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약속'이 의심받고 있다.

이 회장은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불법비자금 등에 대한 폭로로 촉발된 '삼성특검'이후 사회적 물의을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차명재산을 실명전환한 뒤 벌금 등을 내고 나머지를 좋은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장은 2009년 8월 배임·조세포탈 혐의로 '징역3년에 집행유예5년'을 선고받고 사면됐다.

당시 이 회장의 말이 국민들을 상대로 한 약속이었고, 이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고 삼성측이 경영쇄신책을 발표하는 등 실추된 신뢰를 다잡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 약속이 지켜지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6년여가 지났지만 이 회장의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삼성특검'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가물가물 잊혀지는 옛 이야기가 됐고, 삼성스마트폰이 글로벌 시장을 평정하면서 삼성에게는 '글로벌'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룹 총수가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경영진들이 재판장을 들락거리며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던 시절은 가고 세계속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만 남은 셈이다. 이미지의 대반전 성공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을 열자 삼성은 제조능력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패스트팔로워'전략을 구가하며 현재 애플과 함께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글로벌삼성'으로 도약했다. 이는 삼성전자에게 '사상최대'로 대변되는 성장세를 안겨줬고, 삼성그룹 전체의 위상도 바짝 끌어올렸다.

이런 삼성전자의 고속성장은 이 회장에게도 두둑한 배당금으로 돌아왔다. 최근 재벌닷컴에 분석결과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계열사에서 올해까지 4년 연속 1천억원대의 배당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자산상위 10대 재벌총수가 올해 상장 계열사에서 지급받는될 배당금이 총 2445억원대로 예상되고있다는 점에서 '배당랭킹 1위' 이 회장이 받아갈 배당금은 이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 회장이 이처럼 해마다 천문학적인 배당을 받고있다는 사실과 이 회장의 '사재출연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회장과 비슷한 처지였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최근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8500억원대의 사재출연 약속을 모두 이행하면서 재계 1, 2위 총수가 보여준 서로다른 행보는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현재 삼성측은 이 회장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그룹측은 과거 사재출연이라고 밝히지 않았고 유익한일에 쓰겠다고 했다며 사재출연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내비치면서도, 여전히 사회환원 의지에는 변함이 없고, 다만, 보다 좋은일에 쓰려고 고민하다보니 늦어지게 됐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유익한 일에 쓰겠다던 그 약속이 수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적합한 방법'을 찾기위해서라는 삼성측의 입장을 백분이해한다고 해도 약속이행없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그들의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재단을 통한 기부를 택한 현대차의 경우 처럼 약속이행을 먼저하고 그 구체적인 용처는 나중에 고민해봐도 될 문제다.

이런상황을 이 회장이 모를리는 없다. 그런데 왜 이 회장은 사재출연 약속이행을 미루는 것일까. 이는 이 회장의 약속이행 의지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계1위 삼성의 총수가 꺼낸 약속이 한 두해도 아니고 6년 가량이나 미뤄지고 있다면 그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 회장의 약속은 사회적 물의를 일의킨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내밀었던 약속이지 않은가. 이는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로 비출 수 있다.

만약 이 회장의 의지가 있었다면 그 시기는 지금보다 더 빨라졌어야 한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라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 회장의 약속이 과거 위기모면용 해법이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쩌면 그 배경에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대해진 삼성의 영향력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이 회장 역시 '경제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그 존재감이 상당하다. 이는 이 회장과 삼성그룹이 특별히 눈치볼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뒤짚어보자면, 이 회장이 약속을 미루는 것은 이런 '무소불위'에 가까운 존재감으로 국민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듯한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는 위험소지를 안고 있다. 만약 앞으로도 약속이행이 더 미뤄진다면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는데 이 회장과 삼성 스스로가 일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총수일가가 그룹전체를 통제하는 삼성그룹의 제왕적 지배구조안에서 이 회장의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내부의 목소리는 나오기 힘들다. 결국 이 회장의 약속이행은 오로지 이 회장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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