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비리 재벌 총수들에 대한 사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법무부가 황 장관의 발언은 원론적인 이야기로 "가석방 등 법 집행에 있어서 특혜 없는 공정한 법 집행 기조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일축에 나섰지만 파장은 여전하다.

특히, 이번발언은 그동안 ‘돈과 빽이 있다는 이유로 비리에 대한 가벼운 처벌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해왔던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에 대한 문제까지 결부되며 경제민주화 후퇴논란과 더불어 현 정부의 '원칙과 소신'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표를 양산하는 모양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은 비리 재벌 총수 등에 대한 특별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천명했다. 취임후에도 이같은 기조는 유지됐다. 지난해 박 대통령은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그동안 죄를 짓고도 돈이나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망을 피해가거나 가볍게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며 "앞으로 사회지도층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정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실제 현 정부에서는 과거 밥먹듯이 재현됐던 비리 재벌 총수들의 가석방이나 사면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 가석방심사위원회까지 통과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가석방을 법무부가 막판에 허가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원칙이 깔려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전 회장은 결국 올해 만기 출소했다.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논란을 낳았던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공식도 사라지고 실형선고 사례가 늘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징역 4년의 실형을 받고 복역중이며, 구본상·구본엽 형제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재현 회장도 최근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벌범죄에 더 이상 관용은 없다'는 이런 원칙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통하는 과거의 악습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치를 높였다.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적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후퇴논란에도 이 원칙만은 흔들림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런 정부의 원칙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황교안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활성화’를 위해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다며 비리 재벌 총수들의 사면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이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원칙에 어긋나서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황 장관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비리 재벌 총수들의 가석방이나 사면 등에 대해 원칙적으로 불가한다는 그동안의 정부 방침과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물론, 재벌총수들이라고 일반인들보다 더 엄격한 법집행을 받아서는 안된다. 법은 만인앞에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재판과정에서 횡령, 조세포탈, 분식회계 등 경제질서를 어지럽힌 사실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과정과 명분이다. 이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두리뭉술한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이들에 대한 사면 등 '법적 호의'를 베푼다면 이를 쉽게 납득할 국민들이 얼마나 될 지는 의문이다.

만약 정부가 그동안의 원칙을 뒤짚고 달라진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가석방 등의 조치가 공평정대한 국가 공권력의 행사라는 점에서 이는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경제활성화'를 핑계로 '힘있고 돈있는 자들에게 특혜를 베푼다'는 지적에서 비켜나가기는 힘들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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