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이어진 기자]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 시행을 눈 앞에 두고 세부 시행 고시 등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 분리공시는 포함되지 않았고, 보조금 한도는 30만원으로 책정됐다. 저가 요금제 가입자에게도 보조금 혜택을 주는 내용의 고시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단통법을 두고 ‘전국민 호갱님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를 해체하라는 강도 높은 비판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이유는 무얼까?

단통법 시행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있어 긍정적인 측면은 2개다. 첫째는 일명 ‘호갱님’이 사라진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굳이 단말기를 이동통신사를 통해 구입하지 않아도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정부는 호갱님을 들어 27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살포하는 이동통신사들을 규제했다. 대리점과 판매점 들의 상술에 요금제 등에 해박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보조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제값주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마트’한 소비자들은 같은 제품을 0원에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단통법이 시행 되면, 스마트폰 요금제, 단말, 보조금 등을 모르는 소비자 건 해박한 소비자 건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단말기만 직접 구입한 뒤 이동통신사에서 별도로 개통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정 수준의 보조금만큼의 요금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중고폰 구매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통법은 이 두 개의 장점 외에는 오히려 소비자 편익에 저해되는 측면이 많다.

단통법의 취지는 국내 휴대폰 유통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단말기 값 부담이 지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계 통신비를 인하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매년 가계 통신비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가계 통신비 증가에 큰 축을 담당하는 것은 단말기 할부금이다. 정부가 제조사들에게 출고가를 내리라고 명령할 수는 없는 일. 정부는 단통법을 통해 유통구조 투명화 및 출고가 인하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단통법에 분리공시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사실 상 출고가 인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현재 휴대폰 유통 구조에서는 제조사 판매 장려금과 이동통신사 보조금이 모두 통합돼 모두 보조금이라고 불려왔다. 보조금 중 제조사가 얼마나 부담하는지, 이동통신사가 얼마나 부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휴대폰 출고가를 비싸게 책정하고 마케팅비용을 통해 할인해주는 듯이 판매했다는 시민단체들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분리공시는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과,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을 각각 분리해 공개하는 것이다. 분리공시를 통해 미래부와 방통위가 노렸던 것은 출고가, 판매 장려금, 보조금 등을 투명하게 공개, 단말기 가격을 더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소비자들이 알게 하는 것. 높은 출고가를 책정하고, 보조금을 쏟아 할인하는 형태의 영업을 막아 출고가를 인하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4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분리공시를 단통법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판매 장려금, 보조금 공개로 인한 출고가 인하 효과는 누릴 수 없게 됐다. 단통법 시행 이후에는 백만원에 육박하는 휴대폰 단말 값을 사실 상 제값 주고 구입해야 한다.

단통법이 시행되면 모든 대리점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어 일단 소비자 간 차별은 사라진다. 하지만 출고가 인하 효과가 사실 상 사라진 상황에서 전국민이 휴대폰을 제값주고 사는 호갱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90만원 수준의 스마트폰에 3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하더라도 실제 소비자가 부담해야할 비용은 60만원에 달한다. 수십만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휴대폰을 구입해온 소비자들에게 60만원 수준의 가격은 신규 스마트폰을 구입하지 말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30만원 보조금도 7만원 이상 요금제에 가입해야만 받을 수 있다. 저가요금제 가입자는 이와 비례해 더 적은 보조금을 받는다. 3~4만원 저가 요금제 가입자들은 90만원짜리 휴대폰을 60~70만원 수준에서 구입해야만 한다. 단통법 시행 전 일명 ‘호갱님’들의 구입 조건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해외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이 얼마나 ‘호갱님’이 될지 여실히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2년 약정 기준 200달러, 한화 약 20만원 수준에서 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할 수 있다. 약정 없이 단말만 구입한다 하더라도 600달러, 한화 60만원 수준이다. 미국에서 무약정으로 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비용과, 국내에서 2년 약정 기준 7만원 이상 요금제 가입시 구입하는 비용이 비슷하다. 2년 약정 기준으로만 놓고 비교하면, 40만원 가량 비싸며 해외 제품과 국내 제품의 차이가 있다는 제조사들의 입장을 반영해도 최소 20만원 이상 비싸다.

여기에 더해 약정을 못 채울 시 지급받은 보조금을 반환해야만 하는 일명 위약4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2년 약정 기준으로 수십만원의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하더라도 중간 해지 시 보조금을 도로 반환하지 않아도 됐다. 대리점 실적을 위해 3~6개월 회선 유지 필수 등의 가입 조건은 있었지만, 지급 받은 보조금에 대해선 묵인해왔다. 2년 동안 쓴다는 전제 하에 할인해준 요금에 대한 위약금만 있었다.

하지만 이동통신업계는 단통법 시행 이후 약정을 못 채울 시 보조금을 반환하는 일명 ‘위약4’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가령 2년 약정 기준 3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이를 1년 만에 해지할 경우 남은 단말기 값과 할인받은 보조금을 반환하는 형식이다. 위약4가 도입될 경우 약정을 못 채울 시 소비자들이 부담해야할 위약금 규모는 약 20~30만원 수준으로 저가형 스마트폰 한 대를 구입할 수 있는 수준. 소비자들은 위약금 폭탄을 이유로 위약4 추진을 강력 반발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10월 시행되는 단통법은 ▲출고가 인하 효과도 없고, ▲30만원 이상의 보조금도 지급받지 못하며, ▲저가 요금제 가입자는 거의 제값 주고 휴대폰을 구입해야 하고, ▲약정을 못 채울 시 보조금을 도로 뱉어야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단통법 시행이 눈 앞에 다가온 가운데 소비자들이 이를 두고 전국민 호갱님법이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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