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아직도 찬 바다 속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10여 명의 세월호 실종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던 기대에서 이제는 시신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참담한 심정으로 침묵의 바다를 향해 사랑하는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는 유족들입니다.

42년 전인 1972년 4월 법정은 ‘살아남은 자’라는 글을 신문에 썼습니다. 각종 사고가 빈발하는 세상을 성찰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는 “…그 이름도 많은 질병, 대량학살의 전쟁, 불의의 재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 이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들은 정말 용하게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앞서, 단 하나뿐인 목숨을 여의는 일이기 때문이다.…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 차례를 맞이할지 모를 인생 아닌가. 살아남은 자인 우리는 가버린 이웃들의 몫까지 대신 살아주어야 할 것 같다”라고 갈파했습니다.

304명을 사망·실종시킨 악마선 세월호 침몰의 교훈을 되살리는 것이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비명에 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몫을 다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참극을 묘비명처럼 가슴에 새겨야 대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되게 사는 길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지난 21일 9·11테러로 녹아내린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에 9·11 추모박물관이 정식으로 개관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5일 기념사에서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가 이날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라고  추모관의 목적을 밝혔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납치된 여객기의 돌진으로 자행된 테러에서 무고하게 숨진 3,000여명의 참사를 절대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추모관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역사에 지우기 힘든 아픈 상처로 기억될 것이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을 ‘국가안전의날’로 지정할 의향을 밝혔습니다.
 
선장은 도망가고 사주가 도피해버린 세월호 참사에서도 휴머니즘을 몸으로 구현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부패의 절망 속에 피어난 새하얀 희망의 꽃입니다. 한 살 어린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키고 실종된 여섯 살 고 권혁규 군,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어 숨진 단원고의 고 정차웅 군. 침몰을 119에 최초로 신고하고도 돌아오지 못한 고 최덕하 군, 제자들을 위해 최후까지 최선을 다한 고 남윤철·최혜정 선생님.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고 박지영 님, 김기웅·정현선 님, 양대홍 사무장님, 민간잠수사 고 이광욱 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의인들이 더 있을지 모르지만 이분들이 대한민국의 주인이고 주역들이었습니다.

지금 청주 신흥고 동문회는 고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추모비를 세우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다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도 이어지겠죠. 이와는 별도로 국가 차원에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교훈이 자리 잡도록 부패방지와 안전을 교육하는 현장으로 삼을 추모공원 건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다에서 건질 세월호도 추모공원에 전시한다면 큰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길이 146미터에 폭이 22미터인 세월호로  공직자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의미에서  청사의 공터를 잡아 전시하는 것도 방법일 듯싶습니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원인은 청해진해운이지만 사고를 방조한 해운 관련 공무원, 각종 협회, 과감한 구조에 머뭇거린 행정부, 세월호의 조타실처럼 ‘세월아 네월아’식으로 국정 감시와 해운안전 입법에 태만하다가 결국 참사를 방조한 국회의원들의 죄과도 가볍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 받으면 무조건 처벌한다는 소위 부패 방지 ’김영란법‘도 뭉개온 국회의원들입니다.

무상복지 투쟁이 정치의 전부인 양 몰입하면서 최고의 복지인 안전은 그들의 아젠다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세월호 희생자들이 맹골수도에서 느낀 절망의 수압을 깨닫도록 하려면 세월호를 국회의사당 앞의 넓디넓은 공터에 전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추모공원에는 중지를 모아 유족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희생자 명단과 유품, 구조대원, 시신을 수습한 수색요원, 사건발생 당시의 주요 공무원, 국회의원 명단과 청해진해운 본사 및 세월호의 시간대별 상황, 동영상, 마지막 sns 등을 담아 후세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달라지는 것이 국민이 잊을 동안까지만이라면 ‘제2의 세월호’를 막기 어렵습니다, 공직자들의 곁에  세월호를 두게 하여 늘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마음을 다잡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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