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임종건

북녘 땅을 바라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헐벗은 산입니다.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근과 억압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헐벗고 굶주린 것이 북한의 산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땅에 나무를 심어 초록의 땅으로 만들고 남북의 긴장완화에 기여토록하자는 것이 ‘녹색의 긴장완화’, 즉 ‘그린 데탕트’입니다.

우리는 더러 북녘 땅이 건너다보이는 강화도와 파주의 전망대에서 북한 산하의 헐벗은 모습을 봅니다. 나는 그때마다 1992년 9월 남북고위급 회담 취재를 위해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자동차로 가던 때가 생각납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을 지날 때까지 북한의 산들은 민둥산이었습니다. 군사분계선에 나무가 없는 것은 피차 시야 확보를 위해 나무를 베어낸 탓입니다. 판문점에서 개성까지도 군사목적의 인위적인 민둥산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개성을 지나 평양에 다다르도록 민둥산의 연속이었습니다. 북녘의 민둥산은 결코 군사적인 이유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때 민둥산과 함께 나에게 충격이었던 것은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 구간에서 비닐하우스 하나를 구경할 수 없었던 점입니다. 또 과시용으로라도 길가 어디에 소떼가 풀을 뜯는 목장 한 군데쯤은 만들었을 법도 한데 목장 비슷한 곳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북녘 산하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헐벗게 된 듯합니다. 북한의 식목일인 식수절은 3월2일로 우리의 4월5일보다 한 달쯤 빠릅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나무심기를 전 군중적으로 힘 있게 벌여 모든 산에 숲이 우거지게 해야 한다”고 했던 김정은 국방위제1위원장이 이날 나무심기 현장지도에 나섰고,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합니다.(사진· 연합뉴스 전재)
 
김정은은 이보다 앞서 2012년 4월27일 발표한 ‘국토관리 사업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데 대하여’ 제목의 담화에서 “지방에 가보면 ‘산림애호’ ‘청년림’이라고 써 붙인 산들 가운데도 나무가 거의 없는 산이 적지 않다”며 “땔감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그것을 마구 찍어 땔감으로 쓰기 때문에 산림을 보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로부터 20여 년 간 남한의 산림녹화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당시 어린 학생들은 매년 식목일 무렵이면 산으로 나무심기 노력동원에 나가야 했습니다. 한여름이면 송충이 잡기도 했습니다. 오리나무 포플러 아카시 리기다소나무 은사시나무 등 속성수의 이름과 묘목 모양이 나의 기억에 선한 것도 그 시절의 흔적일 겁니다.

한편으론 나무를 심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집집마다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가야 했습니다. 낙엽을 긁고 마른 나뭇가지를 베어다 땠습니다. 산은 낙엽이 쌓일 새가 없이 헐벗었습니다. 눈 덮인 겨울엔 생나무를 베다 때기도 했습니다.

농어촌에 대한 연료대책이 없었으므로 산림녹화는 겉돌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부터 도회지처럼 시골에도 연탄아궁이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연료혁명이었습니다. 남한의 산들이 울창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2차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꼽힙니다. 지금은 도농(都農)을 불문하고 연탄의 시대를 지나 석유 전기 가스 태양열 태양광 등으로 에너지가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나무 땔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석탄 매장량은 남한보다 많다곤 합니다만, 채굴기술의 낙후로 생산량은 떨어지고, 공장용이나 발전용으로 쓰기도 모자라니 가정보급은 어림도 없는 겁니다. 게다가 일부는 빚값으로 중국이 가져갑니다.

나무를 베어 때는 것 외에 식량증산을 목표로 산자락을 다락 밭으로 개간한 것도 산림황폐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홍수로 산밭의 토사가 흘러내려 산과 들을 모두 황폐화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밝힌 ‘평화통일 구상’ 가운데 단연 눈길이 가는 것은 ‘남북한 민생 인프라 구축’ 방안입니다. 복합농촌단지 조성 사업은 박정희 정부 때 새마을 운동처럼 식량증산과 산림녹화를 겨냥한 사업입니다.

남한의 경험으로 비추어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은 연탄 보급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탄광의 생산성 향상, 북한 전역에 연탄공장건설, 가정배달을 하기 위한 도로개설 및 교통수단 개발 등의 인프라 개선이 수반돼야 합니다.

식량지원 의료지원 같은 인도적, 일회성 지원도 필요하지만 북한의 민생을 인프라적으로 돕는 것이 진정한 통일의 길입니다. 다행히 우리의 도로 전력 통신 등의 인프라는 기술적 노하우나 운영능력 면에서 비교적 여유 있는 분야입니다.

땔감 문제 해결 없이 산림녹화가 안 된다는 김정은의 진단은 맞습니다. 그런데 처방은 엉터리입니다. 서해 우리 영해에 방사포를 쏴대고, ‘새 형태의 핵실험’ 운운하고 있습니다. 그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에 진지하게 호응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뭔지는 세계가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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