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김영환

넓은 호주 대륙에서 오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1917년 목축업자인 지미 다르시는 방광에 상처를 입은 채 친구들에게 발견돼 50킬로미터를 12시간 걸려 옮겨졌습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응급처치를 배운 우편국장이 카운터에 그를 묶고 위스키로 마취시킨 뒤 모르스 전신기로 의사의 지시를 받으며 작은 주머니칼로 수술했습니다. 수술을 원격 지시한 의사는 배와 자동차, 마차, 도보로 열흘이 걸려 도착했지만 다르시가 죽은 다음 날이었습니다, 사인은 수술의 잘못이 아니라 말라리아와 맹장 농양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의 호주는 1920년대 전기가 안 들어가는 오지에서 자전거 페달로 전기를 생산하여 무전기를 켜는 ‘페달 라디오’를 발명했으며 존 플린 장로교회 목사의 캠페인으로 1928년 세계 최초의 ‘에어 앰뷸런스’인 ‘플라잉 닥터’를 만들어 이제 60여 대의 비행기가 하루 7만2,000킬로미터를 날아가 7백여 명의 환자를 맞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직접 진료의 어려운 과정을 잘 말해줍니다.

어느 나라고 병원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라는 경제법칙대로 환자가 많은 곳을 선호하죠. 수도권 서부, 접적 지역인 김포강화에 대학병원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질병에 취약한 노약자, 장애인들이 의료에서 소외되어 살아갑니다.

내가 아는 강화도의 포도원 농부가 있습니다. 해마다 늦가을이면 해풍을 맞아 육질이 두껍고 당도가 높은 포도로 가을의 정취를 맛보게 해주던 분입니다. 하루는 밤늦게 포도를 사러 들렀는데 부인이 안 보였습니다.

“아주머니 어디 가셨어요?” 덤을 듬뿍 주던 부인이 안 보여 그렇게 물었습니다.
“읍에 갔어요.”
 “아니 이 밤중에 무슨 장사를 아직도 하시려고요?” 밤 아홉 시가 넘었는지라 꼬치꼬치 캐묻자 남편은 참 안돼 보이는 얼굴로 목이 잠겨서 아내가 멀리 떠났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고열로 신음해 감기로만 생각하고 읍내 병원에 갔지만 차도가 없어 김포의 병원으로 옮겼고 거기서도 안 나아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가서야 요로감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패혈증이 생겨 세상을 하직했다는 것입니다.

남을 비난하기는 쉽다고 하기 편한 말로 ‘의료쇼핑’이라고 하지만 생명을 기르는 것을 주업으로 삼은 농민의 생명이 이런 위기에 있습니다. 더구나 오대양 육대주로 연결되는 인천국제공항이 바다 건너로 빤히 보이는 수도권이라는 데가 이 지경입니다.
 
인천 길병원이 ‘닥터헬기’를 도입하여 서해 도서지역으로 자주 출동해 응급환자를 구조했다고 매스컴이 찬양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이 헬리콥터는 안동, 목포, 원주 등의 닥터헬기와 마찬가지로 해가 있을 때만 운항합니다. 사람은 일과시간에만 가려서 아플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죠. 군 헬기는 심야에 잘도 날아다닙니다.

최근 정부가 건강복지 증진을 위해 발달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원격진료를 도입하려 하자 의사협회가 반발해 파업했습니다. “화상이 선명하지 않아 오진의 우려가 많다, 큰 병원으로 원격진료가 몰릴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원격진료란 벽지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원에 안 가도 환자의 상태를 컴퓨터에 연결된 진단 장치 등을 통해 화상회의시스템이나 인터넷으로 병원에 전달해 진료와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죠.

일본에서 원격진료의 선구는 홋카이도의 아사히가와 의대병원입니다. 면적이 7만8,000 평방킬로미터에 공항이 10개가 넘도록 넓은데 병원은 적고 폭설이 내리면 교통이 끊겨 환자가 이동하기 어려운 자연환경의 대응책으로 자라난 것이죠.

1995년 도입된 일본의 원격진료는 초기엔 지역 의료기관과 상급 의료기관이 환자를 매개로 하여 3자간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사히가와 의대병원은 지금 모든 과목에서 환자의 직접 원격진료는 물론이고 미국 보스톤의 하버드대 의대 같은 국제 의료기관에 수술 실황을 중계하여 각국 의료진이 협진하는 차원으로 발전했습니다.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과 화상 진단 회의를 열고 있고 러시아와 인도에는 원격진료 기술을 수출하려고 합니다.

기득권자들은 기술의 도입 초기에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고 세상의 진보에 저항해왔지만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시대의 발전에 역류하는 가치판단으로 입만 가지고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죠. 원격진료는 응급 능력이 없는 1차 의원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터넷 정보통신의 발달은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전립선, 위암 등의 초정밀 수술에 ‘다빈치’라는 로봇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손으로 수술부위를 꿰매지 않고 로봇을 제어하는 것이니 그것 또한 원격진료입니다.

도서 벽지의 국민에게도 의료복지가 도시민과 평등해야 합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면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파업할 게 아니라 정부나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할 국회를 상대하라는 말입니다. ‘국민 사위’라는 함익병 의사의 말대로 지금 병원은 비영리도 아니죠. 의사협회가 그렇게 국민 건강에 관심이 많다면 의료 사각지대인 ‘무의촌’과 최근 사병의 폐암이 커지는 것도 모르고 합격판정을 내린 군의관 사건을 비롯해 60만 국군의 건강을 지키는 군 의료체계 문제점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무나요?
 
존경받는 직업은 휴머니즘을 지켜서입니다. 목숨을 걸고 불덩이 속에서 생명을 구하려고 검게 그을린 소방대원의 얼굴,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 중상자를 데리고 올라가는 119 구조대의 모습, 중환자를 고치고 가족처럼 기뻐하는 연로한 주치의의 환한 얼굴에서 휴머니즘의 꽃을 봅니다. 기술의 발전이 휴머니즘을 보완할 수 있다면 반대할 일이 아닙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