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신념과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가능합니다. 억대 연봉의 재무설계사(FP)에 도전하세요"

오늘도 각종 취업포탈 사이트에는 고연봉을 자랑하는 보험설계사 구인광고가 넘쳐난다. 국내외 20여개에 달하는 생ㆍ손보사는 물론 OO재무설계ㆍOO자산관리라는 이름의 대형 보험대리점(GA)까지 경쟁사보다 좀 더 좋은 조건을 내걸며 설계사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다 텔레마케팅(TM) 설계사 모집 공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보험설계사 홍수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직까지 보험설계사는 '기피인물'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데다 영업방식도 잠재고객을 발굴해 보험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가입을 유도해야 하는 만큼 보험사는 설계사 모집이 쉽지 않다. 다른 직업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고, 실적위주의 급여체계로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장미빛' 선전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험설계사 하면 가장 친근하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보험 아줌마'일 테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학력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보험설계사들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 이제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전문적인 재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설계사들을 보는 게 낮설지 않을 정도다.

날이 갈수록 젊고 똑똑한 보험설계사들이 보험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이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게 사실이다. 보험사들이 젊은 설계사들을 통해 '인맥'이 아닌 '전문성'과 '대졸 금융인' 이미지를 앞세워 고급영업 방식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지인영업'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년간의 사회경험을 통해 쌓은 수많은 지인들로 무장하고서 뛰어든 설계사들도 몇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곳이 보험업계다. 그만큼 살아남기 힘든 동네다. 사회경험이 부족한 젊은 설계사들이 자칫 '억대 연봉'이라는 장미빛 환상에 사로잡혀 자기 수렁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새로운 설계사를 뽑아 철저히 교육시켜 세상에 내보내도 보험영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안에 나가 떨어지는 설계사가 10명 중 6명은 될거다. 2년안에는 고작 1~2명만 남는다." 한 보험사 지점장의 말이다.

그는 신입설계사가 입사 후 몇달만에 퇴사해도 회사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귀뜸한다. 기본급 지급이 없을 뿐더러 정착수당도 일정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나중에 도로 뱉어내야 한다는 것. 설령 몇달간 영업실적이 저조해도 가족이나 친구 등 몇건의 계약은 건저 온다는 계산이다. 

오늘도 수많은 보험사들은 젊은 설계사 유치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그 이면에는 별다른 경력이 되지 못하는 보험영업에 자신의 청춘을 허비한 낙오자들이 금전적 손실은 물론 재취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숨겨져 있는 데도 말이다.  

최근 한 생보사의 젊은 보험설계사가 '실적 압박'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이러한 '보험판 아메리칸드림'의 어두운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해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입사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이 신출내기 설계사도 자신의 영업적 재능보다는 "노력만 하면 누구나 억대 재무설계사로 변신할 수 있다"는 회사의 청사진에 고연봉의 금융맨을 꿈꾸며 입사했을 테지만, 1년도 채 안돼 세상에 날개를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던 그의 선택은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보험업계의 잦은 퇴사와 이직은 비단 보험설계사 개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해당 보험계약을 책임지는 설계사가 없어 관리가 안되는 '고아계약'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불완전판매에 따른 보험소비자의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게 되는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특히 전문지식이 부족한 초보 설계사들은 초기 영업활동에 나서면서 과도한 지인영업에 몰입하게 되고, 이는 결국 불필요한 보험가입이나 설명 불충분 등에 따른 고객 불만을 초래할 수 있다.

금융사 가운데 유독 보험사에 대한 고객들의 민원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보험민원은 전체 민원의 51.1%로 과반을 넘어섰다. 전년대비 증가율(18.8%)도 다른 금융민원(은행 7.0%, 금융투자 10.2%)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실정이다. 

보험사의 묻지마 채용과 실적만능주의에 치우친 설계사의 부실관리가 보험민원 발생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만큼, 보험사 스스로 현재보다 강화된 설계사 선발기준과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인사관리 시스템에 대한 개선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물론 '쓰고 버리는' 일회용식 인재 채용을 지양하려는 보험사의 인식 전환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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