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김영환

최근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 산하의 지하철과 도시철도 등 8개 공기업들이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로 2012년에 4,129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면서 노인이 급증하는 만큼 무료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올리거나 반값을 물리거나 하는 등의 무료 축소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료화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울지하철은 2012년 2,009억7,600만원의 노인 무임승차로 손실이 2010년보다 22퍼센트가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하철의 교통 약자에 대한 사회적 보장기능을 생각한다면 쉽게 처리할 일은 아닙니다.
 
많은 노인들은 어차피 빈 공간으로 달리는 지하철에 몇 명이 더 탄다고 무슨 손해가 날 게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기 쉽지만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따라 러시아워에 경로석이 넘쳐 일반석마저 떼로 점령하여 출퇴근에 지친 젊은 직장인들이 손잡이에 몸을 맡긴 채 눈감고 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 편한 광경이 아닙니다. 노인무임승차 인원이 연간 1억~2억 명이라니 형편이 나은 사람은 좀 내도 된다는 선별적 복지 의견도 노인들 사이에서조차 나옵니다.
 
그러나 노인단체들의 주장처럼 노인들의 무임승차는 지금 모든 것이 풍요로운 젊은 세대와는 달리 불철주야 놀지 않고 오늘의 국부를 이루어놓은데 대한 당연한 보상인 만큼 이를 없앤다면 파렴치한 정책이라는 공격을 받기 십상입니다. 노인들에게 무료 지하철을 제공하는 나라가 드물다고 강변하는 철도공사 측은 왜 연간 3,000억~4,000억 원의 적자를 내면서 연간 수입이 2억 원에 육박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다른 나라에 유례가 드문 열차 요금을 받지 않는지 그런 행태부터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공기업의 가증스런 몰골입니다.
 
노인들이 지하철을 무료로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1980년대 정권이 자신들이 표를 얻기 위한 票플리즘으로 내건 것을 그대로 이어 오다가 이제 죽는 소리 치도록 하는 게 아닌가요? 지하철 무료는 노인만이 아닙니다. 노인 무료승차와 환승할인 혜택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 용인경전철 에버라인에도 국가유공자와 5·18유공자들은 무료라고 써있습니다.
 
무상복지를 유료로 전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 법을 바꾸어야 할 국회의원과 서울시가 입술을 깨물고 깨달아야 할 차례입니다. 길게 갈 것도 없이 2012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학교 무상급식을 선별적으로 하자고 주민투표에 부쳤을 때 가장 결사반대한 것이 민주당 세력이었죠. “아이들의 밥그릇을 볼모로 삼아 대선가도를 위한 정치투쟁에 나섰다”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일 작정이냐”는 당내외의 비난도 받았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더니 학생 중 누가 공짜 밥을 먹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무차별하게 빈부를 안 따지는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니 무료 지하철은 입도 뻥긋 못하고 공기업에만 기대는 모습입니다. 복지하면 이가 갈리는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무상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친회비’라는 유령 조직의 회비 명목으로 어린 학생들에게서 거둬간 돈을 교육부는 이제 반환해줘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전쟁 직후 학교에 들어간 나는 사친회비를 못 내 자주 선생님에게 들볶였던 기억이 납니다. 정부가 전경을 죽인 폭도들에게도 민주화라며 별의별 보상을 다하면서 그런 것은 왜 복지라는 이름으로 보상하지 못하는지 안타깝죠.
 
편리할 때만 끌어다 쓰는 좌파 특유의 이중 잣대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무상보육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현수막을 거리 곳곳에 걸어놓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복지의 재원을 세금으로 대는 기업들은 괴롭히고 있습니다. 요즘 지하철에서 앉지도 못하는 60대 노인 세대와 곧 60대가 될 준(准) 노인세대들이 힘을 합쳐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무상지하철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표를 들고 대들면 어떻게 나올까요?
 
늙기도 서러운데 겨우 한 달에 몇 만원 될까 말까 한 지하철 무료 탑승 혜택을 빼앗는다면 아들과 함께 사는 시아버지는 살림하는 며느리와 얼굴을 맞대야 할 시간이 더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래 좋다. 지하철 돈 내고 탈게. 대신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이 약속한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을 내놔라” 라고 하면 어쩔 텐가요?
 
노인들이 자신과 사회를 위해 각종 모임이나 등산, 재능 기부 활동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의료비 부담을 줄여서 건강보험의 재정에 기여하는 면은 국가에게 흑자요인입니까 적자요인입니까? 매스컴들은 노인들이 단체로 무임승차하여 용문이나 춘천에 간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이 소비하면서 내는 식음료의 부가가치세는 국가의 세수를 증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영·유아의 무상 복지는 저출산을 막을 인구증가 대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건만 이름뿐인 ‘고운맘’ 카드로는 아기를 낳을 때까지 필요한 각종 검사와 예방접종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는 겨우 50만 원의 의료 구매권입니다. 영·유아에게 겨우 월 20만 원 선의 보육료만 지원하여 국가가 제구실을 못하는 판에 일단 학교에 들어가면 빈부를 안 가리고 무료로 점심에다 학용품까지 준다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사치죠. 이런 무개념의 정책이 횡행하는 한 복지를 둘러싼 갈등은 지속될 것이고 복지를 지속 불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아직은 더 급한 복지에 쓸 돈이 보편적 복지에 쓸 돈보다 더 시급하다는 말입니다.
 
무료급식이든 무료보육이든 무료지하철이든 복지정책을 추구하려면 원칙을 가지고 하라는 말입니다. 기존의 복지를 줄이려면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선별적 복지의 대원칙부터 세워놓으라는 말입니다. 부자들은 돈을 내라고요. 아이들에게 밥 줄 돈이 모자라 국가와 지자체가 싸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부자들에게는 “수익자 부담이다. 돈 내기 싫으면 도시락 갖고 다녀라”라고 당연히 말할 수 있어야죠. 입에 발린 말로 몇 달을 못 갈 복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 후손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을 일관되게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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