듯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채를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가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골프가방에 태극기를 붙이고 난 뒤 행동이 조심스러워졌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빼면 그의 인생은 필연의 연속처럼 들렸습니다.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완도에서 골프를 시작할 때 골프에 대해 안다는 사람들이 고작 하는 말은 ‘부모 등골을 빼먹는 운동’이라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모에게 신세지지 않기 위해 연습장에서 공을 닦아주고, 필드에서 공을 주워 팔아 학비를 벌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대충 대충’이라면서 골프에서 양손으로 골프채를 맞잡는 그립(Grip) 자세의 중요성을 등반가의 로프 고리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사람이 골프와 만나는 최초의 접점인 그립은 골프의 생명인데 얼마나 대충대충 잡는 경우가 많냐고 했습니다. 등반가가 로프의 고리가 풀려 떨어져 죽었다면 고리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냐는 겁니다.

TV중계에서 보았던 신들린 것처럼 홀에 빨려들어가던 퍼팅의 비결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경기의 중요한 고비에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공의 라인이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간절한 기도였음을 알게 합니다. 더러는 상대 선수가 실수해주기를 빌기도 했는데 그것도 들어주셨다고 말해 또 한 번 청중을 웃겼습니다.

골프는 선수 자신이 심판인 운동입니다. 1998년 브리티시 오픈 때 자신이 친 공이 러프에 들어갔는데 캐디가 공을 찾았다고 신호를 보내 가보았더니 연습라운드 때 잃어버린 공이어서 로스트를 선언, 그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했던 얘기도 들려줬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는 골프가 한국사회에서 비리의 온상처럼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습니다. 골프를 같이 친 것은 물론 골프장 근처에서 밥을 먹은 것조차 범죄시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된 원인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맨몸에 의지 하나로 PGA LPGA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이 그동안 벌어들인 외화상금만도 2억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의 프로골프는 외화가득률 100%의 효자 산업입니다. PGA는 최경주 선수에 버금갈 선수가 아직 안 보이지만 LPGA대회는 한국선수들의 독무대여서 재미가 없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 국가브랜드의 하나가 됐습니다. 이처럼 높아진 한국 프로골프의 국제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골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개탄으로 들렸습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에 대한 그의 대응은 기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습니다. 그는 기사의 제목은 읽지만 기사의 본문,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은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자나 기사에 대한 인간적인 앙금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쓸 때 취재 대상에 대해 공평해지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골프는 비교적 연령의 한계가 더디 오는 운동이라곤 해도 40대를 넘으면 전성기는 지났다고 하겠습니다. PGA 8회 우승상금만도 300억원쯤 되는데 그는 이를 바탕으로 최경주재단을 설립, 스포츠 꿈나무 육성과 한국의 스포츠를 세계에 알리는 스포츠문화센터 건립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스포츠 꿈나무 사업의 기본 구상은 신선했습니다. ‘어린이들을 놀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피곤을 몰라 밤늦게 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된다는 겁니다. 학원에 보내 지치게 할 게 아니라 친구들과 땀 흘리며 놀게 해야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란다는 얘기입니다.

‘애들이 자지 않으면 나도 자지 않는다. 애들이 있을 때는 TV를 켜지 않는다.’는 철칙을 집에서 지켜왔다는 그였습니다. 그의 말을 어떻게 운동선수를 양성하기 위한 말로만 들어 넘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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