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워싱턴포스트(WP)의 새 주인이 된 아마존 닷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작년 9월 WP의 미래에 대해 "종이 신문은 미래에 ‘귀중품(Luxury Item)’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귀중품’을 설명하는 비유도 우아했습니다. “사람은 여전히 말을 갖고 있지만 말을 예전처럼 통근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한 달 전 그가 사양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종이신문 가운데 세기의 특종 워터게이트 사건의 명성에 빛나는 WP를 인수했을 때 그 의도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WP 인수 이전까지만도 종이신문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한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창안해 성공시킨 아마존 닷컴의 전자 책 ‘킨들(Kindle)’처럼 전자신문이 종이신문의 미래라고 말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종이신문에서 종사했던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신문의 종말’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착잡한 기분입니다. 그래서 베조스의 ‘귀중품’ 발언은 나에게 기쁨이자 희망이었고, 세계의 미디어 업계가 WP의 변화의 추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인터넷 등장 이후 종이신문이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이미 많은 언론학자나 미래학자들이 내놨습니다. 나라마다 사정은 달라 미국처럼 이미 종이신문 폐간이 속출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일본의 신문들처럼 일천만부 수준의 발행부수를 유지하면서 한국에서는 꿈같은 얘기가 돼버린 ‘호외(號外)’를 아직도 찍어내며 속보경쟁에 나서는 나라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공통적인 것은 신문 산업은 구독자 감소, 광고 감소로 심각한 경영난에 몰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신문 산업의 위기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데 신기한 것은 아직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신문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터넷 신문을 표방하고 창간한 매체들도 으레 종이신문을 병간(倂刊)하고 수익도 종이신문에서 내는 구조 또한 한국적인 기현상입니다. 인터넷 매체가 3,000여개 정도나 난립해 있고, 뉴스의 도매상 격인 포털 네이버 하나가 메이저 신문인 ‘조중동’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한국입니다.

그럼에도 신문은 여전히 뉴스의 본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심층보도 측면에서 인터넷 매체들은 신문의 경쟁자가 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신문들이 인터넷 매체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터라 인터넷 매체와 속보경쟁에서 뒤질 것도 없습니다.

과거 신문들이 뉴스의 다중활용(one-source multi-use)의 함정에 빠져 포탈에 공짜로 뉴스를 제공하면서 포털은 번성하고, 신문의 경영난은 가속화했습니다. 뒤늦게나마 신문들이 포탈과의 관계 재설정 및 인터넷 신문의 콘텐츠 유료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인터넷 신문의 콘텐츠 유료화 전략은 미국 뉴욕타임즈(NYT)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베조스의 ‘귀중품’전략도 결국 NYT를 벤치마킹하는 내용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기자들이 수 년 동안 많은 회사 돈을 들여 취재한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4분 안에 요약돼 공짜로 유포되는 상황에서 종이신문이 생존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베조스가 최근 WP의 우수인력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집니다.
 
베조스는 WP를 인수하면서 “WP를 생존시키려고 산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려고 샀다.”고 했고, 또 “WP의 중심이 광고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WP의 중심엔 뉴스가 있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뉴스의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의지표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이후 600여 년 동안 언론의 선봉을 지킨 것은 인쇄매체입니다. 라디오가 나왔을 때 신문의 생명은 끝났다고 했고, TV가 나왔을 때 신문 라디오는 물론 영화산업도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은 라디오, TV, 영화와 성공적으로 공생 발전했습니다.
 
인터넷 시대, 모바일 시대는 뉴스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이전의 혁명과는 비교가 안 되게 질적 양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정보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전달자와 수용자 사이에 교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인터넷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뉴스의 기본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재빨리 전달되더라도 거짓이 뉴스가 되지는 못합니다. 허위의 정보로 다수의 사람들을 현혹해 이득을 취하려는 인터넷 공간의 시도는 갈수록 성공하기가 어려워지게 될 것입니다. 정보의 진위 여부도 그만큼 빨리 판명되는 것이 인터넷 시대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인터넷 언론 공간은 무질서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음란에 빠뜨리는 정보들이 언론 자유의 이름으로 횡행합니다. 포털이나 SNS는 물론 종이신문들이 운용하는 인터넷 신문조차 그렇습니다.

실명으로 댓글을 달게 하고, 허위 비속어 중상모략적인 댓글을 삭제하는 인터넷 신문은 하나 밖에 없고, 대부분은 욕설뿐인 익명자의 댓글로 도배돼 있습니다. 이런 댓글들이 건전한 여론형성에 무슨 기여가 되겠으며, 같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댓글을 올리는 것이 방치되는 상황에서 댓글의 수가 아무리 많다한들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심지어 홈페이지부터 기사 목록에조차 성에 관한 기사를 양념이라도 되는 양 하나 이상 끼어 넣기 일쑤이고, 한 꺼풀만 더 들어가면 성도착증 사회로 착각할 정도의 문란한 정보, 광고를 기사로 포장하는 사기성 정보로 넘쳐납니다.

인터넷 강국의 인터넷 미디어 환경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고, 한류로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강국에 걸맞은 콘텐츠로 채워져야 합니다. 선진국의 유력지들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섹스를 상품화하는 기사나 광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국의 단속도 필요하지만 언론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의 경영난은 인터넷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독자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종이신문의 구독 감소에다 인터넷 신문마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면 한국의 신문은 설 자리를 영영 잃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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