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언제나 희망입니다. 닷새 뒤면 갑오년 말띠의 해 2014년입니다. 힘찬 도약을 상징하는 말처럼 개인도 국가도 힘차게 도약하는 새해이기를 빕니다.
 
120년 전 갑오년의 뼈아픈 역사로 인해 그런 염원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그해 조선왕조의 숨넘어가는 헐떡임은 거칠기만 했습니다. 동학혁명과 갑오경장, 동학혁명이 도화선이 된 청일전쟁, 이 역사의 격변이 그해에 삼각파도처럼 조선반도를 덮쳤습니다.

그해 3월에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혁명은 12월 혁명군의 우두머리 전봉준이 체포돼 이듬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으로써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습니다. 혁명군이 요구한 폐정개혁은 조정에 의해 주체적으로 수렴되지 못했고, 일제의 강압으로 시행된 것이 갑오경장이었습니다.
 
그보다 10년 전인 1884년 개화파 김옥균이 주도한 갑신정변과 마찬가지로 동학혁명이나 갑오경장도 부패한 왕조를 개혁해서 국권상실을 막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던 갑신정변과 갑오경장은 외세 의존형 개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고, 기층 농민들이 궐기한 동학혁명에서도 조정은 외세를 불러들여 망국을 재촉했을 뿐입니다.

조선의 운명은 그같은 내부적인 여건보다도 청일전쟁이라는 국제 정세에 더 영향을 받았습니다. 1894년 7월부터 1895년 4월까지 계속된 청일전쟁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아시아의 신구 세력 간의 패권전쟁이었고, 일본은 승전국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습니다.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下關)조약의 제 1조는 ‘청은 조선이 완전 독립국임을 승인하고, 청에 대한 조선의 조공을 완전 폐지한다.’였습니다. 요동반도 및 대만 등의 할양과 전쟁배상금 같은 직접적인 전리품 확보는 부차적인 것이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한 전쟁으로 포장했으나 15년 뒤 마각은 드러났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으로부터 10년 뒤인 1904년에 일으킨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해 조선지배의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했고, 1910년 조선을 병탄함으로써 청일전쟁 때 미뤄뒀던 진짜 전리품을 거둡니다.
 
120년 전 갑오년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조선조 말 상황에 비교하는 담론들이 부쩍 활발합니다. 국내정치는 개화파와 수구파 간의 파당정치에 매몰돼 있었고, 국제간에는 일본과 중국 간의 각축이 치열했던 당시 상황이 지금과 비교됩니다.

국내정치에서 여야 정당 간의 소모적인 대결 정치가 그 때와 별로 다르지 않고, 일본과 중국의 대결은 그 때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일중 간에는 조어도의 영유권,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선포, 일본의 집단자위권발동 등을 둘러싸고 긴장의 도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이 망해가던 청나라는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욱일승천하던 일본의 기세를 닮았습니다. 또 일본이 쇠퇴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경제 대국입니다. 두 나라의 지배를 받은 한국은 이들 나라와 우호하면서 견제해야 하는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일중 간의 패권다툼은 미국의 아시아전략과 맞물려 한국의 입장을 한층 어렵게 합니다. 미국은 일본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려 합니다. 따라서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미국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이달 초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조셉 바이든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은근히 협박했습니다.
 
미일중러 등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과 번영을 추구해야 할 한국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존재입니다. 한국에게 남북분단은 120년 전 조선보다 더 나빠진 환경입니다. 북한의 정치와 경제는 아프리카 부족국가 수준이고, 집권세력은 장성택 처형과 같은 만행을 일삼아 그들과 동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먼저 통일이 이뤄져야 하겠으나 북한이 변하지 않는 한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런 북한과 대화를 하려면 남쪽에 통일된 국론이 있어야 하는데 사사건건 남남갈등이고, 북은 그것을 이용하려고만 듭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쳐 국권상실에 이르는 15년 동안 개화파와 수구파 모두 외세를 업고 상대를 척결할 생각만 했습니다. 조정 대신들도 외세에 의존해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바빴지 나라의 자주독립 방안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정치가 아무리 낙후됐다고 해도 120년 전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자주적 외교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강대국의 패권주의에 희생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자주적 외교를 펼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익이 걸린 사안들에 대해 국론을 모으는 일이고, 그 일의 대부분은 대통령의 몫입니다. 갑오년의 대한민국호가 유능한 조마사의 조련아래 날개를 단 용마(龍馬)처럼 달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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