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삼성그룹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결코 타협과 양보의 대상이 될수 없었던 ‘난제’풀기에 전향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도체공장 백혈병’논란에 대한 공식사과와 보상을 약속하는가 하면 평행선을 달리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사협상도 타결지었다. 이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 일대 변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무엇보다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의 단체협약 타결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삼성의 무노조경영방침이 수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달 28일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사측과 합의한 기준단체협약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해 노합원 87.5%의 찬성율로 가결시켰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실질적인 노동조합의 자격을 갖추면서 노조로 인정을 받게 된 셈이다. 삼성전자 제품의 AS를 담당하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직원들이 ‘이대로는 일을 못하겠다’며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 파업투쟁에 나선지 1년 여 만의 일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갈등은 격화일로였다. 그 과정에서 위장폐업 논란은 끝이 없었고 일부 조합원은 열악한 근무조건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삼성의 노조관에 비추어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할 것으로 보였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사의 단체협상이 사측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로 타결된 것은 노사갈등해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는 삼성이 아닌 삼성전자 협력사에 해당하는 문제지만 그동안 삼성그룹이 협력사에게까지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수십 년 간 이어져온 삼성의 ‘무노조 경영’전통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재계의 풀이다.

또 하나의 전향적인 변화는 ‘반도체 백혈병’ 문제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고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촉발된 백혈병 문제는 그동안 지리한 법적공방만 무성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와병과 ‘이재용 시대’가 예고된 상황에서 삼성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한 이후 공식사과와 보상을 약속, 백혈병문제를 둘러싼 삼성근로자의 인권문제는 사실상 해소국면에 들어선 상태다. 특히 삼성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백혈병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아래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삼성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변화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점이다. 삼성전자가 이달부터 자율출퇴근제를 전면 시행, '하루 4시간 이상 주당 40시간 근무'라는 원칙만 지키면 임직원이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삼성은 국내 다른 재벌기업과 마찬가지로 소수 오너일가의 제왕적 통치아래 빠른 경영판단과 강력한 조직 응집력이 강점으로 평가돼왔다. 하지만, 이런 조직문화는 창의적인 사업에는 되레 독이 돼왔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삼성이 소프트웨어를 집중육성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때문에 이번 조치를 두고 1993년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실시 이후 '최대 혁명’이라는 수식어까지 나왔다. 삼성이 창의를 중시하는 경영은 이를 더욱 북돋우기 위한 여건조성책으로 제왕적 지배구조의 손질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확실히 삼성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의 변화는 앞으로는 성장에만 목매지 않고 공존을 바탕으로 과거와는 다른 성장역사를 써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노조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삼성이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진정성'의 문제가 남는다. 최근 삼성의 이런 전향적인 자세는 ‘이재용 삼성시대’가 막을 올리기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한 세간의 우려와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일시적인 ‘포장전략’이라는 풀이도 없지 않다.

사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경영능력의문, 편법승계의혹, 무노조경영 승계문제 등은 '이재용 삼성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삼성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 회장의 병고이후 그동안 노조탄압논란이나 백혈병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해법마련요구가 이 부회장에게로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도 부친인 이 회장 못지않은 경영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국 삼성 수뇌진에선 이 부회장이 그룹의 최고사령탑에 오르기 전에 큰 경영부담으로 작용할 지도 모르는 이 부회장의 ‘약점’들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고 여기에서 최근 삼성의 개혁적인 조치들이 나왔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그러나 막상 '이재용 체제'가 시작되면 이같은 일련의 경영방침 변화가 지속될는 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일련의 개혁조치들이 일시적인 '땜질처방'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성의 잇단 갈등봉합 노력에도 ‘이재용 삼성시대’가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남아있는 과제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부친 이회장의 사재출연문제는 대국민약속이라는 점에서 적당히 넘길 수 없는 중대현안이다. 이 회장이 비자금사건 후 사재출연으로 속죄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껏 그 약속은 감감무소식이다. 이 회장이 와병중이고 보면 공은 이 부회장에게로 넘어온 셈이다. 이 문제에 관한한 이 부회장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삼성측은 직접적으로 사재출연을 말한 적은 없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것에 변동은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이 문제에 대한 특별한 결론 없이 '이재용 삼성시대'가 열릴 경우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반응은 삼성의 예상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삼성이 보여주고 있는 전향적인 변화가운데 사재출연문제만은 ‘예외’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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