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지난달 대만 정부 초청으로 아시아 유럽 북미 중남미 15 개국의 언론인 16명과 함께 대만을 둘러봤습니다. 대만의 정치 경제 문화의 내면적인 저력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짜인 일정이어서 이번이 네 번째였었던 필자도 대만을 처음 여행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갈 때마다 들렀던 국립고궁박물원에선 장예등(張譽騰 장유탄) 원장과 송조림(宋兆霖 숭자오린) 도서문헌처장이 일행을 맞았습니다. 송 처장에게 고궁박물원 소장품들의 해외전시 상황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전시한 바 있고, 오는 6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10월에는 큐슈박물관에서 각각 전시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도쿄 전시에는 이전의 미영불독 전시 때처럼 고궁박물원의 진수인 취옥백채(翠玉白菜 배추모양의 청백색 옥 조각품)가 포함된 200점이, 큐슈 전시에는 육형석(肉形石 돼지고기 모양의 옥 조각품)을 포함한 160점이 각각 출품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과의 교류전 계획을 묻자 송 처장은 뜻밖에도 과거 서울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귀국 후 확인해 보니 자유중국과 공식 수교관계였던 1973년 5월 동아일보 주최 '중국전람회'에 서예, 옥 조각, 청동기 등 120점이 출품됐는데, 진수는 빠진 서예 중심의 전시였습니다. 그 후는 물론, 1992년 단교 이후 고궁박물원 소장품의 국내 전시는 전혀 없었습니다.

고궁박물원은 대만의 대북과 중국 북경의 자금성 두 곳에 있고, 둘 중에서 대만의 고궁박물원이 더 유명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원래 북경 고궁박물원에 소장돼 있던 것들을 장개석(蔣介石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치르면서 남경 상해 등지로 옮겼다가 1948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철수할 때 이 문화재들을 가져간 역사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장개석 정부가 전쟁 중에 짐을 쌌으므로 국보급의 진수만을 선별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품은 북경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의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또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줄기차게 ‘탈취해간’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송 처장에 따르면 고궁박물원 소장 유물은 70만 점에 이르러 상시 전시 유물 외에 교체 전시 유물은 10일 동안 전시한 후 10년 동안 보관창고에서 잠을 자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고궁박물원의 대외적인 명성은 본토에서 가져온 1만 여점으로 결정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 관계가 순항하면서 문화교류도 활발합니다. 교류의 양상은 중국이 공세적인 데 비해 대만은 수세적입니다. 문화재 관련 인적 교류는 양안 모두 빈번하나 물적 교류는 중국에서 대만으로의 일방통행식입니다.

중국은 본토 내 박물관 소장 문화재를 대만에 대여해 전시를 하게 합니다. 그런 전시 가운데 하나가 2012년에 대만에서 개최한 청동기 옥 황금장신구 등의 ‘西周文化特展’이었는데 이 전시는 그해에 세계 최대 유료 관람객을 모은 전시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대만 고궁박물원 유물의 본토 전시는 여전히 금기사항입니다. 일단 북경에 보낼 경우 중국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압류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대만은 같은 이유로 고궁박물원 소장품의 해외전시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중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반면 대만과는 대표부 성격의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해외로 나간 대만 고궁박물원 문화재가 중국에 의해 압류된다면 복잡한 외교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대만으로부터 고궁박물원 문화재를 대여받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은 어느 경우에도 전시물을 대여해준 나라에 안전하게 돌려준다는 법을 갖춘 나라들입니다. 미국의 'P.L.89-252법'과, 독일의 '문화적 소유보호법'이 그것이고, 일본 전시도 2011년 일본의회가 전시작품에 대한 제3국의 압류를 금지하는 ‘해외미술품 등 공개촉진법’을 제정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이런 법을 만든 나라들은 문화재 약탈국가라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일본 프랑스 등에 의해 문화재를 약탈당한 나라입니다. 약탈문화재를 용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법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중국과 입장이 같습니다.

그것이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품의 한국전시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송 처장은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기대한다고 했으나 한국이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그런 선택을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오히려 양안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안관계가 확대될 경우 중국에서 대만으로의 일방통행적인 전시에도 변화가 올 것입니다. 작년 한 해만도 8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양안을 오갔습니다. 본토에서 대만에 온 사람이 290만 명, 대만에서 본토로 간 사람이 512만 명이나 됐습니다.

올해는 관광 교류가 1,000만 명에 육박할 전망입니다. 대만 고궁박물원은 본토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여서 매일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대만이건, 중국이건 어디에 있든지 모든 문화재는 중국인의 것이라는 인식이 양안 간에 확산될 경우 중국은 대만 고궁박물원 유물의 반환요구를 접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대만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맘 놓고 교류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만 고궁박물원 문화재 전시가 국내에서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6월의 일본전에서 우리가 유의할 점이 있었습니다. 일본전은 도쿄국립박물관과 도쿄에 소재하는 모든 신문과 방송의 공동주최였습니다. 외교부나 문화부 등 정부 부처는 일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화적 교류에서 언론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긴요한 것은 남북한 간의 문화재 교류입니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 우리 문화재 당국과 언론이 먼저 이 문제를 협의하고 북쪽 당국과 머리를 맞댔으면 합니다. ‘쉬운 것 먼저, 어려운 것 나중에’는 양안 간 대화의 대원칙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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